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점들이 불을 하나 둘씩 켜기 시작한 이른 저녁 시간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사범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한 예비 선생님이고, 지난 10월 22일 중등임용시험을 쳤다. 우리는 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우선 이 공부를 몇 년 했는지 물어봤다. 손가락으로 꼽으며 그녀가 대답했다.

- 2007, 2008, 2009, 2010, 2011. 5년이네.

- 정말 길다. 그럼 왜 선생님이 되고 싶어?
- 생각해보면 사범대학에 간 건 부모님 영향이 컸지.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학창시절부터 가르쳐주는 걸 좋아해서 적성에 맞고 국어과목도 재밌었어.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교생실습을 가서 정말 행복했어. 다른 친구들은 힘들어하는데 나는 진짜 하나도 안 힘들고 다음 날 애들 만나는 게 기다려지고 그런 거야. 이건 진짜 내 일이다 싶었지.

- 그렇게 진심으로 되고 싶은데 왜 언니를 선생님으로 안 뽑아주는 걸까.
- 처음에는 내가 못해서라고 생각했어. 노력만 하면 될 수 있는데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 그런데 점점 공부할수록 사회구조에 눈이 돌려 지는 거야. 올해도 (경상남도 국어과목 일반부분 기준) 1072명 중에 35명을 뽑거든. 결국 천 명 정도는 떨어지는 거잖아. 작년도 비슷했고.

  다른 지역도 대동소이했다. 국어 과목의 경우, 서울은 총 채용인원이 38명인데 지원자는 1480명, 부산은 12명 정원에 350명이 지원했다. 대다수 지역 경쟁률이 30대 1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른 과목을 합산한 전체 경쟁률도 서울 지역은 24.1 : 1, 경기도는 18.4 : 1, 경상남도는 18.93 : 1, 부산은 18.75 : 1 이었다.

- 그런데 어른들은 너희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 열심만 하면 된다고 하니까. 나도 그런 말에 길들여져서 자랐고. 또 자기계발서를 봐도 개인이 잘하면 된다는 건데, 사실 승자는 지극히 소수잖아. 구조적인 문제를 별로 얘기 안 해준다는 거지.

- (끄덕) 개인의 성공 신화가 많지. 그럼 결국 안 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건데 다들 어디로 가는 거야?
- 대부분 학원. 학원이나 기간제 교사. 그러면서도 임용 때면 시험을 치는 거지. 그리고 사립학교 자리 나면 또 시험을 치러 가고.
- 음. 교원 자격은 있으니까 계속 반복 되는 거네.

  아무래도 오늘 술집을 잘 고른 것 같다. 닭똥집구이는 적당히 달달하고, 적당히 매콤하고, 적당히 쫄깃했다. 우리는 잠시 젓가락질에 집중했다. 잘근잘근 안주를 씹으며 다음 질문을 했다.

- 그럼 왜 사범대생과 졸업생들은 그런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지 않는 걸까. 교과부에 항의하는 등의 여론이나 행동을 별로 보기 힘들잖아.
- 그건 이래. 공립학교 교사는 공무원이거든. 내가 경험해 보니까 교사될 사람들이 보수적으로 되기 쉬운 것 같아. 데모(demo)하고 항의하는 게 자기 이력에 남아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어.

- 그래. 내 주변에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친구들도 벌써 그런 걱정 하더라.
- 응. 친구들 중에서도 우울해서 정신병원에 전문적인 치료를 한번 받아보고 싶어도 그 기록이 남을까봐 걱정부터 하게 되는 거야. 그렇지 않다고는 하는데 사람일이 또 모르는 거니까. 일단 스스로 단속하게 되는 것 같아.

출처 : ytn



- 자기검열을 한다는 거네. 정말 마인드만 보면 바로 채용해줘야 하는데. 그래도 뭔가 씁쓸하다.
- 정원(T.O)도 시험일 한 달 전에 발표 해줬어. 그런데 예체능과목은 1년 동안 공부를 했는데 정원이 아예 없는 황당한 경우도 생기니까 노량진에서 공부하던 사람이 1인 시위를 했어. 서명도 받고. 그래서 그 뒤로는 시험 치기 몇 달 전에 티오가 난다 안 난다는 정도라도 말해주도록 바뀐 거야.

- 정말 조금씩 바뀌는 거네.
- 그리고 그 자체도 엄청난 용기지. 나라면 그렇게 못해.

- 그럼 시험제도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어?
- 확실히 좀 더 많이 뽑는 게 바람이라면 바람이지. 이건 교사를 위해서라기보다 학생에게도 바람직하거든. 학급당 인원이 여전히 서른 명이 넘으니까 담임교사가 살뜰히 돌보기엔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거든. 유럽 복지국가를 보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우린 전혀 안 그렇거든. 그리고 또 하나는 학교에서 기간제나 인턴을 늘리지 말고 정규직을 뽑아야지. 기간제나 인턴은 학교에서 1년 쓰고 돌리니까 불안정한 자리잖아.

