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위에 찰리 채플린’이라는 말에 혹했다. 레이먼 사비냑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상상마당이 20세기 거장 중 한 사람으로 꼽은 레이먼 사비냑은 프랑스의 포스터 아티스트이며, 살아생전에 많은 광고 포스터를 그렸다. 그의 클라이언트는 에르메스(Hermes) 같은 명품부터 문구사 빅(BiC)처럼 대중적인 브랜드까지 그 범주가 다양했고, 속성 역시 식료품, 의약품, 영화, 축제 등 말 그대로 소재를 가리지 않았다. 클라이언트 없이도 포스터를 제작하며 전시회를 열었고, 배우를 포함한 특정 인물을 포스터로 표현하기도 했다.

 

상상마당 그래피티 월에 설치된 POT-AU-FEU MAGGI ⓒ Raymond Savignac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이번 레이먼 사비냑 전시회의 제목인 “비주얼 스캔들”은 중앙일보에 따르면 1960년대 사비냑이 제창한 것이라고 하며, 상상마당 자료에서는 1949년 그가 논커미션(non-commissioned) 포스터 전시회를 열며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기 위해 본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이 단어는 소비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충격적이거나 독특한 내용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레이먼 사비냑의 경우 시각적 충돌을 일으키는 이질적 요소의 결합(예를 들면 잔인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귀엽지만 섬뜩한 조합)을 많이 선보였다. 그는 주로 상품을 사람의 형태로 그려놓는 식의 방법을 많이 사용했으며, 앞서 말한 찰리 채플린에 빗댄 문구를 봐도 알 수 있듯 레이먼 사비냑은 포스터라는 기법 위에 유머와 위트를 담고자 많은 시도를 했다.

 

전시된 책자에 그려진 포스터들 ⓒ Raymond Savignac

 

우선 그래피티 월을 통해 선보인 “마기 포토프(Maggi Pot-Au-Feu)”는 식품회사의 육수 통조림을 다룬 것이다. 지금은 재치 있다고 웃으며 보는 포스터지만, 이 작품이 나온 당시 많은 사람은 혼란과 충격을 겪었다고 한다. 마치 닭이 치킨을 들고 있는 식의 인지부조화(?)는 사비냑의 여러 작품에서 등장하는 방식 중 하나다. 책에 실린 우유 광고 역시 마찬가지다. 놀랍고 재밌으면서도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위) Maurice Baquet, 아래) Tricosteril ⓒ Raymond Savignac


전시회 내부 작품 중 몇 가지만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모리스 바케(Maurice Baquet)를 포스터로 표현한 위 작품은 모리스 바케가 배우이면서 동시에 첼리스트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아래는 통풍이 잘되는 반창고를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굉장히 직관적인 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중 하나는 아래 두통약 광고 포스터다. 개인적으로 두통을 자주 앓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두통을 굉장히 잘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단번에 받았다.

 

 

Aspro ⓒ Raymond Savignac

 

외에도 크게 느낀 것 중 하나는 상업광고에서 상품을 표현하는 방식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점이다. 빅(BiC) 사의 면도기 광고에는 얼굴 자리에 달걀을 그려놓고(그만큼 말끔하게 면도가 된다는 의미), 필립스(Phillips)의 면도기 광고, 청소기 회사의 광고도 굉장히 직관적이다. 담배 광고에는 담배가 들어가고, 정보에 관한 광고에는 신문과 책이 들어간다. 이처럼 단순하고 쉬우며 결정적으로 재미있기에 가볍게 즐길 수 있지만, 작품 뒤에 담겨 있는 ‘시도’나 ‘고민’을 생각해보면 몇 작품은 의미와 오브제의 조화만으로도 큰 감동을 준다.

 

(왼쪽부터) L'eau Ecarlate, Paris-Rhone, Philishave ⓒ Raymond Savignac

 

또한 사비냑은 자신만의 기법과 톤을 구축했고 단순화시키면서도 세련된 면모를 잃지 않는다. 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고민과 시도, 철학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찰리 채플린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그는 한 장의 포스터에도 명확한 메시지와 즐거움을 함께 담고자 했다. 그러므로 커미션을 받지 않은 포스터나 의미만 있는 포스터도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대표적으로는 “응석받이 아이들”이라는 영화 포스터나 “그들에게 바다를 보여주라”, 에르메스 광고 포스터를 추천하고 싶다. 살충제 포스터나 축제 포스터도 좋지만, 앞서 추천한 작품들은 직관적인 매력 이상으로 한 사람의 정신이 가진 스케일을 포스터로도 확인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KT&G 상상마당과 프랑스 파리시, 프랑스 문화원 등이 함께하며 원화작품 100점을 가져왔다. 전시는 8월 30일까지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열리며, 휴관일은 없고 관람료는 7000원이다. 현장할인은 물론 여러 할인혜택이 진행 중이니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글/사진. 블럭(blucsha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