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이 났다. 영화가 끝나고 실내등이 들어오는 순간, 소란스럽고 부산한 여느 영화관의 분위기와 달리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기만 하다. 그러다 조금씩 여기저기서 한숨과 탄식이 들려온다. ‘그려.. 돈 많은게 장땡이지, 돈 없는게 죄지..’, ‘저 어린 것들 불쌍해서 어떡해.’ 와 같은 얘기들이 적막을 깨웠다. 이들은 어떤 영화를 본 것일까? 다들 짐작했겠지만 이들이 본 영화는 지난 두 달 장애인 인권 침해와 성폭력 문제에 대한 미흡한 처벌 등의 내용으로 온 나라를 영화 제목처럼 들끓게 했던 영화 <도가니>이다. 누적관객 500만 명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 속 불편한 진실이 전 국민을 공분하게 만들었다.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도가니, 충격 실화가 알려지다.

영화 <도가니>는 광주 지역 한 장애학교의 실화를 바탕으로 출간된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 <도가니>를 본 영화배우 공유의 제안을 시작으로 만들어졌다. 5년 전 관련 사건이 공영방송을 통해 보도된 바가 있었음에도 지금과 같은 뜨거운 관심이 없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영화와 소설 등 문화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놀라게 된다. 소설 <도가니>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광주 인화학교에서 5년간 벌어진 장애 아동에 대한 성추행 및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2009년에 세상에 나왔다. 2005년 인화학교 학부모회장의 자녀가 친구들로부터 들은 성폭력 관련 이야기를 엄마에게 전했고, 학부모회장이 성폭력 상담소에 해당 아이들을 데리고 감으로써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2005년, 국가 인권위의 조사 결과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동안 학교장과 행정실장 및 생활재활교사가 7세~20세의 청각 장애인 학생 6명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했음이 밝혀졌다. 또 MBC PD수첩 “은폐된 진실, 특수학교 성폭력학교 고발”에서 보도 되었고, 행정실장과 생활재활교사 2명은 구속되었다. 2006년에 인권위의 조사 결과 가해자 6명이 추가로 발견되었고, 2007년 말 교장은 징역 5년을 구형받게 된다. 하지만 교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으로 실제 징역기간이 없었고, 행정실장 역시 항소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1년으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저 평교사 한 명만이 징역 10개월로 죗값을 치렀다. 이는 그들이 지은 죄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솜방망이 처벌이었고 사람들은 이에 분노했다.

제 2의 도가니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광주 인화학교 도가니 사건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생각나게 만든다.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은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힘없는 약자라는 이유로 잘못된 결과에도 제대로 대항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인 가해자들이 한두 번도 아니고 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하고도, 그들이 가진 부와 권력으로 그들이 받아야 할 형을 무마시켰고 학교에서의 퇴진만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인가? 법치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왜? 사람에 따라 법이 달리 적용되는 지 한 번쯤 생각해보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다. 또 힘이 없다는 이유로 억울함을 세상에 호소할 수 없는 약자들을 내 일이 아니라고 그냥 방치해 두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


사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영화를 본 직후와는 달리, 현재 시들해졌다. 영화의 여운이 사라질 만큼의 시간이 지났고, 서울시장 보선과 한미FTA 등 우리가 새로이 관심을 가질 굵직굵직한 현안도 생겨났다. 또, 여전히 200개가 넘는 영화관에서 도가니가 상영 중이라고는 하지만 프라임 시간대에서 제외된 덕에 영화를 찾는 사람도 많이 준 것 등이 그 이유일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를 분노케 했던 가해자들 중 일부는 죽어 죗값을 치를 수 없어졌고, 일부는 버젓이 학교에 복직하여 아무 일도 없었단 듯 살고 있다. 관심을 갖자, 일이 해결될 때까지 지켜보자던 주장은 한낱 치기에 불과했던 것인가. “우리가 싸우는건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에요.”라고 영화 속 서간사의 말을 기억하자.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영화 <도가니>와 도가니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에 힘입어 지난 달 28일 ‘도가니법’이라 불리는 장애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또 관련법 개정을 포함한 종합 대책을 마련토록 특위 구성 역시 의결 되었다. 이와 같은 날에 한나라당 인권위는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에 문제가 있다며 공지영 작가를 경찰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나라당 김연호 의원은 '도가니'의 내용이 과도하게 표현되어 국민감정이 격앙되었다고 발언했다. 과연 이들이 소설 <도가니>와 영화 <도가니>가 논픽션임을 몰라서 한 말일까? 우리의 뜨거운 관심과 도가니법 그리고 우리의 식어가는 관심과 가재는 게 편임을 보여주는 그들의 발언,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이 사건 해결에 꼭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