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마다 열리는 시위. 궂은 날씨에도 계속되었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가 12월 14일 오늘, 1000번째를 맞는다.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집회'로 매번 갱신되고 있는 수요시위. 이 시위는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 정권이 4번이나 바뀔 수 있는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꿋꿋이 일본 대사관, 그 자리에 있었다.

  할머니들이 수요시위를 통해 요구하는 것은 단 7개이다. <①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②위안부 진상 규명 ③일본 국회의 사죄 ④법적 배상 ⑤역사교과서 기록 ⑥위령탑 및 사료관 건립 ⑦책임자 처벌>이 그것이다. 그 중 경제적 문제에 대한 것은 ④번과 ⑥번 밖에 없다. 나머지는 일본의 진심이 담긴 인정(認定)과 사죄를 요구하는 항목일 뿐이다.

김순덕 할머니 作


 
일본의 앵무새 같은 말

   지난 9월,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제66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여성 지위 향상’이라는 의제를 가지고 토의를 했었다. 한국대표부 관계자는 "위안부 문제가 위안부 여성의 존엄성에 큰 모욕이었음을 인정하고 모든 위안부 여성에 대한 진지한 사죄와 참회를 표시한다"고 말했다. 이에 고다마 가즈오(兒玉和夫) 일본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성 노예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및 이후 양자협정에 의해 법적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그렇다면 일본이 말한 양자협정이란 무엇일까? 이는 1965년 6월 22일 맺어진 한일기본조약을 의미한다. 이 협정을 통해 일본은 한국에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를 10년에 걸쳐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은 이런 지원이 전쟁 전의 역사를 청산하는 배상금의 성격이라고 주장하며 대내적으로는 경제협력의 일환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그 결과 일본은 정식적인 침략에 대한 사과와 배상 없이 청구권 문제를 종결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일본은 이 협정을 근거로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개인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998번째 수요시위 출처 : 연합뉴스

  이러한 일본 정부에 맞서 시민단체들도 활발하게 생겨났다. 대표적인 단체가 ‘한국정신대연구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나눔의 집'이다. 지방에서도 그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민족운동부산본부', '경남 정신대문제대책을 위한 시민연대모임', '대구여성회 정신대문제 대책위원회',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대구경북)', '훈할머니돕기 불교후원회(대구)' 등이 결성되었다.

  여태껏 정부는 외교관계 악화를 우려해 일본에 대한 위안부 문제를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나 지난 8월30일 헌법재판소가 군대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를 둘러싼 분쟁해결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판결이 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탄력을 받아 지난 9월14일 외교통상부에 ‘한·일 청구권 협정대책 전담팀’을 설치하였고 다음날 일본 정부에게 양자협의를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은 앞서 말했던 조약만을 언급하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13일, 일본군 위안부였던 故 김요지 할머니께서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한 채 돌아 가셨다. 이로써 올 한해만 16분의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이제 234명 중 국내 57분, 해외 6분, 총 63분이 살아 계신다. 일본은 그렇게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고 있다. 진정한 인정과 사죄.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돈보다 사죄이다. 그리고 명예 회복이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 없이 그렇게 그녀들이 당했던 진실들이 묻혀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무슨 생각인 것일까? 그녀들의 잃어버린 청춘과 한(恨)에 대해 일본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과거 맺어진 협정을 들먹이며 답을 피하고 있다. 그녀들이 이승을 떠나면 다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녀들이 떠나도 일본이 한 더러운 역사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슬픈 1000번이고 가슴 시린 2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