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바랜 부모님의 연애시절 사진을 보고 가슴이 설레고, 헌 책방의 쾨쾨한 냄새를 좋아하며, 유행하는 일레트로닉 음악보다는 통기타에서 울리는 소소한 음악에 더 끌리는 당신. 그대에게 닥 맞는 ‘아주 오래된 낭만’을 선물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등교시간을 30분 넘게 남긴 초등학교 교실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는 집의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아직 담임선생님도 도착하지 않은 그 곳에서 그들은 슬쩍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즐겼다.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싸우지 않고 자리를 잘 바꿔 가면서, 최고 기록을 경신할 때마다 터져 나오던 함성이란! 열광의 30분이 지나면 서서히 다른 아이들이 속속 교실을 채웠고, 담임선생님이 오기 직전에야 컴퓨터는 아무 일 없었던 척하며 검정색 암흑으로 돌아갔다.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게임 실력이 훌륭하지 않아서 다들 한다는 ‘스타’나 ‘와우’는 안 하지만, 가끔 죽도록 심심할 때면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열광하던 그 게임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윈도우’보다는 ‘DOS'가 오히려 익숙하게 느껴지고, 교실에 막 보급되기 시작한 컴퓨터들이 마냥 신기했던 때다. 그 때 게임들은 요새 PC방을 장악한 그것들에 비하면 조악함이 하늘을 찌르지만, 그렇게 단순한 속에서만 나올 수 있는 통쾌한 재미는 지금의 어떤 게임과 견주어도 무리가 없다.



뿅뿅뿅 - 비행기 슈팅 게임, 1942

도스에서 구동되었던 비행기 슈팅 게임 ‘1942’는 컴퓨터 게임의 고전 중의 고전이다. 1985년 발매된 게임이니 그 네 자리 숫자 자체에서 위엄이 묻어 나온다. 맞은편에서 플레이어를 위협해오는 비행 물체들을 ‘무조건’ 격추시키기만 하면 되니 참 쉬운 게임. 게임을 하는 동안 절대로 미사일 발사 버튼에서 손을 떼지 말아야 하는 게 팁이라면 팁이다. 게임을 열심히 하다 보면 미사일이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데 중간에 ‘목숨(Life)’을 한 번 잃으면 미사일의 처음의 비루한 상태로 돌아가는 아픔을 맛볼 수 있다. 

단순함이 매력인 게임이지만 긴 플레이 시간에도 불구하고 잘 질리지는 않는다. 긴 플레이 시간이 단점이 되는 순간이 있기는 있다. 바로 한참 잘 나가고 있는데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올 때다.



난 소닉, 넌 테일즈 - 질주하라, 소닉

달리고 구르고 날아다니며 잽싸게 ‘링’을 모으는 소닉은 초등학교 교실 최고 인기게임이었다. 1991년 출시된 이후로 아직까지도 플레이스테이션용이나 스마트 기기용으로 변형 출시되며 인기를 누르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소닉의 가장 큰 매력은 아무래도 그 적절한 ‘효과음’에 있지 않을까 싶다. ‘링’을 하나씩 먹을 때마다 나는 경쾌한 소리, 그리고 소닉이 기술을 사용하여 굴러서 ‘씽~’하고 말도 안 되는 절벽을 올라갈 때 나는 짜릿한 소리는 게임의 재미를 배가했다.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 경쟁(Time Trial)’ 모드도 있었다. 게임에 등장하는 4가지 캐릭터를 선택하는 재미도 함께 누릴 수 있었던 모드, 보통은 소닉과 테일즈가 가장 인기 있었지만 벌써 취향이 남달랐던 친구들은 너클즈나 셰도우를 고르기도 했다. 40초의 벽이 깨지면 누군가가 35초를 향해, 또 누군가가 30초를 향해 달려갔던 교실에는 한 달 사이에 세계 신기록이 몇 번이나 깨졌었는지!



내가 먼저 가리라 15점 - 피카츄 배구

‘초딩’이라는 말로 처음 불렸던 세기말의 초등학생들, 그리고 그들에게 불었던 포켓몬스터 열풍! 포켓몬 빵을 사먹고, 포켓몬 따조를 모으며, 매일 저녁 포켓몬스터 만화를 기다렸던 그들은 게임도 포켓몬으로 대동단결(!) 했었다. 포켓몬스터 만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재현했던 롤플레잉 게임도 인기였지만, 아무래도 포켓몬 게임의 갑은 ‘피카츄 배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1997년 출시된 피카츄 배구는 ‘2인용’이라는 장점 덕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점심시간이면 반 아이들끼리 TV와 컴퓨터를 연결해 놓고 모두가 ‘피카츄 배구 중계방송’에 열광하기도. 간단한 조작법, 그리고 귀여운 캐릭터와 ‘몬스터볼’이 배구공이라는 유치하지만 흥미로운 설정까지. 15점에 먼저 이르기 위한 치열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리고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담은 게임이었다.



보너스 구슬을 모아라 - 3D 핀볼

다른 게임들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면, ‘3D 핀볼’은 정상을 향한 외롭고 고독한 싸움이었다. 3D 핀볼은 ‘윈도우95’ 시절부터 윈도우에 내장된, 인기와 명성이 높은 게임이다. 주어진 임무를 하나씩 수행해 가면서, 계급을 높이고 점수를 쌓는 방식. 볼이 바닥으로 떨어져버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 좌우의 끝으로 난 함정에 빠져버렸을 때의 허탈함, 보너스 구슬을 얻어 목숨이 하나 늘었을 때의 통쾌함, 1위 점수 갱신을 목전에 두고 게임이 끝나버렸을 때의 아쉬움까지. 그 어린 나이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모두 느끼게 한 엄청난 게임이다.

교실의 컴퓨터는 단 한 대. 그리고 ‘3D 핀볼’의 상위 랭킹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단 5명. 어느 날 오랜만에 순위를 확인해 보았을 때 다른 친구들에 밀려 이름이 사라진 것을 목격했을 때, 그 때부터 다시 몇 백만 점을 쌓기 위해 정진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다하다 안 되면, 몰래 점수를 다 삭제해버리는 꼼수도 있다.



추억의 아주 오래된 게임이지만, 지금도 검색창에 게임 이름만 입력하면 다시 그 게임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주르륵 검색된다. 어린 시절 추억의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조금 눈이 덜 피로한 게임을 찾는다면, 뭐 아니면 ‘그냥’이라도. 꽤 괜찮은 추억여행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