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6일, 천안함 폭침 1주기 추모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사고 해역이던 백령도는 물론, 전국 각지에 분향소가 마련되고 추모 물결은 계속 되었다. 1년 전 사건이 발생하던 날 나는 육군 상병으로 어느 해안 부대의 당직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점호 후 저녁 10시에 취침 소등에 들어갔다. 잠시 후 지휘통제실로 부터 긴급히 연락을 받게 되었고, 중대에서 유사시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되는 정보 분석조 및 5분대기조에 소속된 운전병 및 정보병을 깨워 상황을 전파했다. 상황 전파가 소강상태일 때 TV를 켰다. 한창 드라마가 방영될 시각에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속보의 내용은 '천안함 침몰'. 그렇게 천안함 사고 소식을 알게 되었다.

다음 날, 사건의 원인과 관련된 각종 추측성 기사와 뉴스들이 난무했다. 오래된 배의 내부 폭발로 인한 사고일 것이다, 경계 작전 중에 암초에 걸려서 배가 침몰한 것이다, 다른 배와 충돌하여 가라앉은 것이다,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폭침이다. 여러 추론 중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북한과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온 국민들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초조하게 원인에 대한 규명을 기다렸다. 국방부가 최초에 알린 사건 발생 시간이 계속 변하는 것과 관련하여 정부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각종 음모설이 제기되었다. 수색 작업은 조류라는 난관 속에서 가라앉은 선체의 위치를 찾는데 며칠을 흘려보냈다. 발견 후 바로 구조 작업을 위한 구조팀 투입이 시작되었으나 이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역시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의 특성 때문에 구조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었고, 작업 인원 역시 한정적이었다. 그 와중에 故 한주호 준위가 운명했다. 수색 작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쌍끌이 어선까지 동원하여 수색 작업을 펼쳤다, 그러다 금양호가 다른 어선과 충돌하여 침몰했다.


많은 시간과 몇몇 사람들의 목숨과 바꿔가며 구조 작업을 벌였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생존자를 찾을 수 없었다. 유족들의 동의하에 수색 작업은 중단되었고 함수와 함미를 인양하기로 결정했다. 천안함은 철저히 준비된 인양 작업 끝에 뭍으로 어렵사리 끌어올려졌다. 부서진 선체에서 희생자 40명의 시신을 찾아냈고, 찾지 못한 6명은 산화로 결론을 내렸고 해군장으로 영결식은 치러졌다. 정부는 민, 관 합동 조사단을 꾸렸고, 외국에 도움까지 요청하여 투명하게 규명할 의지를 보였다. 사건 발생 한 달이 조금 더 지나 북한의 소행이란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또 여론은 분열되었다,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오로지 누구의 소행이냐? 에 초점이 맞춰졌다. 합동 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까지 거론되면서 여론은 악화되어 갔다. 물론 국가적인 차원에서 누구에 의해 벌어진 일이냐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 전에 사고로 인해 다수의 사람이 희생되었고 그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구조하려던 사람들을 잃었다는 것을 우리는 망각해 버렸다.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현충원 안장과 화랑 무공 훈장 수여에 반발하던 사람들,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사건과 관련 없이 소문을 퍼뜨리고 여론을 만들어 혹세무민 하려는 이들, 희생 장병 중 어느 누군가의 어미는 죽은 아들의 보상금에 눈이 멀어 어린 시절 집을 나간 뒤 한 번도 만나주지 않다가 돈의 일부를 자신의 몫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왜 그들이 죽어야만 했는지, 그들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하고 죽은 자들의 영결식동안 잠시 잠깐 슬퍼하고 이내 잊어버렸다. 슬픔과 비통함은 승선해 있던 희생 장병의 전우인 생존 장병들과 희생 장병의 유족의 몫으로 남았다. 2010년 봄, 한창 피어야 할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간 이들은 그렇게 사람들의 뇌리에서 조금씩 잊혀졌다.


천안함 사건으로 희생당한 이들은 우리의 아버지, 아저씨, 형, 오빠, 동생들이다. 천안함에 승선해 있던 장병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의무를 다 하던 우리 주변의 이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안 그 터전을 북한의 도발과 위협으로 부터 지켜주느라 국군 장병들은 청춘을 바친다.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천안함 장병들은 우리나라의 영해를 수호하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왜 하필 46명의 용사와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노력하던 한주호 준위를 비롯해 금양호 선원들이 세상을 등져야 했을까? 이는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사람은 나 또는 나의 가까운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그냥 그들은 그 날 그 자리에 있도록 선택 당했을 뿐이고, 자신의 본분을 다 하다 죽었다. 그 본분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을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앞으로도 매년 천안함 몇 주기라며 계속해서 추모가 진행되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우리의 가슴 한 켠에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벌써 1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