- 선생님으로 살고 있는 친구들은 어떻대?
- 애들 말로는 하루가 아니 1년이 너무 빨리 지나간대. 그런데 놀란 건 친구가 몇 달이 지나도록 자기 반 애들 이름을 다 못 외운다는 거야. 그러다 걔가 우연히 노트를 주웠는데 ‘우리 반 담임은 내 이름도 모를걸.’ 이렇게 적혀있었대. 그래서 얘도 그걸 보고 충격받고, 미안해지고. 근데 또 워낙 잡무도 많고 바쁜 현실에 치여서... 아무튼 그런 얘길 들으면 내 친구지만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냐는 생각도 들고,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회의도 드는 거지.

- 응. 그런데 또 이렇게 생각하면 어때? 선생님은 임금이나 정년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다른 직군에 비해 확실히 좋은 면이 있잖아. - 그것도 맞지. 철밥통! 근데 한 아이가 있으면 가정이랑 학교랑 사회, 세 가지가 같이 움직여줘야 되거든. 가정에서 소홀한 아이를 학교에서도 보듬지 못하면 어떡하겠어. 이건 교사 자질 문제라고만 할 수도 없는 거야. 아무래도 교사 한명이 맡는 아이들 수가 많고. 그러면 관계가 깊어지는데도 한계가 있고.

- 음. 그래, 보통 우리가 살면서 가족이나 친구 등 관계 맺고 진심으로 챙기는사람도 솔직히 열 명을 넘기기 힘들잖아. 그런데 더더구나 학생이라 더 섬세한 관심이 필요하고 아무리 선생님들이 의무감으로 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겠다.
- 올해 공부하면서 이건 간절해졌지. 진짜 아이들을 위한 선생님이 되야겠다. 그리고 공부가 징글징글하긴 한데 얼마가 걸리더라도 교단에 서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더 확실해져. 나이나 시간, 결혼 등 다른 요소들을 생각하고 주변 친구들이랑 비교하면 마음이 복잡하긴 한데, 그래도 이 일이 나에겐 계속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는 거야.

- 처음에 물어보려고 했는데 시험 치고 느낌이 어땠어?
- 솔직히 치러 가면 긴장되지.

- 몇 년째가 될수록 더 그렇겠네. 
- 응. 그리고 갈수록 달라지는 게 뭐냐면 시험만 생각해야 되는데, 부모님 얼굴이랑 1년 동안의 세월이랑 다른 친구들 생각 등 잡념이 드는 거야. 안 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시험 전에는 떨쳐버리려고 노력하고 시험 중에는 생각 없이 치게 되는 거지. 그리고 시험 친 뒤에는,

- 후련하다거나?
- 후련하지가 못해. 후회가 남지. 그리고 임용시험이라는 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문제를 몰라서 못 치는 게 아니고 아리송한 부분이 있어. 아! 그리고 또 교육청에 바라는 건 시험을 보고 나면 출처나 출제자 의도를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야. 몇 년 전에는 자료를 줬는데 시비가 많이 일어나니까 이제 아예 안 나오는 건 불편한 건 안 겪겠다는 심사지.

- 그렇겠네. 그럼 합격하면 뭐 하고 싶어?
- 합격하면 진짜... 애들만 위해 살고 싶어. 진짜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고. 

- 그럼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건?
- 가족, 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어. 용돈도 드리고 여행도 같이 가고. 그동안 못했던 것들 전부 다.

▲ tvN 드라마 '꽃미남 라면가게'에 배우 이청아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25살 대학생 양은비로 나온다. 양은비는 노량진 학원에서 청춘을 보내고 있다. (사진출처 : 스포츠경향)

  그녀는 어느새 목이 잠기고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그녀를 울린 게 질문인지, 청하인지, 땡초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수능시험을 치고 사범대학교에 합격했고,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사범대학교와 교육대학교는 경쟁률이 세다. 선생님이라는 직업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외환위기와 IMF,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공무원이 꿈의 직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립학교 교사는 공무원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대입이라는 관문을 힘겹게 통과한 그들 앞에 임용고시라는 더 큰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과 친구들이 스펙을 키울 때도 그들은 임용시험에 전념하기 위해 4학년 전에 미리 계절 학기를 꽉 채워서 듣는 등 선생님이 될 준비만 열심히 해왔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워도 여러 해 반복해서 이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결국 수험생 수는 매년 누적되고, 졸업 후 교육대학원을 가는 인원까지 포함해 선생님이 되는 길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시험에 낙방하는 것은 정말 개인의 문제일까. 점점 더 스스로를 단속하게 되어 공론장에 쉽사리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이들. 이들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다른 대학생들보다 덜 괴롭다는 이유로 기성언론들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올해 중등임용고사의 1차 합격자 발표는 11월 18일에 난다. 1차, 2차, 3차 시험을 치르는 동안 수험생들의 한숨소리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최종 합격의 감격을 누리는 건 아주 소수의 인원이고, 낙방한 대다수의 수험생들은 다시 1년을 기다리며 사립학교나 기간제, 인턴 교사 혹은 학원가를 떠돌아야 한다.  올해로 다섯 번째 시험을 친 그녀는 “겨울이 행복했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불합격’이라는 깜깜한 현실과 마주했던 그녀가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겨울은 언제 올까. 그녀에게 따뜻한 겨울을 선물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