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의 대부분을 ‘다함께’라는 운동단체에서 반전·노동 운동에 힘썼던 그였다. 10년 동안 ‘고대 병설보건대 투표권 인정요구’ 시위, 광우병 촛불시위, 강정해군기지 반대 등 굵직굵직한 투쟁현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겼었다. 그러나 학생 운동권이 몰락하고 있고, 진보정치가 대중들의 외면을 받는 가운데서, 그의 투쟁도 빛이 바랬다.
Q. 내가 만나본 20대 중후반의 운동권들은, 2002 촛불시위로 정치화가 되는 케이스가 많았다. 지윤씨도 마찬가지였나?
Q. 대학에 와서 달라진 건가?
언론인이 되고 싶어 교지편집부에 들어갔다. 당시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 개발을 하면서 노점상들을 쫓아내는 것을 보게 되었고, 피해자인 노점상들을 인터뷰하면서 문제의식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과 노무현 정부의 파병 등을 보면서 충격을 받기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Q. 다함께에서는 교지편집부 들어가자마자 활동하게 된 것인가?
아니다. 다함께는 2학년 때 가입을 했고,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된 건 그러고 나서도 한참 있어서다. (열심히 하게 된 계기는?) 시나브로...(웃음) 반전운동을 열심히 했고, 반전 운동에서 다함께가 하는 역할을 보았다. 나도 이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옳다고 느껴지고, 힘을 보태야겠다는 확신을 가져야 열심히 하지 않겠는가. 내부에서도 수많은 토론과정을 거치면서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Q. 운동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는가? 운동을 안 했으면 명문대 학벌을 기반으로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Q. 희생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남들에게는 희생처럼 보이기도 한다.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놓친 부분은 많을 것 같은데.
Q. 사실 운동의 가장 큰 방해요소는 돈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고,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말리시지 않았나?
운동하는 걸 부모님이 알게 되신 계기 자체가 학교에서 출교당하고 나서 (김지윤씨는 병설보건대 투표권 보장 시위를 하다가, 교수들의 퇴근길을 막고 그들의 의견이 담긴 요구안을 내민다. 그러나 교수들은 끝까지 요구안을 받지 않고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 버티고 있었다. 다음 날 이 사건은 ‘교수 감금’으로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시위 주동자로 출교당했지만 재판을 거쳐 복학을 했고, 현재는 졸업을 했다.) 이후에 천막투쟁 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일단 마녀사냥 당하는 상황에서 구출하는 게 부모님으로선 중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반대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우리 딸이 무슨 활동을 하다가 학교에서 출교까지 당했지?’ 이렇게 생각하셨을 거다. 그런데 겪어보니까 학교라는 거대 권력과 언론들이 작당을 하고, 학교에서 운동하는 애들을 뿌리를 뽑으려고 하는 거라고 느끼신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애들 투쟁에 미화 노동자분들도 연대하고 있지? 저분들은 왜?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하나하나 관심을 넓혀가는 과정을 부모님도 같이 겪으셨다.
Q.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경선에 도전하고, 20대 국회의원에 도전했었다. (현재는 탈당) 당시 청년비례대표에서도 부정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구)당권파들에 대한 원망이나 불신은 없나?
Q.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나? 새누리당 이준석씨는 운동권들이 10년 동안 좌파 운동하다 보면, 다른 걸 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는데, 이 말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Q. 해적기지라는 표현은 대체 왜 썼는가?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소지가 있었던 것 같은데
독창적 표현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건설이 강행되고, 물리력으로 반대운동을 짓밟는 과정 속에서 나왔던 단어다. 주민들이나 평화활동가 분들이 ‘해적이나 다름없다.’ ‘해적기지다.’ 이렇게 말해고, 실제 해적기지처럼 건설됐다. 문정현 신부님같이 거기에서 오랫동안 운동에 헌신해온 분들이 그런 표현을 썼고, 나 역시 그분들을 따라 쓴 것이다. 내가 ‘해적’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해군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지금 제주 강정에서 해군이 하고 있는 일 자체가 그들 스스로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 있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생존권을 빼앗고, 그런 운동가들을 연행해가고, 연행한 사람들 구속시키고, 벌금을 몇천몇억씩 물리고 있는 건 해적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조금의 사과나 반성 없이, 표현만 꼬투리 잡아서, 마치 사병들의 명예를 위하는 양 구는 해군당국이 위선적이라고 생각한다.
Q.요즘에는 해군기지 반대하면 종북이라고 하더라. 그런 말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종북이라는 말은 모욕적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물론 나는 지지하지 않지만, 그 사상 자체가 탄압을 받으면 같이 싸워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보수가 ‘종북’으로 지칭하는 사람들은 남한에서 민중운동에 헌신해왔던 사람들이다. 나는 그 분들을 동지라고 부른다. 나와 북한 문제에 대해서 입장이 다르지만, 해군 기지, 쌍차 문제 등 다른 수많은 쟁점들에서 동지로 부를 수 있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Q. 대선은 진보세력이 크게 고전을 할 것 같다. 대선 이후에 진보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Q. 대선이 끝나고, 앞으로 본인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
Q. 차기 정부에 바라고 싶은 점이 있나?
누가 되더라도 첫 번째로는 쌍용차 문제 해결, 두 번째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 쌍용차 문제 해결을 더 먼저 말씀드린 건, 지난 주말 쌍용차 집회에서 김진숙씨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모두가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는데, 왜 해고자 복직은 안시키는거냐? 일자리 타령하면서 정작 일자리 뺏긴 사람들에게 일자리 돌려주는 일은 왜 안 하느냐’라고. 정말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도 당연히 필요한 일이겠고…
20대 입장에서 생각을 해본다면, 양질의 일자리문제, 등록금 문제를 말만 하지 말고 실천해줬으면 좋겠다. 모두가 반값 등록금을 이야기하는데 얘기만 하지 말고 실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물론 정치인 집단들이 말 바꾸는 걸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정책을 강제하는 건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뉴스 >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D-12] '임금체납 신고했더니, 사용사업주' 나 몰라라'에 파견복직 시켜' 비정규직 파견근로자 김은영 씨 (0) | 2012.12.07 |
---|---|
[D-13] “현 교육체계는 '왜' 공부 하는지에 대한 고찰이 없어요” 스물둘 대학생 새내기 이현우 씨 (4) | 2012.12.06 |
[D-15] "새누리당 비대위원직, 큰 사고 칠 기회가 주어진 거죠" 클라세 스튜디오 대표 이준석 (4) | 2012.12.04 |
[D-16] "언젠가 제가 세계 일주 하리라 믿고 있었어요" 2년 간 홀로 세계일주 한 임지혜 씨 (3) | 2012.12.03 |
[D-17] "좀 늦어지면 어때요. 제가 배우고 싶은 걸 배워야죠" 꿈을 쫓는 삼수생 김은영 씨 (5) | 2012.12.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