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렐라【명사】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다. 그리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다. 알바렐라는 20대가 되어서 ‘자기 자신’을 잃었다. 그리고 세상과 돈에게 구박을 받는다. 신데렐라는 12시가 되면 집에 돌아가야 한다. 알바렐라도 알바 시간이 되면 뛰어가야 한다. 그래도 신데렐라에겐 호박마차가 있었다, 왕자님이 있었다, 유리구두가 있었다. 우리 알바렐라에겐 무엇이 있을까. 우리를 구원할 희망이 있기나 한 것일까.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 알바 수난기 그 마지막 이야기! 새벽 두 시,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불을 켜고 환하게 손님을 맞는 목동의 한 편의점에 들어가 편의점의 새벽 알바렐라를 만나보았다. 소시지 두 개를 계산하며 갑작스럽게 인터뷰 제의를 했는데도 우리의 알바렐라는 흔쾌히 응하는 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가 이렇게 새벽에 들이닥쳐서 놀라지는 않으섰어요?

그런 건 상관 없어요. 편의점이 좁아서 의자가 하나밖에 없네요. 서서 이야기 나누게 돼서 죄송해요.

편의점이 정말 비교적 작고 아늑하네요. 자기소개부터 해주세요.

스무살 배승혁이라고 합니다. 명지대학교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있어요. 이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편의점 알바를 한 지는 세 달 정도 됐어요. 

아, 근처 아파트에 살고 계시다고요? 그러면 아르바이트 하기가 아주 편하시겠어요. 그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된건가요?

네. 10분이면 집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알바 하기가 굉장히 편해요. 처음에 이 알바를 시작한 건 친구가 같이 해보자고 해서였어요. 돈이 급해서는 아니었고요. 원래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쓰곤 했는데, 이 알바를 하면서 이제 용돈을 받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게 됐죠. 

용돈을 받지 않고 이 알바만으로 생활할 수 있다니, 시급이 꽤 많은가봐요.

네. 새벽이 아닐 때는 기본 시급인 4320원인데 저는 새벽에 알바를 하기 때문에 시급 5000원을 받아요. 이 아르바이트만 하는 건 아니고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1층에 전단지를 붙이는 알바를 같이 하고 있어요. 부녀회에서 하는 알반데, 그건 장 당 만원을 받고 있어요. 


위 사진은 실제 알바렐라와는 무관한 사진입니다.

 

잠을 포기하는 보람이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왜 하필 새벽 알바였나요?

이 편의점 사장님께서 애초에 새벽 아르바이트생만 구하셨어요. 친구가 이 알바 자리를 발견했을 땐 둘이서 격일로 나눠서 일해보자고 제안했었죠. 휴학생인 친구는 별 상관이 없었겠지만 저는 밤 11시부터 아침 9시까지 일하다 보니 낮에 생활하는 데 지장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친구는 저를 이어받아 아침 9시까지 일하는 걸로 바꾸게 됐어요. 또 주말만 일하다 보니 그렇게 큰 지장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잠 패턴이 좀 뒤죽박죽이 됐어요. 제가 원래 버스나 지하철에서 잘 조는 편이 아닌데,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더라고요. 수업시간에도 가끔 졸기도 하고요.

사람이 생활하는 데 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알바를 계속 하고 있는 이유가 뭔가요?

제가 이거 하나라도 제대로 못하고 그만둬서 앞으로 뭘 하겠나 싶더라고요. 그렇다고 이 알바가 힘든 것도 아니고 집 바로 앞에 있는 작은 편의점 알바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계속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스무살의 패기가 느껴지네요. 사장님께서 알바생 뽑으실 때 기준이나 조건같은 게 있으셨나요? 사장님은 어떤 분이예요?

당시에 새벽 알바생이 급하게 필요했기 때문에 새벽에 알바할 수 있으면 그냥 뽑으셨던 것 같아요. 친구랑 만나면 사장님 이야기를 가끔 하곤 하는데, 사장님은 정말 너무 좋은 분이세요. 이렇게 좋은 사장님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여자 사장님이신데요. 사장님께서 갖고 계신 가게가 많다 보니 이 편의점에서 따로 이윤을 얻으려는 생각은 별로 없으신 것 같더라고요. 유통업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이 편의점을 운영하시는데, 그래서 그런지 저희가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마음껏 먹으라고 하세요. 알바생들끼리 회식도 하죠. 그래서 저랑 제 친구, 저희 나이또래의 여학생 두 명과 같이 친해지기도 했어요.

시급을 짜게 주는 악덕 점주도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에 비하면 정말 천사 사장님이시네요. 손님들은 어때요? 새벽 편의점 하면 뭔가 훈훈한 손님이 많을 것 같은데요. 특이한 손님이나 단골 손님이 있나요?

