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제갈공명은 명령을 어겨 북벌을 실패로 돌아가게 한 마속을 군율에 의해 사형시킨다. '이릉대전'에서 대부분의 장수들을 잃은 촉에게 '마속'은 얼마 안남은 장수중 하나였으며, 제갈공명이 특별히 아껴 밤마다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병사들과 백성들에게 이 나라의 법이 굳건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속을 벤 것이다. '울면서 마속을 베다.' 라는 의미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자신의 측근이라도 올곧은 정치를 위해서는 희생시켜야 한다는 속뜻을 가진다.

우리나라 두 정당들의 공천 결과를 보면, 읍참마속의 정신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공천검은 원칙과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파를 겨낭할 뿐이다. 박근혜의 공천검은 기존 지역구에서의 힘이 센 이재오 의원을 제외한 '친이계'의원들을 숙청했다. 한명숙의 공천검은 전문적 역량을 가진 구세력을 솎아내고 '친노'라면 무능력함도 부패도 눈감아 주었다. 이번 공천에 힘이 있던 이들은 원칙보다는 '자신의 입지'나 우선으로 두는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공천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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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은 대의민주주의에서, 그리고 정당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란 쥐들이 흰고양이와 검은 고양이중 누가 자신들을 이끄면 좋은지 투표하는 것."이라는 비아냥이 있을 정도로, 국민의 권리란 이미 정당이 뽑아 놓은 두 후보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 뿐이다. 실질적인 '양당'구도인 대한민국에서 두 당 모두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다면 '대의민주주의'는 허울만 좋은 이름이 된다. 잘못된 공천은 국민에게 엄청난 손해인 것이다.

정당입장에서도 '원칙'이 아닌 '사심'에 의한 공천은 엄청난 손해를 가져온다. '공천'은 당의 색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이다. 어떤 사람들을 공천했는가는 그 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직결된다. 가치가 확실히 보이는 공천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국민의 인식을 뛰어넘어 '차별화'된 정당을 만들 수 있다. 사실 '공천'은 정당정치 하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인 것이다. 민주통합당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이 '도로 민주당'의 공천 결과에 실망했다는 사실은 민주당의 지지율 폭락으로 증명된다.

과연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통합 진보당의 공천 책임자들은 이 당연한 상식을 모르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정치인'은 '정당'의 이익이나 유권자의 요구보다도 자신의 입지와 이득을 고려 한 '정치공학적'결정을 내리게 된다. '은평 을' 재보선에서 '이계안'이라는 좋은 카드가 아닌 '장상'이라는 카드를 썼던 정세균 대표의 선례를 생각해보자. 서울 시장 선거에서 '이계안'이 아닌 '한명숙'을 밀었던 정세균 대표는, 이계안이 이재오를 꺾을 경우 서울 시장 공천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재오를 은평에서 이긴 후보라면 '오세훈'도 이길 수 있었겠다는 논리다. 결국 정세균 대표에게 '이계안'의원은 이겨도 져도 도움이 되지 않는 카드였다. 결국 (이계안보다 훨씬 지지도가 떨어지는) '장상'은 크게 패배했고 정세균의 입지 역시 크게 줄었다. 당에게도 손해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이들이 개인의 입지를 생각지 않고 당과 민의를 위해 희생해 주길 바라는 것은 허황된 기대일지도 모른다. 결국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민의를 거스르는 것이 '정치인'에게도 이득이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제대로 된 공천을 하지 못한 정치인은 당의 지도부 자리에서 '실각'시킬 수 있는 정당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제갈공명은 촉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민심을 위해서 총애하던 마속을 베었다. 민심의 무서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치공학적 결정'을 이기는 민심의 무서움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