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선본도 처음에는 반값등록금 공약에 시큰둥, 박원순 시장 직접 가서 설득
“황승원 학우 사건을 통해 등록금 문제에 대한 절실함을 느껴”
“졸준위 문제가 가장 힘들어… 시작할 때 내세운 공약들은 대체적으로 잘 지킨것 같다.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을 시행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정치인이 공약을 지킨다는 것이 보기 드문 일이었을 뿐더러, 뉴스에서만 또는 구호로만 들었던 반값등록금이 실제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시립대의 반값 등록금이 온전히 박원순 시장의 공은 아니었다. 6월에 거리에 나온 학생들의 ‘반값등록금’ 구호가 없었다면 애초에 반값등록금이 결코 사회적 의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박원순 시장과 정책 협약식 까지 하면서 반값등록금 실행을 압박한 서울시립대 47대 총학생회 '동고동락' (이하 시립대 총학)의 공이 컸다. 시립대 총학은 박원순 시장이 시장 출마 선언을 한 후부터, ‘시립대 반값등록금’ 공약을 채택하도록 꾸준히 대화를 나눴고, 결국 박원순 선본은 ‘시립대 반값등록금’을 선거 공약으로 결정하게 된다. 시립대 총학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박원순 선본을 압박해서 기존의 공약인 ‘2013년 반값등록금 시행’을, 내년에 당장 시행할 수 있도록 설득해서 ‘2012년부터 반값등록금 시행’으로 공약을 수정시켰다. 만약 시립대 총학의 압박이 없었다면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이 2013년이 아니라, 더욱 뒤로 미뤄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립대 반값 등록금의 숨겨진 주역, ‘시립대 총학’을 이끈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 김종민씨를 만나봤다. 그는 박원순 시장이 약속을 지켰고, 차기 총학생회 선거까지 마쳤기에 “엄청난 압박속에서 살다가 이제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고 털어놓았다.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이 눈앞에


-시의회에서 예산안만 통과되면 이제 시립대가 반값등록금이 됩니다. 박원순 시장과 어떻게 접촉하게 된 건가요?

“반값등록금 시위와 황승원 학우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면서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는 좀 절박함이 있었어요. 마침 서울시장 선거가 다시 하면서, 이 과정에서 등록금 문제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다행히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처음 ‘시립대 반값등록금’ 공약을 내세웠고, 박원순 후보가 야권통합후보가 되면서 그 공약을 받아들이게 돼요. 물론 이 과정에서 저희가 박원순 후보를 초청해서 등록금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공약만 나왔다고 해서 저희가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아요. 이 공약을 보다 확실히 이행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책질의서도 보내고, 2013년이 아닌 2012년 시행으로 박원순 시장에게 약속을 받아낸거죠.”

 

-박원순 선본에서도 처음에는 ‘반값등록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는데?

“선본 정책팀이 ‘필요하긴 하지만 시립대가 먼저 반값등록금을 시행하면 다른 대학교 학생들이 안 좋아한다.’ 며 내년은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박원순 선본이 초기에는 특별하게 외부의 요구를 듣지 않아도 자력으로 당선될 것이라는 생각이 많았나 봐요.”

-나경원 선본과도 접촉을 해봤나요?

“박원순 선본과 동일한 방식으로 정책질의서를 보내도 전혀 반응도 없었어요. 전화로 7번이나 연락했는데도 답변을 그냥 피해버리던데요.”

-그래서 직접 박원순 시장을 만나 설득을 하셨다면서요.

“10월 17일에 고대에서 있던 대학회장 모임에서 ‘사람들이 박원순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60% 지지율을 줬다. 그런데 지지율을 다 까먹는 이유는 사람들의 요구를 못 들어주고 있는거 아니냐.’ 이렇게 서두를 트면서 20대의 요구인 반값등록금에 대해서 이야기 했어요. 내년에 시립대가 반값이 되어야지, 내년 총선 대선도 있는 상태에서 사립대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박원순 후보가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약속을 했죠.”

-그 곳에서 구두로 약속받은 후 정책 협약식을 한 건가요?

“저는 운이 좋게 두가지 라인이 있었어요. 한대련을 통해서 반값등록금에 대한 의지를 표현할수 있었고, 한 쪽은 교육시민단체였어요. 전교조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시민 단체에 제가 연줄이 닿아서 회의에도 참석하게 됐는데, 그 쪽에서도 시립대 반값등록금을 이야기가 나왔어요. 교육단체에 있던 분들이 추진을 해서 정책 협약식 까지 맺을 수 있었어요.”

-박원순 시장이 당선됐지만 반값등록금이 될지, 안될지 반신반의하지 않았나요?

사실 된다는 생각은 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어요. 정치인들이 이제까지 워낙 약속을 안지켜왔잖아요. 만약에 반값등록금 공약을 안 지키면, 어떤 방식을 취하든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다행히 잘됐네요.

그는 시립대 반값등록금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3가지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한대련을 중심으로 한 반값등록금 촛불시위가 있었고, 두 번째로는 시립대 총학이 반값등록금 문제에 관해 열심히 일했고,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좋은 시장이 뽑혔기 때문이라며 자신에게 반값등록금의 공을 돌리는 것을 거부했다.




등록금 벌다가 냉동 창고에서 질식사… 황승원 학우의 안타까운 죽음


-아까 황승원 학우의 죽음을 언급하셨는데, 그 때도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농활에서 막 돌아오던 때였는데, 아는 기자님이 전화가 와서 냉동 창고에서 죽은 학생이 있는데, 우리 학교 같다고 이야기를 해줘서 그때 처음 알게 됐어요.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고, 뭐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했어요. 먼저 학교에 분향소를 차리고, 황승원 학우에 대한 모금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황승원 학우) 어머니가 워낙 마음 아파하시니까 장례식장이 있느 동국대 병원에 자주 찾아가서 위로도 해드렸고요.

