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나라엔 안가냐?”

글을 쓰기 위해 몇 달 만에 다시 찾은 원곡동은 그전과 다를 게 없었다. 여자 혼자인데다가 뉴스에서 보도됐던 사건들 생각에 약간은 긴장을 했지만 한국에서 오래된 다문화 동네이니 다른 지역보다야 지역민들이 잘 어울려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노점이 있는 지하도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오른편으로 다문화특구 마을 사업으로 만들어진 광장이 보였다. “We are the one” 이라는 문구가 돌로 조각되어 세워져 있는 이 다문화 광장에선 매 명절 마다 이주민들을 위한 행사가 열리는데, 그날은 평일이라 주민들이 나와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운동을 하고 있었다. 광장 옆엔 치안요원들이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나도 걸음을 멈추고 광장 한 쪽 화단에 앉았다.

다문화 만남의 광장. 사람들 사이로 'We are the one' 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내 옆으론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남녀가 있었고, 광장 중심에선 여덟 명의 초등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 들 중 한명이 아프리카계 아이었는데, 내가 자리 잡은 지 얼마 안되서 내 옆에 있던 50대 남성이 일행에게 그 아이에 대해 피부색이 특이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얘기를 하고 있던 중에 축구공이 그 남성의 앞으로 굴러 왔고 아프리카계 아이가 공을 주우러 뛰어왔다. 그런데 남성이 공을 잡고 넘겨주지 않은 채 그 아이에게 “이름이 뭐야?”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낯선 아저씨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듯 이름을 말하지 않고 그저 “공 주세요.” 라고 대답했다. 아이가 계속 공을 달라고만 하자 남성은 이름을 말하면 주겠다고 하며 집요하게 이름을 물었다. 옆에 있던 50대 여성을 그를 보며 그저 ‘재밋다’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결국 아이는 제 이름을 낯선 아저씨 앞에서 우물우물 말을 해야 했다. 그러자 남성은 공을 줄 듯 말듯하며 “한국말 잘하네.”, “너 어디서 왔냐?”,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 “네 나라엔 안가냐?” 라는 말을 질문을 계속했고 아이는 당황한 듯 쭈뼛쭈뼛 하다 어렵게 공을 받아 갔다. 나는 그 순간 그 광장안의 국적별로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과 방금 내 옆에서 일어난 상황이 겹치며 광장 입구에 서있던 “We are the one”이라는 문구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다문화특구가 지정 되고 원곡동에선 본격적으로 도시 정비 사업이 또 한 번 시작되었다. 거리가 재정비 되었고 열에 여덟은 외국인이 주인인 상점에 달린 정신없이 다양한 간판은 시에 의해 정리되었다. 복지 측면에선 이주자에게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게 위한 외국인 주민 센터가 생기기도 했다. 광장 역시 '안산 외국인 마을 특구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사진은 광장에서 행사를 하는 모습(왼) 외국인 주민센터(오)


‘너네 나라’라는 구분과 이주인에 대한 두 가지 시선: 이주 노동자 vs 범죄자
‘네 나라엔 안가냐?’라는 질문을 받은 아이의 기분은 어땠을까?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을 봐서 그 아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한국에서 살았을 확률이 높고 한국이 자라면서 많은 추억을 쌓은 ‘고향’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낯선 사람으로 부터 ‘네 나라’라는 말과 ‘돌아가지 않느냐’라는 말은 듣고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나는 섞일 수 없고 배척 되는 사람이 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건 얼마나 상처가 되는 일인가? 소수 외국인 범죄자들을 보고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에게 ‘범죄자’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차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광장에서 안산시가 정비한 도시 사업의 한계를 보았다.
이제 예전처럼 한민족하면서 같은 언어와 피부끼리 모여서 살 순 없다. 북한처럼 굳세게 빗장을 걸고 있지 않는 이상 어차피 이제 섞여 살 수 밖에 없는데, 주변 사람의 인식과 외국인 관련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보고 있노라면 다문화의 순기능 보단 역기능이 드러나는 사회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외국인 마을의 대표적 사례가 될 원곡동의 미래: 피부색과 문화적 배경에 연연하지 않는 조화로운 마을이냐? 한국안의 이국적인 관광지이냐?
안산은 2020도시 계획에서 안산 내 반월공단의 대표 산업들인 제조업, 전기·전자, 기계, 석유·화학 분야를 축소하는 방안을 세웠다. 공해가 발생하는 것을 관리하고 환경평가제를 도입하여 이런 산업들의 유치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 산업들을 축소 한 후 대대적으로 첨단산업분야를 유치하는, 70년대 반월공단 개발 이후로 또다시 산업구조를 재편하려는 시도를 하려하고 있다. 또 바다가 가까운 이점을 활용하여 안산에 ‘해양 레저 관광단지’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안산이 바뀐다면 반월공단으로 출퇴근하는 대다수 원곡동 사람들은 생활터전을 또 다시 옮기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면 원곡동은 다시 어떤 모습으로 바뀔 것인가?

원곡동에 갔다 온지 일주일 정도 흐른 후 상록수역(안산에 위치한 역이다. 상록수역-한대앞역-중앙역-고잔역-공단역-안산역 순)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원곡동 광장에서 봤던 아프리카계 소년을 다시 보았다. 소년은 가방과 축구공을 맨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주변인의 시선은 그 소년을 향해 있었다. 원곡동이, 안산이, 한국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화롭게 사는 마을이 될지, 그저 관광객 유치를 위한 소비 공간이 될지 그것이 문제다.

 
참고자료- 권온, <다문화 공간의 형성과 갈등의 전개 방식>,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2020 안산시 도시 기본 계획>, 안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