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 배우들은 인상이 다 비슷비슷한가요?” 어느 날 영어 회화수업시간에 외국인 교수가 던진 말이었다. 외국인의 눈에는 하나같이 브이라인에 오똑한 코에 크고 예쁜 눈들이 신기해 보였나보다. “내가 미국에서 본 전형적인 동양인 배우들이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라고 덧붙이며 속시원한 대답을 원하는 듯 보이던 교수님의 물음에 반 전체가 패닉에 빠졌다.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기에 생각하지 못했던 핵심을 찔렀던 것이다. 그 날 이후, 필자는 그 이유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게 다 코 때문이야. 똑 같이 생긴 코들이 문제야.”



코성형이 뭐 어때서요?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코는 아이콘적인 존재이다.(출처: 구글 이미지)


 


코가 왜 얼굴에서 중요한 것이고, 어떻다는 것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대체로 사람들은 얼굴에서 ‘눈’을 먼저 떠올리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과 달리 코는 얼굴에서 가장 예쁘기 힘든 곳 중 하나이다. 눈의 모양, 크기, 쌍꺼풀의 생김새 등 여러 가지 요소로 그 인상이 결정 되지만, 코는 오로지 뼈의 구조 하나만으로 그 미가 결정된다. 그런데 그 뼈가 참 웃긴 것이 조금만 손을 대도 여러 가지 조합의 수를 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들창코라도 두툼한 들창코, 얄쌍한 들창코…. 눈매가 비슷한 사람은 많이 봤어도 코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은 잘 못 보았듯이, 코는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해주는 아이코닉한 존재이다.



그래서 그럴까? 사람들의 코를 가만히 보면 그 사람의 개성이 보인다.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의 뾰족하고 높은 코는 합리적인 그들의 삶의 방식을 닮았고, 아프리카 흑인들의 넓고 두툼한 코를 보면 그들 특유의 호방하고 쾌활한 성격이 느껴진다. 물론 동양인의 섬세하고 작은 코는 동양인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사려 깊음을 엿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그들이 사는 기후와 환경에 따라 각자 인종의 코 형태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이런 과학적인 설명을 떠나 각 인종들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어떤 성질이 코에 담겨 있는 걸 보면 이 코라는 것이 얼마나 개성 있는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유일무이하게 개성 있는 코가 그 ‘뽄새’를 뽐내며 빛나는 순간은 아마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일 것이다. 감독의 의지에 따라 배우의 얼굴이 자유자재로 확대되고 축소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얼굴의 매력에 대해서 실감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배우의 코가 소위 ‘한 끗 차이’를 만들어 낼 때가 있다.




얼마 전 제 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프랑스 배우로는 이래적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아티스트>의 장 뒤자르댕이 바로 그 예이다. 그는 한 때 무성영화 계 최고의 스타였으나, 유성영화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그에 적응하고 한 물 간 스타가 되어 버린 ‘조지’ 역할을 맡았다. 장 뒤자르댕이 맡은 ‘조지’는 유성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예술적 기반이 된 무성영화를 버리지 못한다. 자신이 가치를 쉽게 바꾸지 않은 고집 있는 조지는 물론 장 뒤자르댕의 훌륭한 연기력도 한 몫 했지만 그에게 어떤 드라마틱함을 준 것은 그의 얼굴, 특히 코였다. 그의 코는 매우 크고, 약간 매부리코의 느낌이 나는 독특한 코인데, 그 코는 무성영화 배우가 지녀야 했을 어떤 얼굴의 드라마틱함을 주고, 고집스럽게 무성영화를 고집하는 조지의 고집을 나타낸다. 잘 이해가 안 간다면 <아티스트>의 포스터에 찍힌 그의 옆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저 개성적인 코가 매끈하고 세련된 버선코였으면 어땠을까? 



장 뒤자르댕의 드라마틱한 코가 아니었으면 영화<아티스트>는 이만한 포스를 발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의 사진에 매끈한, 잘생긴 코를 대입해보라





물론, 코 성형을 감행하는 배우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코가 높아지면 상대적으로 얼굴에 입체감이 생겨 얼굴이 작아 보이고, 게다가 세련된 이미지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이미지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배우에게 코 성형은 성공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도하게 천편일률적인 코를 가진 요즘 배우들이 다양한 캐릭터와 연기를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과도하게 분필 얹은 듯한 코는 피하였으면 좋겠다. 지나친 코 성형은 자신의 연기 생활에 걸림돌이 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정 감이 안 온다면, 나이 든 노, 중년의 배우가 될 자신을 상상해보자. 무서우리만치 자식에게 집착했던 <마더>의 김혜자가, 코맹맹이 소리로 “여봉~”하던 주책 맞은 <거침없이 하이킥>의 나문희 여사가 매끈하고 오똑한 코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