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영국 리버풀의 한 쇼핑몰에서 ‘제임스 버거’라는 두 살 난 남자아이가 실종됐다. 아이는 쇼핑몰에서 2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됐고, 경찰은 CCTV를 통해 범인들을 찾아냈다. 놀라운 건 제임스 버거를 살해한 범인들이 열 살 밖에 되지 않은 초등학생 남자 아이들이었다. 두 명의 소년은 잔인한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종신형 대신 8년 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2001년, 두 사람은 새로운 이름을 갖고 출소했으며 이들의 이름은 극비에 부쳐졌다.
영화 보이A는 제임스 버거 사건을 두고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가해자였던 소년의 입장을 취한 뒤,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질문들 앞에서 우리는 단 하나만의 입장을 취할 수 없게 된다. 정말 수많은 사건들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정확히 나눌 수 있을까? 범죄자의 수감생활 이후의 삶은 어떻게 보장되어야 할까? 하지만 내 주위에 범죄자가 있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볼 것인가? 가해자는 정말 가해자였을까?
ESCAPE
불안의 순간, 만나게 되는 보이B
잭은 안정적인 직장, 사람들과 어울리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잭은 새로운 삶 속에서 늘 위태롭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 과거가 알려질까 전전긍긍하고, 자신의 가석방 소식을 언론이 집중조명하면서 더욱 불안에 휩싸인다. 그 때 마다 잭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 함께 지냈던 필립을 떠올린다.
영화 속 필립이라는 소년은 정말 10살이 짜리 소년이 맞을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잔인하다. 강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나무에 박힌 못으로 내리 찍는다. 그 순간 필립의 모습은 소년이 아니다. 더 강하게 내리 칠수록, 눈동자가 선명해진다. 나중에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도 필립은 아무 망설임 없이 칼을 휘두른다. 무엇이 10살짜리 소년을 이토록 분노하게 만들었을까.
"수많은 문이 있는 방을 상상해. 수많은 문이 닫히고 있어. 내게서 가장 먼 쪽의 문이 먼저 닫혀.
그런 뒤에 점점 가까운 쪽의 문이 닫혀. 그리고 난 생각을 해.
마지막 문이 닫힐 때까지 울음을 계속 참을 수 있다면, 난 전혀 울지 않은 게 된다고. 난 울지 않았어."
필립과 잭이 잔디밭에 눕는다. 필립은 잭에게 남자한테 강간을 당해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형에게 강간을 당하면서 필립은 우는 법 대신 울음을 참는 법을 터득한다. 마음 속에 생긴 상처를 자기보다 약한 존재들에게 분노로 표출한다.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힘으로 누르려 할 때마다 필립은 ‘악’의 모습으로 돌변한다. 영화 내내 폭력을 휘두르던 필립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억지로 눈물을 참을 때, 그는 그제서야 10살짜리 소년이 된다.
가해자를 과연 가해자로만 볼 수 있을까. 영화 속에서 살인을 저지른 두 소년은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였다. 누군가와 소통을 원했지만, 학교 선생님도, 가족도, 친구들 모두 그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물론 마음 속에 생긴 상처를 범죄를 통해 표출시키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왜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어떤 이유, 환경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알게 된다면, 그들을 ‘용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A가 가석방 된 뒤 사람들은 그의 행방을 쫓는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사회는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난 뒤 쏟아지는 질문들 앞에서 단 하나의 답을 내릴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 진다. 범죄자의 수감생활 이후, 그의 사생활이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내 옆에 그가 머무른다면, 나는 색안경을 끼지 않고 그 사람을 볼 수 있을까. 타인의 일이라 생각할 때는 쉽게 답이 떠오르다가도 그 일이 내 삶으로 들어오는 순간,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인생은 단순하지 않아서 내가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내 존재가 불행의 시작일 수 도 있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나는 항상 약자일지 몰라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일 수 있다. 인간은 단 하나의 입장만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을 용서한다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향한 비난, 미움이 난무하는 지금, 영화 보이A를 통해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타인을 비난할 수 있는가. 그 타인은 사실 당신일 수도 있는데.
그토록 쉽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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