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불문하고 인터넷이 되는 곳이라면 ‘뮤지컬 프레스콜’을 검색하는 것이 일과 중 하나다. 취향저격 당한 뮤지컬을 발견하면 같은 장면을 다른 매체 동영상들을 찾아 무한 반복하는 것이 조건반사가 됐다. 무대 위 모든 것에 대한 설렘이 마음 속을 가득 채운다. 전문가처럼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엄청나진 않다. 하지만 배우, 음악을 사랑한다고 단언할 순 있다. 자, 뮤덕입문자의 ‘덕질’을 시작하련다.  

※[뮤덕일기]의 모든 작품은 필자의 순수한 ‘덕후’ 마음으로 다녀왔다. 지극히 필자의 취향인 작품들만 다룬다.


세로로 높은 무대를 따라 시선은 위로 옮겨진다. 무대 중앙을 향하는 한줄기 빛, 그 끝에 구두 한 켤레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고개를 위아래, 좌우로 돌리며 무대를 살피다 보니 안내 방송이 들려온다. “이곳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입니다.” 뮤지컬 ‘로기수’는 거제도 포로소용소에서 제네바 협정으로 포로들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했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희생이 주는 감동, 글쎄? 

ⓒ오마이뉴스


가시철장 사이로 높이 뛰어오르는 한 사내가 보인다. 뮤지컬 ‘로기수’의 포스터이다. 줄거리가 대략 짐작이 간다. 힘든 환경 속에서 꿈을 찾아 도약하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 줄거리도 그러했다. 주인공 로기수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는 공산군 포로다. 우연히 본 흑인 장교의 탭댄스로 그는 꿈을 품는다. 그러나 형 로기진과의 갈등, 포로수용소 내 이념 대립 속에서 그는 춤을 출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닫는다. 결국 형 로기진은 동생을 위해 희생한다.  


형이란 존재가 의무적으로 보살펴야 했던 동생을 위해 희생한다는 이야기. 예측 가능한 진부한 드라마다. 왜 언제나 부모들은 장남, 장녀에게 희생을 강요할까. 동생은 희생할 수 없나? “희생 없는, 굴곡 없는 해피엔딩이 더 진부하겠구나”하고 생각을 접었다. 사실 “글쎄?”라고 했지만 두 형제의 포옹과 로기수의 눈물에 나는 오열했다. 그 순간만큼은 두 배우는 형제 같았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느껴지는 애틋하고도 뜨거운 포옹이었다.    

 

각오 있게 춤추라 

ⓒPlay DB


뮤지컬 ‘로기수’의 킥은 탭댄스다. 탭슈즈 밑창과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무대의 울림을 통해 전해진다. 그때부터 넋이 나간 채로 그 춤사위를 바라봤다. 탭댄스에 무지한 사람이 보더라도 발을 동동 구르는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극 중 탭댄스의 비중이 큰 로기수. 그가 원하는 것이 분명해진 듯 발구름을 강하게 치닫는다. 그의 꿈은 흐르는 땀과 함께 얼굴에 번져간다. 춤을 출 때 그는 참 행복하고 간절해 보였다. 아직도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린다. 로기수의 간절함이 가장 잘 느껴지던 장면이라 생각한다. 뮤지컬 ‘로기수’는 커튼콜에서마저도 각오 있게 화끈하게 춤췄다. 


한국 창작 뮤지컬, 차근차근 한 단계 위로 


창작 뮤지컬 ‘로기수’는 이번 초연을 시작으로 첫선을 보였다. 올해 상반기 때부터 꾸준히 창작 뮤지컬은 초연, 재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거리 예술가들의 야이기 ‘곤 더 버스커’, 병맛 코드로 인기몰이 했던 ‘난쟁이들’, 매혹적인 ‘마마 돈 크라이’, 김수로 프로젝트의 첫 대형 뮤지컬 ‘아가사’,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 ‘영웅’ 등이 있다.  


모든 작품을 보진 못했지만, 몇몇 작품들을 보면서 창작 뮤지컬에 가진 편견들이 사라졌다. 점점 그 수준은 높아지고 있으며, 그 작품을 보기 위해 다시 공연장을 찾아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한국 창작 뮤지컬은 라이선스 대형 뮤지컬 정도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대부분 중소형 뮤지컬로 앙상블 대신 주인공 외 인물들이 멀티맨이 되어 다른 역할까지 함께 소화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또 공연장의 크기는 대형 뮤지컬보다는 훨씬 작다. 투자 또는 제작 예산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창작 뮤지컬들이 꾸준히 공연하는 것은 한국 뮤지컬계가 창작 뮤지컬 제작에 있어서도 차근차근 단계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창작 뮤지컬이 대형 뮤지컬로서 큰 무대에서 인정받는 작품이 더 많이 제작되길 기대해본다.  


글. 은가비(boyeon032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