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친이계 의원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레임덕을 가장 덜 겪고 있는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우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던 건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13일 발표된 검찰의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수사결과를 보면 이 믿는 구석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검찰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통해 확보된 500건의 사찰 자료를 전수조사한 결과 불법으로 사찰을 지시, 실행한 3건만 기소하고 나머지 497건에 대해서는 사법처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망스러운 수사 결과다.

이번 수사는 2010년 1차 수사에 이은 2차 재수사라는 점, 또 문건을 통해 ‘VIP’라는 이름으로 드러난 이명박 대통령이 윗선으로 직접 사찰에 개입했는지의 여부 등을 밝혀낼 가능성 등으로 인해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수사 결과, 검찰은 제대로 된 윗선을 밝히지 못했으며 박영준 전 차장 선에서 수사를 멈추었다. 게다가 이번 수사결과에는 의혹의 대상이었던 MB정부의 불법사찰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 김대중 정부 당시의 사찰 내용까지도 일부 포함하여 함께 발표되었다. 시키지도 않은 짓까지 나서서 한 꼴이다. 이는 MB정부 이전의 사찰과 MB정부의 광범위한 민간인 불법사찰이 양적,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는 것을 무시한 명백한 물타기 행위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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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대다수가 적법한 감찰이었거나, 단순 동향파악 수준에 불과했다”는 식으로 MB정부에 면죄부를 씌워주고 있지만, 국민들이 보는 이 사건의 심각성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행정부 권력이 정치권의 동향을 감찰하고 개입하려 시도했다는 것, 경제계, 사법부 등 행정부가 넘봐서는 안 되는 권력까지도 감찰하고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는 것은 권력 분립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질서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단순 동향파악’으로 축소시켰다는 것은 검찰의 자의적인 해석이며, 일반적인 상식에서도 벗어나는 일이다.

이번 정권 들어 사법부는 독립적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기 보다는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것으로 보여 비판받아 왔다. 정권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거나, 혹은 정권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대해서 통제하는 용도로 이용된 측면이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으며, 또 그들 스스로도 사법부가 가져야 할 권력을 온전히 갖지 못하게 되었다. 사실상 이번 수사는 정권 말이라는 시기적 조건을 틈타 사법부의 독립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검찰은 그 기회를 스스로 날려먹었다. 다음 권력을 선출하는 대선이 불과 여섯 달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의 권력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아직도 정권을 감싸고도는 검찰,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아니면 무엇이 켕기기라도 하는 것일까? 실망을 넘어 경악스러운 수사 결과 앞에서 경우의 수에 대한 온갖 상상들이 뇌리에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