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政治)를 하랬더니 정치(情治)를 하고 있다. 8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용석 씨의 의원직 제명안이 부결됐다. 강용석 씨는 작년 7월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할 수 있겠느냐”는 성희롱 발언을 한 인물이다. 그는 그 발언으로 당에서 제명을 당했으며, 현재 성희롱 혐의로 법원 1심에서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징역 6월(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작년 7월에 일어난 일을 이제야 표결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인데, 그 표결마저 부결되어 버렸으니 국회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와중에 김형오 전(前) 국회의장이 했다는 발언이 화제다. 그는 제명안 표결에 앞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성경 문구를 인용하며 “여러분은 강 의원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요?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가 지칭한 ‘여러분’이 한나라당 의원들인지, 아니면 자리에 배석했던 의원 전부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들을 국회로 보내준 국민들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어떤 경우든 웃기는 일이다. ‘여러분’이 동료의원이라면, 그는 ‘우리들 역시 강 의원 정도의 죄가 있다’는 사실을 인증한 셈이고, ‘여러분’이 국민이라면 그는 국민 전체를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제명안이 부결되어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 강용석 씨 @sbs

그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보자면,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돈을 약속했다는 곽노현 교육감에게도, 학우를 성추행했다는 어느 학교 의대생에게도 돌을 던질 수 없다. 선거만 있으면 돈이 차떼기로 왔다갔다 하는 세상인데, 누가 ‘2억’을 가지고 돌을 던질 수 있나. MT만 가면 목을 감고 러브샷을 하는 세상인데, 누가 MT 성추행에 돌을 던질 수 있나. 대체 그의 논리대로라면 우리가 돌을 던질 수 있는 사건이 있기나 한가.

‘죄 없는 사람만 돌을 던지라’라는 논리도 문제지만, 그 논리의 적용 대상이 국회의원이라는 것도 문제다. 국회의원이 어떤 존재인가. 개개인이 법을 발의할 수 있는 ‘입법기관’이고, 직접 선거로 선출되는 ‘국민의 대표’다. 개개인이 입법기관이기에 높은 윤리의식과 도덕이 요구된다. 대신 국민이 직접 뽑은 존재이기에, 마찬가지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의결에 의하지 않고서는 제명되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윤리의식과 도덕을 심판해 제명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곳은 국회밖에 없다는 뜻이다. 때문에 죄가 있든 없든 국회는 강 의원에게 돌을 던졌어야 했다. 그것이 국회의 의무고, 또 국민의 요구였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랴, 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형오 전 의장의 발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치탄압으로 인해 국회의원 중 유일하게 제명 당했던 김영삼 전 의원의 예를 들며 “김영삼 총재 징계의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실 것입니까? 이 정도 일로 제명한다면 우리 중에 남아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라고 말한 것이다. 성희롱 정도는 제명당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의 인식도 우습지만, 유신정권의 날치기로 제명 당했던 김영삼 전 의원과 성희롱 사건으로 심판대에 올랐던 강 씨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최연희 씨, ‘대구 밤문화 사건’의 주성영 씨 모두 의원직을 잃지 않았었다. 때문에 이번에 강 씨의 의원직 제명안이 가결되었다면, ‘부끄러운 역사의 반복’이 아닌, 국회의원도 부정한 일을 했을 경우 제명당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선례’가 될 수 있었다. 이번 표결이 못내 아쉬운 이유다.

민노당 이정희 대표의 트윗에 따르면, 김 전 의장의 이런 발언을 두고 한나라당 쪽 좌석에서 “잘했어”, “살신성인했어”라는 외침이 나왔다고 한다. ‘살신성인’이라니, 모두가 공감했으나 하지 못한 말이라 살신성인이라는 뜻인가. 하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그 반응에는 공감이 간다. “이 정도 일로 제명한다면 우리 중에 남아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라는 말을 했고, 그 말로 “잘했어”라는 공감까지 이끌어내셨으니 그야말로 국민에게 살신성인한 것 아닌가! 자신의 이미지를 깎으면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인식을 샅샅이 고발했으니 말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의 말을 빌리자. 김형오 씨, 한나라당은 ‘사실상’ 성(性)나라당, 인증 제대로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