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마다 하나씩 있는 학보사. 왜 대학마다 학보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학보는 학내 주요 이슈를 다루고 감시와 보도기능 역할을 수행한다. 학교는 기자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학보사에 제작비를 지원해 학보사를 유지한다. 이것이 학교와 학보사의 관계이다. 하지만 감시나 보도 기능을 수행하기 보다는 자장면 받침대로써 혹은 간이 우산으로 쓰일 때가 많은 학보.
 
학생들이 학보를 읽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 외대학보 뒷면에 실린 학보읽기 캠페인. 외대학보에서는 기자시선을 통해서 '돈 아까워서라도 학보를 읽자'고 외치기도 했다.


독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 반대의 입장에서 왜 학보를 읽지 않는지 나름대로 변(辨)을 해보려고 했다. 학보를 읽지 않는 이유는 신문이 사양 산업이라는 것, 학생들 자체가 학내 이슈와 사회 이슈 자체에 무관심하다는 것, 신문이든 책이든지 활자 읽기를 싫어한다는 것 등 독자 자체의 문제도 있다. (이 문제는 다른 꼭지에서 다룰 예정이다.) 반대로 독자의 입장에서 학보를 바라보면, 학보 자체가 흥미도가 떨어지며, 학교의 소식을 학교 측의 입장에서 대변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에 거부감이 든다. 또한, 학보에서 다루는 기사들과 소재 자체가 재미가 없기도 하고, 기사 어투 자체의 흥미도도 떨어진다. 

실제로 '각 대학의 학보들을 정독했을 때 똑같이 이런 의견이 나올까?'라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학보들을 직접 수집해 보았다. 수집한 학보들을 바탕으로 과연 학보가 저런 비판을 받을 만한 근거가 있는지 실증해보기 위함이었다.

학보를 수집한 기간은 9월 14일부터 21일까지이며, 수집대상 학교는 경희대, 덕성여대, 서강대, 성균관대, 세종대, 숭실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가나다 순) 총 9개 대학이다. 이 학교들은 무작위로 선발된 학교들이며, 표본 오차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오차를 비롯한 판단오류 등은 운에 맡긴다 생각하고, 각 학교의 학보를 분석해 보았다.

학보들이 갖는 공통점을 몇 가지로 압축시킬 수 있었다. 각 학교는 매주 혹은 격주로 월요일에 신문을 발행한다. 학보의 매수는 8면 혹은 12면을 기준으로 한다. 면 구성은 학교마다 다르나, 대학면, 문화면, 여론면은 꼭 존재했다. 학보의 1면은 그 주의 이슈를 다루나, 보통 양 쪽 입장을 다루지만 보도에 그치는 학내 이슈 홍보에 바쁜 듯 보였다. 일반 신문 대판 형태와 베를리너판 형태가 대다수였으나 베를리너판보다 조금 더 긴 형태도 존재했다.

다양한 종류와 형식, 출처의 학보들을 정독했다. 각 학교마다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약점이 있었다.


                        ▲ 학내 정보와 정책 홍보 위주의 기사들이 1면의 주류를 차지한 것을 볼 수 있다.


1. 학내보도는 소식 전달의 측면만이 강화되고,
    비판적 기능이 희미해짐


 이 부분은 1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숭실대 학보의 1면에 실린 ‘봉사바람의 중심, 봉사지원센터 신설’ 등 3개 기사는 학교 정보 위주로 학생들이 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내용이 1면을 차지하고 있다. 외대학보 또한 ‘새싹을 키워 나무로, 새싹 멘토링 발족‘ 등 3개 기사에서 대체적으로 학교 정책 홍보에 치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떨림으로 가득한 덕성, ’세계로 go!‘ 창학 90주년을 위한 준비 한창’, ‘글로벌 리더 덕성, 더욱 성장해 나갈 것’과 같은 기사로 1면을 가득 채운 덕성여대 학보 또한 학교 현황 소개에 그친 것을 알 수 있다.

