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지방선거 이후 20대의 투표율이 선거 결과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현상은 사실 이례적이다. 본래 20대는 ‘투표 안하는 세대’의 아이콘이었고, 그래서 ‘개념 없는 놈들’ 취급을 받아왔다. 청년의 투표가 늘면 야권에 유리하고, 청년의 투표가 줄면 여권에 유리할 것이라는 공식 때문이다. 20대는 기성세대의 호명에 의해 개념찬 청춘이 되었다 무식한 놈들이 되었다 한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하지 못할 경우, 선거 결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20대에게 뒤집어씌워질 수도 있다는 농담도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닌 것이다.

20대의 투표율이 낮은 것을 ‘야권 승리의 불안 요소’로만 보는 이러한 시각은 정파적이고 파벌적이고 부분적이다. ‘정권 심판을 위해 청년이 투표해야’ 한다는 정치적 호소나 ‘투표는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라는 당위적 권유는 투표율의 실질적 상승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진정으로 20대의 투표 문제를 사회 문제로 보고 이것을 극복하자고 한다면, 20대 투표율이 왜 다른 집단에 비해 낮게 나오는지 그 배경과 구조적 원인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구조적 원인 중의 하나로 20대의 투표를 방해하고 있는 ‘못난’ 부재자투표 제도가 있다.


복잡한 절차, 투표 포기한 대학생 57%가 부재자 신청 못해서

고함20에서 3월 30일에서 4월 2일에 걸쳐 서울, 대구, 부산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중 실제 거주지와 주민등록지가 다른 부재자 투표 대상은 210명이었다. 이 중 26.2%에 해당하는 55명은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다수의 응답자(30명, 54.5%)가 ‘부재자 신청을 하지 못해서’라는 이유를 들었다. 26.2%는 부재자투표 대상이 아닌 응답자 중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비율이 9.4%에 불과했다는 점에 비추어 보았을 때 매우 높은 수치다. 복잡한 부재자투표 신청 과정 때문에 미리 투표 자체를 포기하는 대학생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 후보인 김광진 씨는 28일 “부재자투표 신청을 처음으로 했는데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놨을까’ 생각했다”며 “투표를 독려해야 할 선관위가 투표를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광진 씨는 5일뿐인 신청기간에는 주말이 포함되어 있고, 마감일까지 신청서가 해당 지역에 도착해야 신청이 유효해 실제로는 신청기간이 이틀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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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단위로 학내 부재자투표소 설치를 추진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선관위 규정에 따르면 2000명이 넘는 부재자투표 신청자가 있어야 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 대학이 많지 않다. 고명우 서강대 총학생회장은 YTN과의 인터뷰에서 “재학생이 8천 명 정도인 대학에서 2천 명 부재자투표 신청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 역대 최다인 29개 대학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되긴 했으나 아직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서울권에는 119개 대학이 있지만, 고려대, 서울시립대, 연세대 등 5개 대학에만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됐다.

교환학생,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등 다양한 이유로 해외에 거주 중인 20대들의 경우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해외부재자투표 규정에 따르면, 부재자투표 신청을 선거일 60일 전에 이미 마쳐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 심지어 투표소도 몇 개 설치되지 않아 비행기를 타야 투표할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해 투표를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포틀랜드에 교환학생으로 있는 대학생 고한솔(24) 씨는 “해외에서 하기엔 너무 복잡해보여서 투표를 포기했다”며, “온라인으로 부재자투표 신청을 받거나 우편으로 투표를 하면 조금 나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72년 이후 40년 만에 다시 시행된 해외부재자투표에서 부재자투표 신고율은 4.4%, 그 중에서도 투표에 참가한 투표율은 44.8%에 그쳤다.


홍보 부족, 부재자투표 일자도 모르는 20대가 태반

부재자투표에 대한 홍보 부족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학생 허광영(23) 씨는 “부재자투표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부재자투표 신청을 언제 하는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특별히 관심을 갖고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등을 찾아보지 않으면 부재자투표에 관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 부재자투표 안내는 부재자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주민등록지로 발송된다.

부재자투표소를 설치한 대학인 고려대에 재학 중인 안보영(21) 씨는 “총학 차원에서 부재자투표 신청을 활발하게 받고 홍보도 많았으나, 정작 어디서 언제 투표하는지 홍보가 부족했다.”며 “투표일자를 11일로 아는 등의 실수로 인해 투표를 못한 학우들이 간혹 있었다”고 말했다. 부재자투표소를 찾는 것은 더욱 더 어려웠다.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부재자투표소 안내를 투표 이틀 전인 3일에서야 공지하고 부재자들에게 별도의 안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편의를 위해 ‘빡빡하게’ 구성된 부재자투표 일정도 20대들의 투표를 방해하고 있다. 대학원생 김경민(24) 씨는 “선거공보물이 투표 전날에야 도착했다”며 “뭐 알아볼 시간도 없으니 투표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재자들의 실제 거소로 등기를 통해 전달되는 선거공보물은 부재자투표 전전날이나 전날에 집중되서 배송되었다. 게다가 집배원들이 등기를 배달하는 낮 시간에는 주로 집을 비우는 20대들이 많아 제대로 공보물을 받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살지도 않는 지역 사정을 어떻게 알고 투표하죠?

부재자투표 신청을 할 수 있어도 안 하는 경우도 많다. 많은 20대들이 주민등록지 선거에 투표를 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는 대학진학과 함께 주민등록지와 거주지가 괴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주민등록지는 등록만 그렇게 되어 있을 뿐 20대의 실제 생활 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생 임태경(21) 씨는 올해 첫 선거권을 얻었으나 행사하지 않았다. 제주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시간이 안 나서 부재자 신청을 못했지만, 신청했다 하더라도 지역 사정을 잘 몰라 제대로 된 투표를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광영 씨도 “인물도, 지역 사정도 잘 모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나와는 별 상관없다는 마인드가 들 수밖에 없다”며 부재자투표 상황의 모순을 지적했다.

주민등록지의 투표가 내키지 않으면, 주민등록을 변경하면 될 것이지만 사실상 자취방, 하숙집 혹은 기숙사에 주소지를 옮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20대들의 주거 현실 역시 불안한 상황이라 언제 다른 곳으로 실제 거주지를 옮기게 될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자취, 하숙의 경우 단기 계약이 많고, 기숙사의 경우 방학이 되면 방을 비워줘야 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생 이슬(24) 씨는 “학사에 사는 동안에 전입신고를 하는 사람을 못 봤다. 이번에 자취를 시작하며 드디어 주민등록지와 거주지를 일치시키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등록지가 아니더라도 실 거주지의 선거구를 선택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어느 정도 해결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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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자투표는 어렵고, 복잡하고, 홍보도 되지 않는데다가, 20대 자신의 삶과 큰 연관이 없는 측면마저 있다. 하지만 20대들도 투표는 신성한 국민의 권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딜레마로 고민하는 20대들에게 ‘개념 없어서 투표 안 한다’는 근거 없는 힐난은 우습기만 하다. 20대의 투표율이 높아져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면,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