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다. 정치공학의 모든 것을 보여준 선거였다. 부모 대(代)까지 올라가 벌어졌던 검증전(戰)부터, 유력 대권주자의 ‘수첩’과 ‘편지’까지. 아주머니의 손을 맞잡는 전통적인 선거운동부터, SNS를 활용한 새로운 선거운동까지.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선거였고, 그 바람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도 춤을 췄다. 그리고 어제, 길었던 선거일정이 종료되고, 개표함의 뚜껑이 열렸다.

20대를 잡는 자가 서울을 잡는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여전 <고함20>이 내걸었던 기사 제목이다. 제목 그대로 되었다.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53.4%를 얻어 나경원 후보를 약 7% 차이로 따돌리고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려 69%의 20대가 박원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한다. 선거 결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치다.

출처 : 연합뉴스

<고함20>은 세 번의 칼럼을 통해 서울시장 선거 이야기를 다뤘다. ‘20대를 잡는 자가 서울을 잡는다.’는 제목으로 20대를 위한 정책 개발을 촉구했고, 양자 대결 구도가 확립된 시점에는 ‘20대, 서울시장 선거 대충하면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양 후보의 20대 관련 정책이 미비함을 지적했었다. 지난 26일에는 ‘선거 끝나도, 정치에 관심 놓지 않으실 거죠?’ 기사로, 선거 이후에도 정치가 끝난 것이 아님을 역설했다. 이번 칼럼은 ‘시장선거 그 이후’에 관한 기사다. 한편으론 박원순 서울 시장에게 그가 내건 공약을 상기시키기 위한 기사이기도 하다.

박원순 시장이 내건 20대 관련 공약은 크게 세 갈래다. 첫 번째로 일자리 관련 정책이다. 그는 청년 벤처기업 10000개를 육성하는 한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투자기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번째는 주거 관련 정책이다. ‘희망하우징’ 사업을 통해 2018년까지 약 2만5천개의 방을 추가로 확보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은 등록금 정책이다. 그는 서울시립대에 반값등록금을 추진하고, <서울장학재단> 기금의 수혜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 연합뉴스

후보자 시절 내세웠던 이 구상들이 공약이라면, 시장이 된 후에 그 공약들은 정책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공약들은 20대를 기만하기 위한 허언(虛言)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공약의 정책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도 없다. 박원순 시장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최상이다. 서울시민들은 8/24일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복지 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서울시 의회와, 서울시 구청장들 역시 박원순 시장과 정책적 지향점이 비슷한 민주당 소속이 다수다. 이번 선거에서도 시민들은 박원순 후보의 손을 들어주며,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남은 문제는 박원순 시장 개인의 의지와 능력뿐이라는 이야기다.

표는 무겁다. 선거가 열리기 전까지, 표는 후보의 발밑에서부터 쌓이는 법이다. 발밑에 쌓이는 유권자의 표 높이로 선거의 승패가 갈린다. 그러나 반대로 선거가 끝난 후, 표는 당선인의 어깨에서부터 쌓인다. 발밑에 쌓였던 표가 고스란히 짐이 된다. 그래서 표가 무겁다는 것이다. 시민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만드는 무게감을 느끼고, 그 무게를 공약의 실천으로 승화해내는 것이 정치인의 자질일 것이다. 박원순은 후보 시절 혹독한 검증을 거쳤다. 그러나 그 검증은 병역·학력 등 기본사항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제는 기본사항을 넘어 시장으로서의 자질을 검증받을 차례다. 그 첫 단계는 공약의 이행 여부다.

박원순 시장은 “대학생 여러분들도 반드시 투표에 참여해 서울시의 희망찬 미래를 만드는 일에 함께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대학생들은 그의 말대로,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20대들의 표가 박원순 후보의 발밑에 쌓여 그를 우뚝 서게 했다. 이제 공은 넘어갔다. 20대들의 지지에 박원순 시장이 답할 차례다. 그의 모토인 ‘희망’이 20대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애써주길 바란다. 당선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