학내 소식 전달뿐 아니라 학교 측의 입장에서 의견을 싣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 숭실대 신문의 ‘0762 신문사에 물어보세요 - 채플 전자 출결 안하나요?’라는 기사 또한 학교의 변명을 그대로 내보내 정말 학교의 의견을 싣는 신문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특히 연대학보의 경우, ‘김한중 총장에게 듣는 송도캠의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으로 총장의 인터뷰를 크게 다루어 학내 쟁점이슈를 편향된 의견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 연세대 內 뜨거운 감자인 송도캠에 관한 총장의 변명과 의견들이 특집으로 크게 다루어진 모습.


비판적 기능이 희미해지는 이유가 발행인과 편집인과의 권력관계가 작용했던 것인지, 혹은 자기검열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발행인이 총장이라는 사실과 학교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친(親) 학교적이며 학보의 시스템이 독립적일 수 없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한 듯 하다.


▲ 이화여대의 1면과 연세대 기획에서 나온 기사들. 특히 이대의 경우, 학내 문제의식 제기와 학교 정책에 대한 비판기사가 눈에 띄게 많았다.

반면에, 비판적 시선을 살리고자 노력한 코너를 1면에 넣거나, 적어도 2,3면 등에 비중있게 싣는 경우도 있었다. 이화여대의 경우  ‘대학원생 장학금, 다양화 및 금액 확충 필요’ ‘변경기간 끝난 후 폐강 공지로 학생 피해’ 등 전체적으로 학생 입장의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본 학교 이슈를 다룬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학교들과는 다르게 비판적 어조의 글이 1면 전체를 차지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 외에 세종대 2면의 ‘기자시선 - 교양필수 영어 이의를 제기합니다!’ , ,연세대 ‘“기금 모으면서 용산 참사 기억 되살리자”’, ‘2010년 연세인의 미션, 다함께 등록금을 얼려라!’, ‘성평등한 농활을 위해 내딛는 첫 걸음’ ‘기숙사 불시점검 사생활침해 vs 화재예방’,‘당신이 소리쳐도 학교는 듣지 않는다’, ‘든든한 재원 조달하는 기부금, 실상은?’ 등 학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비교적 충실히 보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 각 학보의 특징을 살리지 못하고
    기존 언론의 짝퉁역할만을 고수하려는 듯 보임

학보는 각 대학에서 대학 내 이슈들을 알리고, 본교 재학생을 주요 독자층으로 채택하고 있다. 확실한 대상 독자층과 이슈 범위가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보사는 학보 특유의 특징을 살리지 못하고, 조중동과 같은 기존 일간지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희대 학보에서 기획 ‘비움에서 채움으로 변모하는 여가 트렌드’, 학생들이 관심 가질 내용이 전혀 아닌 데다가, 대학 학보로서의 특성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숭실대 학보에서 ‘54년의 자민당 참패와 민주당’, ‘세계 정치 지형의 지각변동’을 통해 기획 심층 조명했으나, 사실상 다른 매체에서도 읽을 수 있는 내용인 점이 아쉽다. 연대 학보에서도 우주 관련 학술섹션을 마련했으나 연세 춘추가 아니라 과학 동아를 보는 것 같다. 서강대의 학보는 이런 경향이 강했는데 ‘자전거로 푸른 세상을 꿈꾸다’라는 기사는 종합 면에 있어야 하는 것이 맞는 의심이 들었다.  다른 면에도 외부소식이 많은데 녹색자전거봉사단이 서강대와 관련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런 내용을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외의 기사에서도 소재나 내용 자체가 학내 언론이 아닌 주요 일간지 부록 같은 느낌을 주었다.

     ▲ 이화여대 신문에 있는 여성면. 여성 이슈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여대라는 특성을 잘 살리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이화여대의 경우, 여성 면을 통해 외부소식을 다루어도 여대라는 특성을 살려
다른 학교 학보에 실릴 수 없는 특색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학술 면을 교내에서 추진되고 있는 MOU 연구 과제를 중심으로 소개 설명함으로써 관심도와 특색을 높였다. 외대의 경우 '
부엉이 통신'이라는 코너를 통해 지구촌 뉴스를 전달하고자 한 점이 외대 특유의 느낌을 살리고 흥미있게 다가왔다. 





