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한국외국어대(이하 외대) 서울캠퍼스에서는 외대 재학생 1500명이 모여서 비상학생총회를 열고, 본·분교 통합 절차와 복수전공제도, 과 이름 변경과 같은 학교 측의 행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학생총회에서는 본관점거와 무기한 수업 거부안이 가결되었고, 학생들은 1시간 정도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본관을 점거하고 시위를 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많은 언론에서 외대 학생들의 시위를 보도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외대에서 본관점거 시위가 일어났으며,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간단한 사실 보도를 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다른 어조를 보였다. 제목부터 『"용인캠퍼스와 통합 안돼", 외대학생들 씁쓸한 투쟁』 이어서, 이 글이 외대학생들의 시위에 비판적인 시각에서 써진 글이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한겨레>는 외대 서울 캠퍼스 학생들의 학벌주의를 꼬집고 있다. “용인 캠퍼스 학생들이 나와 같은 졸업장을 받게 되면 내가 손해 보는 것” “용캠 학생들이 학벌세탁을 하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 와 같은 학생들의 말을 인용하여, 서울 캠퍼스 학생들을 이기적인 집단으로 묘사한다. 또한 “일부 서울캠퍼스 학생들의 감정적인 비하 표현과 편협한 우월주의에 용인캠퍼스 학생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용인 캠퍼스 학생회장의 말을 인용하여 서울 캠퍼스 학생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시킨다.

마지막에 이택광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은 한겨레가 이번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학벌사회’라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학생들의 이런 비윤리적인 행태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인용을 통해서 학생들의 시위가 ‘비윤리적인 행태’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한겨레는 서울 학생들의 행태를 비판하는데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외대학생들이 시위에 나선 본질적 이유 중 하나인 ‘독단적인 학교 운영 행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에게 올 9월초 용인캠퍼스와의 통폐합에 대한 시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한다. 또한 학교를 대표하는 과인 '영어통변역학과’의 이름 역시 용인캠퍼스에도 동일한 과 이름이 있다는 이유로 학생들과의 아무런 상의 없이 바뀔 예정에 있었다. 게다가 기존의 복수전공제도 역시 ‘학위장사’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문제가 되는 ‘복수전공제도’은 주 전공을 4년 수학 후 추가로 1년 다른 전공을 수학하면 복수의 학위를 수여하는 제도다. 용인캠퍼스에서 4년을 듣고 서울 캠퍼스에서 1년을 들으면, 졸업장에는 서울캠퍼스에서 1년 동안 들었던 전공이 1전공, 용인캠퍼스에서 4년 동안 들었던 전공이 부전공으로 표시 된다. 이와 같은 복수전공 방식은 논란을 일으키기 충분해 보인다.




비판의 초점은 먼저 문제의 발단을 제공한 학교의 행태에 맞춰졌어야 한다. 서울캠퍼스 학생들이 시위에 나선 것도, 서울캠퍼스와 용인캠퍼스 학생들 간의 갈등이 발생한 것도 결국 학교가 원인을 제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 캠퍼스 학생들은 ‘학력’이라는 이익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며, 이것이 비록 편협한 학벌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누구도 그들을 쉽게 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학교를 다니느냐에 따라 개인의 능력이 평가되고, 훗날 취업에까지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한국에서는 학력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자신이 어렵게 얻은 ‘인서울 4년제’라는 이익을, 누군가는 비교적 손쉽게 얻는 구조라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이것은 자신이 경쟁해야할 취업경쟁자가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불안감마저 가져온다. 서울 캠퍼스 학생들이 편협한 학력 우월주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 역시 학력사회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해석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한겨레가 이들의 시위를, 학자의 인용을 따서 ‘비윤리적’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이 올바른 시선인지 의심스럽다.

대학생들 스스로 학력 사회를 깨부수라고 하기에는 현실은 냉혹하다. 자신의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학벌철폐’를 외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에게 그런 태도를 요구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학교는 학생들의 의견은 전혀 듣지도 않고 마음대로 일을 처리했다. 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겨레>는 외대 서울 캠퍼스 학생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학교의 독단적인 행태를 지적해야 하며,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 그들이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든 ‘학벌 사회’의 문제점을 심도 높게 고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