대학에 갓 들어온 신입생들이 처음 대면하는 사람은 대개 선배와 동기들이다. 앞으로 있을 대학 생활을 위해 신입생들은 선배와 동기간의 관계가 돈독해지길 원한다. 선배들 역시 낯섦과 설렘으로 가득 찬 신입생들을 위해 친하게 지낼 방법을 떠올린다. 그중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술자리이다.


이상훈의 '술의 사회학'에 따르면 한국 사회 속 친밀함은 술자리의 횟수와 술자리를 지속할 수 있는 시간에 비례한다고 한다. 선배와 동기들과 친해지고 싶은 신입생은 술자리의 횟수와 지속 가능한 시간을 늘리기 위해 술자리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술자리에 대한 거부감이 있더라도 술자리에 참여하지 않으면 친분 쌓기가 쉽지 않기에 거절 의사를 보이기 쉽지 않다.


ⓒMBC '무한도전'


학과에 따라 “술 못 마셔도 괜찮아요”라며 비음주자를 배려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문화도 있다. 그러나 술을 마시지 않는 상태로 술자리에 참여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술게임 도중 술을 마시는 벌칙에 걸리더라도 “전 술 못 마십니다”라는 식의 거절 발언은 술자리의 흥을 깨거나 눈총을 받기에 십상이다.


선배 중에는 술을 즐기지 않지만 술자리에 참여하는 선배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선배’라는 권위가 있거나 술 없이도 술자리를 즐길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강사급' 역량을 가지고 있다. 신입생에게 권위나 레크리에이션 강사급 역량을 기대하긴 힘들기에 대부분의 술자리에서 술을 즐기지 못하는 신입생은 배제되기 쉽다.


술자리를 즐기는 신입생, 그러나 술게임은 불편하다


ⓒtvN '응답하라 1994'


술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신입생들은 선배들과 갖게 된 술자리에서 술게임이라는 ‘신세계’를 맛보게 된다. 화려한 손놀림과 신나는 술 구호에 매료된 신입생들은 어느새 "딸기가 좋아"를 외쳐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술게임은 게임에 대한 숙련도로 승패가 결정된다. 술게임에 능숙한 선배들보다는 술게임을 갓 접한 신입생들이 벌주를 독점할 가능성이 높다. 술을 강권하지 않는다는 말은 허울뿐이다. 신입생들은 ‘벌주’라는 그럴싸한 정당화에 술 강권을 간접 체험한다.


술 강권뿐만이 아니다. 술게임에서 졌을 시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벌칙 중 하나는 소위 말하는 ‘러브샷’이다. 합의된 상태에서의 러브샷은 용인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술자리에서 러브샷은 분위기에 휩쓸린 채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합의되었더라도 분위기를 생각해 마지못해 합의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합의 아닌 합의’로 시작된 러브샷은 신체적 접촉을 동반하기에 성폭력의 온상이 되기 쉽다. 러브샷은 단계별로 진행되며 단계가 상승할수록 신체 접촉의 수위가 올라간다. 일반적으로 러브샷은 술게임에 걸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지목하여 진행하거나 술게임에 걸린 두 사람이 함께 진행한다. 한껏 무르익은 술자리에서 러브샷에 대한 거절 의사를 내비치기 쉽지 않으며 누구도 그들의 의사를 묻지 않는다. 결국 두 사람의 거절 의사는 묵인된 채 러브샷이란 이름의 성폭력은 진행된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술자리에서 신체 접촉을 동반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줄 수 있는 술게임은 러브샷뿐만이 아니다. 또한 그러한 게임이 시작될 시 거절 의사를 보이기 쉽지 않다. ‘나 때문에 술자리 분위기가 깨진다’라는 압박감 때문이다. 특히 신입생 입장에서는 동기들과 선배들 앞에서 거절 의사를 보이면서까지 술자리 분위기를 헤치기가 더욱 어렵다.


권위주의적인 요소들도 대학가 술자리에서 여전히 발견된다. 올해 서강대학교 경영대 OT에서는 성희롱적인 방 이름과 방칙뿐 아니라 그 내면에 자리 잡은 권위주의적 요소 때문에도 논란이 있었다. "선배가 지목한 후배가 선배가 만족할 때까지 칭찬하기", "(다른)방 입장 시 위아래 춤 3명 이상 추기(단 방장, 15학번 여학우 필수)" 등의 방칙이 그러하다. 


재생산되는 술 문화


술에 대한 거부가 어려운, 성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요소가 내재한 술자리에서 참여자들의 의사는 묵인되기 쉽다. 특히 신입생들의 의사는 더욱 그렇다. 묵인과 묵인으로 점철된 술자리에서 대다수 신입생은 부조리한 술자리 문화를 학습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술자리 문화는 다음 해의 신입생에게 재생산된다.


개인의 의사가 거부된 술자리 문화는 매년 대학 내 성폭력과 권위주의적인 문제를 양산했다. 부조리한 술자리 문화라는 사슬을 끊지 않는 한 같은 문제는 계속해서 재발할 것이다. 이제는 그 사슬을 끊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