네. 오히려 새벽 시간에 단골 손님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손님이 많지는 않은데,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물건을 사가는 손님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매일 같은 시간에 에너지 음료 2개를 사가는 손님이 있어요. 계산할 때마다 뭐하는 분일까 궁금하죠. 또 어떤 할머니는 매일 정확히 새벽 한시 반과 네시에 각각 오셔서 누가바 하나와 담배 한 갑을 사가세요. 그런 분들이 단골손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친구는 외향적인 성격이라 자주 오는 손님에게 말도 걸고 하는데, 저는 부끄러워서 말은 못 걸어봤고 계산만 해드려요.

누가바 하나와 담배 한 갑이라.. 엄청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할머니로군요. 그 외에는 또 어떤 에피소드가 있나요?

손님이 그렇게까지는 많지 않아서 에피소드랄 것까지는 없어요. 담배, 술 사가려는 중고등학생은 새벽에도 있죠. 제가 워낙 내성적이고 생긴 것도 어리고 착하게 생긴 편이잖아요. 그런데 중고등학생들한테는 만만해보이면 안되니까 일단 목소리를 낮게 깔고 "미성년자한테 담배, 술 안팔아요" 해요. 그런데도 뻔뻔하게 구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럴 땐 그냥 아무 말도 안하면 알아서 투덜거리면서 나가더라고요. 



'목소리를 낮게 까는 것'이 포인트로군요! 손님이 많지 않으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겠어요. 주로 뭐해요?

음악을 듣거나, 인터넷을 해요. 평소엔 바빠서 잘 보지 못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곤 하죠.

알바하는 시간이 오히려 본인에게 여가 시간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고 일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또 다른 편의점 알바의 장점이 있나요?

말씀하신대로 새벽 알바라서 그런지 굉장히 편해요. 손님이 없어서 가게를 지키기만 하면 되는 정도고, 새로 들어오는 물건을 정리하는 걸 주로 하죠. 그것도 가게가 비교적 작다 보니까 편하게 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음악도 맘대로 틀 수 있고요. 또 사장님이 바쁘셔서 발주, 그러니까 상품 주문을 알바생들이 직접 하거든요.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어, 이건 어떤 맛일까?'하면서 한번 주문해 먹어보기도 해요. 의외로 편의점 햄버거가 참 맛있더라고요.

상품 주문을 직접 한다고요? 우와! 갑자기 저도 한번 편의점 알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드는걸요. 또 '의외로' 많이 팔린 상품이 있었나요?

꼬꼬면은 워낙 전국적으로 인기상품이었으니까 말할 필요도 없겠죠. 지금 꼬꼬면이 저기 하나 남아있네요. 저렇게 남아있는 걸 본 적이 매우 드물 정도로 꼬꼬면은 잘 팔려요. 의외로 많이 팔린 상품이 있다면.. 츄파춥스요. 츄파춥스를 생각보다 많이 사가세요. 꼬맹이들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여학생들도 많이 사가죠. 커피류도 많이 팔리는데, 파란색 캔 레쓰비가 제일 잘 나가는 커피음료예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실수한 적은 없었나요?

계산이 안 맞은 적은 몇번 있었어요. 저는 5000원 정도 안 맞았었고, 제 친구는 25000원까지도 안 맞은 적이 있어요. 그럴 경우엔 사장님께 보고하고 할 것도 없이 당연히 알바생이 안 맞는 금액만큼 채워넣어야 해요. 5000원은 그렇다 쳐도 25000원은 대체 어쩌다 안맞았는지 모르겠네요. 이 좁은 편의점에서 그만큼 안맞을 수도 없는데 말이예요.

마지막으로, 이 아르바이트를 다른 20대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으세요?

네. 남자들에게만요. 새벽 시간 편의점 알바는 여자들은 못 할 알바인 것 같아요. 저는 경험해본 적이 없는데, 제 친구와 사장님이 새벽에 있을 때 취객 때문에 경찰을 부른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 후로 사장님께서는 새벽에 가게에 나오는 걸 꺼려하시고 저희에게 모든 걸 맡기셨죠. 위험한 것 말고는 새벽 편의점 알바가 편하고, 시급도 좋은 편이고 자기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어서 참 좋은 것 같아요.
 

새벽의 편의점 알바렐라까지 고함20은 총 15명의 알바렐라를 만났다. 전국에서 지금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수많은 알바렐라들에 비하면 고함20이 만난 수는 터무니없이 적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알바렐라들이 가진 공통점은 알바를 위해 뭔가를 포기해야만 했다는 것이었다. 잠을 포기하거나, 손님들로부터 무시 받으면서도 참는다거나, 많지 않은 시급을 받으면서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등 알바렐라들이 포기해야 했던 것들은 다양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알바렐라도 돈을 받고 노동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도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다음에 고함20이 또 한번 알바렐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면, 그들의 푸념보다는 그들이 얼마나 멋지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지 자랑부터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월요일 연재 <나는 알바렐라>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함20은 더 멋진 월요일 연재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