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수장의 전화 한 통에 도내 전 관서에 비상이 걸렸다. 전화에 잘못 응대한 직원은 징계를 받았고, 그것을 계기로 전 관서의 직원들은 친절교육을 받고 있다. 군대에서의 무용담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소방관과의 통화가 화제다. 발단은 이렇다. 경기도 남양주소방서에서 근무하던 소방관 2명이 인사 조치를 당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전화를 장난전화로 오인해 먼저 끊었다는 죄목이다. 남양주시의 한 노인요양원을 방문했던 김 지사는 환자 이송체계 등을 문의하기 위해 긴급번호인 119를 이용해 소방서에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는 본인이 9차례나 신분을 밝혔음에도 소방관이 장난전화로 판단했다며, “신고전화를 오인하는 이와 같은 사례를 계속 방치한다면 앞으로 시민이 큰 피해를 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에 문책하겠다.”는 입장이다. 상황실 근무자는 모든 신고전화에 대해 장난전화 여부를 임의로 판단할 수 없게 되어있다는 것.

그러나 김 지사의 말에는 어폐가 있다. 우선 김 지사는 사고를 ‘신고’한 것이 아닌, 의료체계를 ‘문의’하기 위해 전화한 것이다. 신고전화가 아니라는 소리다. 게다가 김 지사와 해당 소방관의 통화내용을 들어보면, 소방관이 김 지사의 전화를 함부로 장난전화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김 지사가 9차례에 걸쳐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지만, 전화를 받은 소방관 역시 6차례에 걸쳐 ‘무슨 일로 전화했는지’물었다. ‘신고 접수’라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려 노력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관련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자면, 징계 사유가 될 수는 있다. 소방재난본부의 내규에 따르면 119 상황근무자는 전화가 오면 자신의 신분과 성명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 내규를 적용했을 때 징계를 피할 수 있는 소방관이 얼마나 되겠는가. 실제 서울의 한 현직 소방관은 상황실 전화를 받을 땐 그냥 “119입니다.”라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징계가 규정에 의한 징계라기보다는 ‘감히 도지사가 전화를 했는데도’관등성명을 대지 않은 것에 대한 ‘괘씸죄’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김문수 도지사는 과거 일일 소방관 체험을 하기도 했다.

또, 규정을 적용할 땐 본래 목적을 따져봐야 하는 법이다. 소방재난본부 내규의 궁극적인 목적이 ‘응급 상황 대처’일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 목적을 생각해본다면 이번 징계는 더욱 아이러니하다. 본인의 의문을 해소하고자 ‘긴급전화’를 이용한 도지사와, 그 긴급전화에 대고 용건이 무엇인지를 되물은 소방관, 어느 쪽이 징계를 받아야 하겠는가.

도지사는 암행어사가 아니다. 감사원도 아니다. 119 상황근무자에 대한 민원이 들어와 이를 조사·징계했다면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의 전화에 친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하는 것은 국민의 공분만 살 뿐이다. 벌써 인터넷 상에는 김 지사의 통화 내용을 패러디한 각종 게시물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기 전에 과잉 징계를 인정하고 소방관들에 대한 징계를 철회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