-시립대 학우들이 충격을 많이 받았죠. 황승원 학우의 죽음을 겪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처음에는 반값등록금 문제에 대해서 조금 소홀하게 생각했던 점, 우리랑은 조금 떨어진 문제다라고 생각했던 것을 많이 자책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머니의 안타까운 모습을 계속 지켜보다보니 ,이 일에 더욱 감정적으로 몰입을 한 것 같아요. 협상을 하고 장례를 치룰 때까지 저는 쉴 수가 없었어요.




-그 당시 기자회견도 주도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마트와 트레인코리아의 태도가 너무 불성실하고 협상에 나올 생각이 없어보였어요. 유족들에게 기자회견을 하자고 해서 같이 기자회견을 했어요. 힘들었던 부분은 방학이여서 학생들이 참가하기 어려웠어요. 저희 총학도 이제 농활까지만 하고 쉬자고 하던 차였는데… 어쩔 수 없이 저랑 부총학생회장이 일을 도맡아했어요. 2주일정도 지나고 협상을 시작은 했는데 엄청 지지부진 한 거예요. 그래서 49제를 집회형태로 해서 여론을 모으겠다고 마음 머고 있었는데 다행히 49제가 있기 전에 합의가 됐죠.

-모금이 학자금 대출 빚을 갚는 차원에서 진행됐죠?

“황승원 학우가 우리 학교 다니기 전에 세종대에 다니면서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데 그것이 1000만원이었어요. 그런데 상속포기를 하면 보상금을 못 받게 돼요. 그래서 총학에서 그 천만원을 갚아주기로 결정을 했는데, 다행히 학우들이 800만원을 모아주셨어요. 그리고 버튼판매를 한 돈과 시민들의 성금 140만원과 저희 총학 집행부 장학금 60만원을 더 해서 1000만원을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안 받으시려고 했는데 저희가 설득을 잘 해서 결국 어머니께 잘 드렸어요.”

대화를 나누고 있던 총학생회실의 분위기가 잠시 숙연해졌다. 황승원 학우가 “살아서 반값등록금 소식을 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기존 학교에 비해 싸 보이는 시립대 등록금도 누군가에게는 큰 부담이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 총학생회는 무슨일을 해왔나


시립대 총학은 굵직한 사건 두 가지를 더 겪게 된다. 하나는 2월에 있었던 후문 민들레 식당 집단 식중독 사건이고, 또 하나는 3월에 문제가 제기돼서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는 2010년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의 비리다.


-민들레 식당 사건에서 총학의 대처가 돋보였는데요.

“커뮤니티 ‘시립대 광장’에 2월 20일 일요일에 밥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는 사람들의 제보가 많이 올라왔어요. 피해자들을 모았는데 40명 정도 됐어요. 피해자들과 함께 보상 대책을 세우고 난 다음 바로 음식점으로 부터 보상을 받아냈죠. 7월에는 주변 식당 위생에 관한 서약을 받기도 했어요.”

-보상금액은 얼마정도였나요?

“1400만원이었어요. 1000만원은 치료비 400만원은 위자료로 받았어요.”

-그것보다 사실 골치 아팠던 건 졸준위 문제였잖아요.

“3월달이 됐는데도 졸업앨범을 못 받은 사람도 많았고, 받은 사람들은 졸업앨범이 너무나 엉망이라고 하는 거예요. 겉표지부터가 싸구려 재질로 만들어져있었어요. 알고 보니 작년 졸준위가 크림스튜디오(졸업앨범 제작한 곳) 에서 260만원 리베이트를 받았더라고요. 학우들이 총학은 뭐하고 있냐고 몰아세우기도 했고 졸준위 문제가 자체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저희가 직접 나서기로 했어요.

-졸준위와 크림 스튜디오 둘 다 고발한건가요?

“네. 고발을 했는데 불기소가 됐어요. 경찰에서 리베이트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건데 허탈했어요. 제가 직접 조서도 다 꾸미고, 조사도 받고 이런 것이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간단 한 것도 처리 못하냐’ ‘고발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 이러는데 막상 당사자가 되어보니 조서를 받고 대질심문 하는 거에 대한 압박감이 만만치 않았어요.”

-작년 졸업앨범은 다시 만드는 건가요?

“네. 그건 작년 졸준위가 사비로 다른 사진관에서 만드는 것으로 정했어요. 그 부분은 확실히 해두었습니다.”

-동고동락 총학생회를 시작할 때 내세운 공약은 많이 지키신 것 같은지 궁금한데요.

“등록금 동결은 반값등록금이 될 것이니 자연스레 지켜진 것 같아요. 교육재정을 확충하고 학교인지도를 올리겠다는 약속도 했는데, 그 부분도 반값등록금이 이뤄지면서 공약을 지킨셈이 된 것 같아요. 또 도서관 백색소음기를 설치한다고 말했는데, 그건 뒤늦게 이번에 예산을 받아서 올 겨울에 설치할 계획이에요. 법인화 반대 문제도 저희의 공약이었는데, 이 부분은 다음총학에서도 지속적으로 지켜나갈 공약이라고 생각해요. 세부적으로 하나씩은 못 챙겼지만 전체적인 방향에서는 공약을 잘 지킨 것 같아요.”




(下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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