3. 권위적인 문체와 시선으로 독자에게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고,
    흥미로운 기사가 부족

경희대 학보의 1면을 보면 ‘영상정보센터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사업에 선정’, ‘교무위원회 산하 4개위언회 구성, 전문성`효율성 증진 기대’와 같이 정작 학생들은 전혀 관심 없는 내용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학보의 전통이 오래된 만큼 어투가 정형화되어 있고 지루한 관점으로 문제를 파악하기도 했다.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고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특히, 신문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제목짓기’능력이 아쉬웠다. 1면임에도 불구하고, ‘공약 이행에 난항 겪는 총학생회’(서강), ‘새싹을 키워 나무로’ 새싹 멘토링 발족‘(외대), ‘봉사바람의 중심, 봉사지원센터 신설’(숭실) 등과 같이 고루한 느낌의 제목들이 줄을 이었다.

                        ▲ 경희대 학보의 1면에 실린 학내 정보 기사. 흥미가 뚝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잡지화된 경향이 강하게 느껴진 외대의 커버스토리 면은 총 8면 중에 한 면을 의미없는 사진으로 나열함으로써 낭비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어서 두 면이 관련된 기획기사들이지만, 기획기사로 3면을 할애하기에는 다른 면의 기사들이 빈약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에 비해 세종대의 기사 중 같은 형식이지만, 현장고발 형태로 사진을 나열하고 각각의 사진에 부연설명을 덧붙혀 참신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잡지화된 경향처럼 느낄 수 있으나, 학보의 의미를 충실히 전달하는 것처럼 보였다.

▲ 기획기사 3면 중 한 면을 커버스토리로 할애한 외대신문과 현장보고 형식으로 할애한 세종대 신문



학보가 없어져야 하는게 아니냐는 문제제기는 학보가 존재하기 위해 개선해나가야 할 점이 많다는 의미이다. 현재 학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자극이 없다는 것이다. 안정된 수입처와 독보적인 시장점유율 (그러나 정독하는 사람은 드물다)을 가지고 있어 계발에의 자극을 받지 못하는 듯 보인다. 게다가 학생이 기자의 역할을 겸하므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약점이다.

반면에 학보의 큰 장점은 역시 교내 소식을 발 빠르게 심층적으로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학내 최신 이슈를 접할 수 있는 정제된 창구로서 역할을 충실히 한다. 인터넷과 대자보 등 여러 경로를 통해 학내 소식을 접할 수 있지만, 정제된 형태로의 정보 전달은 신문이 효율적이다.

학보는 존재해야 한다. 대학도 하나의 사회이며 사회 내 이슈를 정리하고 제안하며, 사회감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이다. 존재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감시와 견제를 위해서는 기관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의 여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다면 학보의 존립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 옛날부터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존립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변명은 집어치우자. 등록금을 만들기 위해 막노동까지 해도 등록금 마련이 어려운 이 시기에 학보사에 들어가는 지원금을 따로 떼 불우한 재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신문사 대신에 학내 감시기관 자체를 만들거나 학생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 줄 또 다른 학생회를 만드는 것, 대학 내 학보 제작비를 모아 서울지역 혹은 강원지역, 경북지역 대학 신문 모임으로 학보사를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학보사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없어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단지, 학보사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생존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학내에서 도태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독자들은 거액의 등록금을 내고 학내 언론의 좋은 기사를 읽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기자들은 좋은 기사를 만들 책임이 있는 것이다.

열혈독자가 부족해 피드백을 받을 수 없는 학보사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꾸준한 계발을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변화된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독자들도 더이상 외면하고 있지만은 아닐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요즘 모 학보사에서는 학보사를 살리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 힘입어 학생들의 참여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구하는 자에게 길은 나타날 것이다. 학보사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해 본다.


<참고 신문>

경희대 ‘대학주보’ 1443호 - 2009년 9월 14일
세종대 ‘세종대학보’ 551호 - 2009년 9월 14일
숭실대 ‘숭대시보’ 1002호 - 2009년 9월 14일
외대 ‘외대학보’ 918호 2009년 9월 14일
연대 ‘연세춘추’ 1621호 2009년 9월 28일
서강대 ‘서강학보’ 555호 2009년 9월 14일
이대 ‘이대학보’ 1361호 2009년 9월 21일 월요일
연대 ‘연세춘추’ 1620호 2009년 9월 21일
덕성여대 ‘덕성여대 신문’ 561호 2009년 9월 14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