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ny, yesterday my life was filled with rain 써니, 지난날 내 삶은 비로 젖어 있었어요
Sunny, you smiled at me 써니, 당신이 내게 미소를 지었고
and really eased the pain 나의 고통을 정말로 덜어주었지요
The dark days are gone 이제 어두운 나날은 가버리고
and the bright days are here 밝은 날이 여기 왔어요
My Sunny one shines so sincere 나의 태양과 같은 당신은 너무나 순수하게 빛나고
Sunny one so true, I love you 너무나 진실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영화 <써니>의 OST인 Boney M의 'sunny'의 가사 일부다. 이 곡은 나미의 <빙글빙글>과 함께 영화 속 소녀들이 춤출 때마다 등장하며 영화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한다. 또 곡의 제목인 ‘써니’는 영화 속 주인공이 여고시절 속해 있던 그룹의 이름이기도 하다.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영화 내용과도 매우 잘 맞아 떨어진다.

여고시절, 주인공을 포함한 일곱명의 소녀는 ‘써니’라는 그룹을 만든다. 그룹의 멤버들은 다양하다. 누가 봐도 모범생인 학생부터, ‘껌 좀 씹는다’는 아이까지. 때문에 그들이 모인 ‘써니’는 한편으론 불량 써클이고 다른 한편으론 평범한 또래 모임이다. 담배 정도는 피우되, 본드와 같은 심한 비행을 저지르지는 않고, 머리 끄댕이를 잡고 싸우긴 하되, 집단 폭행은 하지 않는 그룹. 멤버의 구성이 다양하니 공감의 폭도 넓어진다. ‘왕년에 좀 노셨다’는 어머님부터, ‘난 공부만 했어 얘’라는 어머님까지, 써니가 광범위한 지지를 얻으며 흥행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대개의 고교 친구들이 그렇듯, ‘써니’의 이름으로 하나였던 그들 역시 각자의 삶을 살게 된다. 중년이 된 주인공이 우연히 과거 써니의 리더였던 춘화(강소라 분)를 만나기 전까지는.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던 춘화는 마지막으로 과거 친구들을 만나기를 소망하고, 그 소망에 따라 나미는 써니 멤버들을 하나씩 다시 찾는다. 그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드라마와 유머가 이 영화를 지탱하는 양대 축이다.



영화는 내내 밝다. 불치병 환자가 등장하는데도, 미스코리아를 꿈꾸던 친구가 술집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보험 영업 실적이 좋지 않아 해고당할 위기에 놓였는데도, 밝다. Boney M의 노래 가사에서처럼, 그 밝음은 ‘써니’ 때문이다. 삶이 비로 찌들어 있던 일곱 주부(혹은 미망인)들은, 주인공과 함께 다른 멤버들을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차츰 변한다. 그야말로 써니가 그들에게 미소를 주고, 고통을 덜어준 셈이다.

주인공 나미는 이렇게 말한다. “나 꽤 오랫동안 엄마, 집사람으로만 살았거든. 인간 임나미, 아득한 기억 저편이었는데, 나도 역사가 있는, 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더라구.”라고. ‘써니’ 멤버들을 찾으며 자신 삶의 주인공까지 찾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친구들도 그녀와 다르지 않다.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 그들은 나미의 딸을 괴롭히던 학생들을 응징(?)한다. 또 시어머니 앞에서 당당히 밥상을 엎는다. 그렇게 그녀들 역시 써니를 다시 만나며 인생의 주인공으로 올라선다.

그런데 순간 의문이 들었다. 나미와 그녀의 친구들이 인생의 주인공으로 올라서는 과정이, 과연 ‘써니’ 때문일까? 정말 써니가 그들에게 미소를 주고 고통을 덜어준 것일까.

앞에서 이 영화를 지탱하는 양대 축이 ‘써니’를 다시 찾으며 벌어지는 드라마와 유머라고 썼다. 그러나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제 3의 축이 있다. 바로 ‘머니’다. 영화는 꾸준히 돈을 비춘다. 출장을 가며 봉투를 건네는 나미의 남편, 평소 말이 없다가도 돈 앞에서 “아빠 사랑해요.”를 내뱉는 딸, 한 친구가 미안하다며 건넨 꼬깃꼬깃 접은 10만원. 그리고 그 10만원과 대비되는 나미의 빳빳한 수표…….

상상해 보라. 나미가 술집에서 일하는 친구 복희(김보미 분)를 만날 때의 장면을. 이 장면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통쾌한 장면 중 하나이다. 돈은 못 벌면서 친구를 만난다고 눈치를 주는 사장에게, “아줌마, 술 줘요. 여기서 제일 비싼 걸로. 바가지 팍팍 씌워서 달라고. 안주도 비싼 걸로 주고. 여기 이 아가씨 접대비까지 낼 게 아줌마가 써빙해요. 백만원이면 되요? 모자라면 더 주고.” 라며 쏘아 붙이고, 친구 복희는 그런 나미에게 “임나미 너 완전 멋있다.”라며 칭찬을 한다. 과연 이 장면에서 주인공 나미가 돈이 없었다 하더라도, 나미와 복희가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을까, 아니 복희를 죽어가는 춘화 앞으로 데려갈 수나 있었을까.

또 영화는 춘화의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난 중년의 ‘써니’들이 Boney M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으로 훈훈히 끝난다. 나미가 어릴 적 했던 말인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죽을진 모르겠는데, 죽는 그 날까지, 아니 죽어도 우리 써니 해체 안 한다”가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 훈훈한 마지막 장면 앞엔 무엇이 있는가, 결국 돈이 있다.

춘화의 장례식에 나타난 변호사는 그녀의 유언으로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나누어준다. 보험 영업 직원인 친구에게는 보험을, 주부인 친구에게는 차후 사장 약속을, 술집에서 일하는 친구는 딸의 교육금과 집. 그리고 창업비를…그런 식이다. 그녀의 배려에 친구들은 모두 울음을 터뜨리고 장례식장에서 춤을 춘다. 과연 춘화의 유언이 없었다면 그녀들은 소싯적 추던 춤을 추며 우정을 재확인할 수 있었을까. 결국 그녀들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유 역시, ‘써니’가 아닌 ‘머니’가 아닌가.

물론 이 영화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영화 <써니>는 누구에게나 있었을 학창 시절의 추억과 꿈, 그리고 현실과의 타협, 친구들과의 우정을 잘 버무린 영화다. 다소 쓰게 느껴질 수도 있는 주제를 달콤하게 엮어, 울었다 웃었다 하며 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돈’이 없었어도 그 달콤함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씁쓸함이 남는다. 돈을 초월한 우정을 보여주긴 했지만, 돈이 없었으면 부활할 수 없는 우정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고 보면 Boney M의 노래 가사 중 한 단어만 바꾸면 이 영화를 더 잘 설명해줄 수 있겠다. Sunny를 Money로 바꿔보는 것이다. 씁쓸하지만 이것이 현실이 아니겠는가.

Boney + M = Money

Money, yesterday my life was filled with rain 머니, 지난날 내 삶은 비로 젖어 있었어요
Money, you smiled at me 머니, 당신은 내게 미소를 지었고
and really eased the pain 나의 고통을 정말로 덜어주었지요
The dark days are gone 이제 어두운 나날은 가버리고
and the bright days are here 밝은 새날이 왔어요.
My Money one shines so sincere 나의 돈과 같은 당신은 너무나 순수하게 빛나고
Money one so true, I love you 너무나 진실해요, 머니, 당신을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