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순제작비 16억의 영화는 어느새 200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이선균과 김민희의 앙상블이라는 이름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테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토대가 되었다는 것은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다. <화차>는 추리소설의 거장으로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이야기다.

변영주 감독은 “원작 소설의 무겁고 어두운 공기를 관객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10번이 넘는 시나리오 탈고 작업과 2년 넘게 메워지지 않았던 여배우의 자리는 그의 고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오랜 시간 걸쳐 관객을 만나게 된 영화는 여타 범작들과 다르다.


그녀가 사라졌다

영화는 소설의 이야기와 맥을 공유한다. 선영(김민희)과 문호(이선균)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청첩장을 가득 싣고 고향을 향해 가던 중 선영이 사라진다. 문호는 선영을 찾기 위해 전직 형사이자 사촌형인 종근(조성하)을 찾아 간다. 문호와 종근은 사라진 그녀의 자취를 밟지만 모든 것이 거짓이다. 이름도 나이도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것 중 진짜는 단 한 가지였다. 그녀가 존재했다는 것.

그녀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심지어 그녀가 살던 곳에서는 지문하나 발견 할 수 없다. 사라진 선영을 찾기 위해 그녀의 고향으로 내려간 문호가 마을 청년과의 대립에 차 백미러를 부수어 버리는 모습은 견디기 힘든 답답함의 표출을 잘 묘사한다. 하지만 어디든 머문 자리에는 온기가 남는 법. 그녀를 두르고 있던 ‘강선영’은 조금씩 형적을 감추고 ‘차경선’이라는 얼굴이 드러난다.

그녀는 ‘왜’ 강선영이 되었나


영화는 차경선의 족적을 따라 밟기 시작한다. 강선영이라는 이름은 차선영이라는 실체를 감싸기 위한 허물에 불과했다. 시작은 아버지의 빚이다. 그것으로 인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은 비극의 전조였다. 그 누구도 그 빚이 그녀의 발목을 끈질기게 옭아맬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은 정해져 있었다는 듯이 운명의 소용돌이는 그렇게 그녀를 조금씩 잠식해 왔다.

그 빚은 그녀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선물한다. 빚쟁이들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그녀의 주위를 배회했다. 그들은 그녀에게 행복의 끄트머리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던 그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겠노라 다가온 남자를 내치게 만들었고 싸구려 웃음을 파는 자리에 그녀를 끼워 넣었다. 경선이 촌스런 화장을 하고 “언니, 택시비 좀 주세요.”라고 우물거리던 장면은 불행으로 점철된 그녀의 삶을 대변한다.

경선은 축축했던 자신의 삶을 밝게 만들기 위해 더 깊은 어둠으로 몸을 숨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평범해지기 위해 선택한 희생양은 술집에 출근하는 강선영이었다. 경선은 아버지의 빛으로 시작되는 비극의 마지막 도피처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강선영의 인생으로 스며든다. 그녀는 ‘세상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최악의 방법으로 최선을 선택한다.




강선영이 된 차경선이였을 뿐


그녀는 차경선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버리려 애쓴다. 문호와의 행복한 나날은 불행의 싹인 차경선이 드디어 그녀와 분리되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녀는 진정한 강선영이 될 수 없었다. 영화 초반 선영이 과거의 파산신청 경험을 문호에게 알렸느냐는 문호친구의 질문에 혼비백산하여 흔적을 감추는 모습은 이러한 사실의 반증이다. 그녀는 강선영이 된 차경선이였을 뿐이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일컬어지는 용산역 장면에는 혼란스러운 자신의 정체성과 마주한 그녀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녀는 먼저 책망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문호의 “너, 뭐야?”라는 물음에 “나 사람 아니야. 쓰레기야.”라는 답변으로 그동안 자신이 쓰고 있던 껍데기를 버린다. 그 발화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선영의 모습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문호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녀를 보낸다.

자신을 쓰레기로 전락시키면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순백색의 상태였다. 하지만 그 상태는 얼마가지 못한다. 문호를 뒤따라 온 종근의 “차경선씨”라는 부름에 그녀는 얼어붙는다. 억지로 자신에게 과거의 둘레를 끼워 맞추려 하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친다. 결국 그녀는 모든 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것만이 그녀에게 남겨진 선택의 자유였다.

 

삶의 흔적만이 남을 뿐

차경선은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뒤바꾸려 버둥거렸다. 그녀의 삶에 뿌리 깊게 박힌 불행의 근원을 뽑아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경선에겐 자신의 삶을 망각할 수 있을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삶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흐르지 않는다. 흘러버린 삶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이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