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이슈팀의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 텍스트를 소개하려합니다. 공부합시다!


미국 명문 H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교수님. 미국 명문 S대로 유학을 떠난 친구. 미국대학의 학위를 받았다는 이유로 우대받고 존경받는 이들의 미국 생활은 실제로 어땠을까. 이번 주 청년 연구소에서는 미국 유명 대학의 학위를 획득 한 사람들과, 획득하러 간 사람들에 대한 실체를 파헤쳐 보기 위해 ‘지배받는 지배자 :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돌베게 펴냄, 김종영 지음)’을 보았다. 유학파들의 미국 학위는 거품일까? 그들은 미국에서도 엘리트로 불렸을까? 미국 유학파에 대해 1999년부터 연구했다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알라딘


나는 간다. 미국으로


인터뷰 하나 자본주의 사회라는 게, 요새 같은 경우에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는 참 힘들잖아요. 왜냐면 가진 자는 더 갖게 되고. (···) 특히 우리 사회는 더 하잖아요. 경제력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근데 경제력을 이루는 바탕 중 하나가 교육이 아닐까···. (아버지께서) 글로벌리제이션을 좋아하시다 보니까, 미국에 갔다 온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니지만 가서 보고 느끼고 실질적으로 사는 데 도움이 되고··· 그렇다면 갔다 오는 것도 어떤 투자라는 차원에서 좋지 않겠냐(고 말씀하세요)


인터뷰 둘 어차피 (나는) 박사를 할 거란 말이지. 한국에서 하든지 미국에서 하든지 박사 똑같이 하는데, 똑같은 박사인데 결과가 다르단 말이야. 대우가 다르단 말이야. 그래서 아차피 공부를 할 거라면 외국에서 하자 이거지. (···) 내 주위에도 유학 갔다 온 사람들 많아. 분명히 유학 갔다 온 (사람이) 대우를 받는데, 사실 내가 봤을 때는 그렇게 유학 갔다 왔다고 해서 잘한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어. 그런데 왜 내가 국내 박사 해가지고 저런 사람에게, 왜 내가 단지 학벌로 밀려야 되느냐, 그런 생각 많이 했어.


인터뷰 셋 저희는 모든 학부생이 컴퓨터 한 대에 들러붙어서, 컴퓨터 한 대만 가지고 썼어요. 그런데 이 학교(미국에 있는 학교)에는 학부생들이 쓸 수 있는 컴퓨터가 몇 백 대나 있으니까. 한 대 가지고 몇 십 명, 몇 백 명이 쓰던 컴퓨터가 여기서는 거의 개인이 하나씩 써도 될 정도로 많고, 자원이 많고, 또 연구 분야도 훨씬 다양하고, 교수도 많고.


인터뷰 넷 (지도교수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일이 굉장히 많은데 애들한테 돈도 한 푼 안 주고 엄청나게 부려먹고, 그렇다고 가르쳐주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애들만 들들 볶으면서 좀 그랬어요. 만날 혼내고. 일 잘 못해놨다고.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이러면서 혼났거든요, 우리는.


인터뷰는 미국 유학생들의 대표적인 유학 사유 네 가지다. 유학생들은 첫 번째 인터뷰의 내용처럼 가족 안에서의 권유로 인해 미국 유학을 떠났거나, 두 번째 인터뷰처럼 대학과 기업에서 우대를 받기 위해, 세 번째 인터뷰처럼 여건이 더 좋은 곳에서 연구하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 인터뷰의 내용처럼 우리나라 대학에서의 학벌·성차별과 비민주성으로부터의 탈출을 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사유는 가지각색이지만 이들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 인정받은 엘리트 들이고 미국 대학도 입학을 허락한 인재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미국 대학의 강의실 안에서도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엘리트들일까.


미국 대학의 한국 열등생들


미국으로 유학을 간 많은 학생은 우리나라의 명문대를 졸업했고, 이들의 학업성적과 영어성적 또한 좋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우수한 학생들은 미국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동안 자신을 ‘열등한 학생’으로 생각하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영어 때문이다. 미국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영어를 잘한다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능력이 필요하지만, 유학생들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원 과정의 수업은 우리나라보다 집중적이고 전문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처럼 교수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강의가 아니라 교수와 학생 간의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것이 주가 된다. 영어 구사력이 익숙하지도 않고, 그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토론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유학생들은 미국 대학원 수업에서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영어의 어려움은 유학생들이 강의조교(Teaching Assistance)로 미국 학부생들에게 수업할 때에도 나타난다. 


영어로 인한 문제뿐만 아니라 차별 또한 유학생들의 겪어야 하는 어려움 중 하나이다. 대학원에서 조교를 할 경우 학생들에게 일정 정도의 장학금이 나온다. 미국 대학의 등록금은 매우 비싸므로 학생들끼리 조교를 하기 위한 경쟁이 심하게 벌어진다. 하지만 미국 대학의 교수들은 언어 문제가 없는 미국 학생들이 외국 학생들보다 선호한다. 유학생들이 조교를 지원했는데도 불구하고 지원하지도 않은 미국 학생이 조교를 배당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국제교육원(IIE). 인구 비율로 보았을 때 미국 유학생들이 가장 많은 나라는 우리나라다. 


미국 유학파의 화려한 귀환 그리고 작가의 말


유학생들은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 불리는 곳에서의 학위를 갖고 귀국한다. 유학생들이 미국 대학에서 받은 학위는 학벌이 중시되는 우리나라에서 이들을 최상층 그룹으로 만들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들이 미국에서 열등생이었는지 우등생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유학생들은 미국에서 선진(?) 기술을 배웠고, 글로벌한 인재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식된다. 미국에서 소수의 열등생이 우리나라에서 소수의 엘리트가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미국파 유학생들은 지식의 생산자로서 진정한 엘리트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은(미국파 유학생들) 현재의 계급질서를 무너뜨릴 혁명보다는 일상적인 저항을 통해 자신들의 조건을 조금씩 낫게 만들려고 한다. 한국 지식인들에게 한국 대학과 학계에서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를 전복시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고 말한다. 무슨 말일까. 미국 유학파들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엘리트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미국의 학위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엘리트층에 머무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정리해보자.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미국 유학파들은 미국 학위란 ‘티켓’과 학벌주위라는 ‘버스’를 타고 우리나라의 최상층 계급으로 ‘무임승차’한 이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런 혁신적인 결과물 없이 자격증과 사회적 분위기가 이들을 우리나라 꼭대기 계급으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지배받는 지배자’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학벌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명문대 유학생의 허울이 드러났다. 물론 ‘허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긴 하였지만, 미국 유학을 마친 모든 교수들과 현재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의 노력을 ‘허울’로 치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가진 학벌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진정 그 사람의 능력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글. 상습범(bisw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