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녀, ○○남이라며 새로운 형태의 인간상을 만들어 내기 좋아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개똥녀에서부터 최근의 짐승남, 초식남, 엣지녀, 품절녀까지! 그 시기와 상황에서 뜨겁게 달아올라 생겨났기에 금세 생명력을 잃고 마는 다른 ○○남/녀들과 달리 여전히 흔히 이야기되는 질긴 이름이 하나 있다. 혹시 벌써 예상했는가? 그렇다. 바로 된장녀다.


 된장녀라는 말이 나오게 된 기원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설이 난무한다. 초기에 쓰였을 때와 현재 쓰이는 의미가 조금 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명품과 된장녀를 마치 짜장면과 단무지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된장녀라고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할 때, 그 말을 쓰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된장녀는 본인의 분수도 모른 채 허영심에 가득 차 명품을 밝히는, 개념이 살짝 부족한 여성’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과연, 명품을 선호하는 것만으로 된장녀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 아니, 실제로 20대들이 명품을 몹시 좋아해 그것만을 고집하는 딱 한 가지의 성향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어째서 ‘된장녀’와 ‘명품’ 두 단어가 평범한 20대 여성들을 대변하는 대명사가 되었단 말인가. 유별난 취향과 철없는 구석을 보인 몇몇 덕분에 20대 여성들 다수가 공통된 이미지 아래 묶여 있던 게 사실이다. 편견으로 얼룩진 시선으로는 무엇 하나 바로 볼 수 없다. 날것 그대로의 그녀들을 만나기 위해 색안경을 벗고 선입견도 지우자. 그러고 나서 20대 여성들의 유쾌상쾌통쾌한 명품 담론을 들어 보자!



  옷차림과 외모 단장에 특별히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20대 여성 150여명이 말하는 명품은 가지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각자에게 다가오는 느낌도 상이했다. 이분법적으로 ‘좋다, 싫다’고 구분하지 않고 구체적인 근거를 들며 그녀들의 명품 선호/비선호를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흔히 쓰이는 ‘명품’이라는 말을 새롭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이상하리만치 명품을 부추기는 우리나라의 세태를 꼬집는 날카로운 발언들도 나왔다.





 의외로 명품 선호/비선호의 비율은 반반으로 치열하게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으레 20대 여성들이라면 ‘당연히 명품을 좋아한다’고 바라보았던 시각이 많이 빗나갔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명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오래 쓸 수 있고 질이 좋기 때문이라는 답이었다. 명품은 괜히 명품이 아니라는 말씀! 값이 비싸지만 소재감이라든지 디자인의 정교함에 있어서는 명품이라고 이름 붙여도 아깝지 않을 만큼 준수하다고 덧붙였다. 또 능력이 있다면 명품을 사는 것쯤이야 전혀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상당히 많았다. 이처럼 충분히 살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경우에는 명품 구입을 단순히 과소비나 낭비로 몰아세울 수도 없다. 명품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 중에는 명품에 들어간 장인정신이나 특별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단지 브랜드 네임으로 터무니없는 가격이 책정된 것이 아니라, 제작과정에 대단한 수고와 정성을 쏟아야 하기에 명품이 된 케이스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수제화, 수제 악기, 한 벌밖에 없는 옷 등등. 더불어 명품이 그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반 대중들에게 다소 난해할 수 있어도, 그런 디자인들이 계속해서 나오기에 패션업계에서 확대 재생산되어 패션시장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단순한 명품 카피 디자인도 디자인의 노력과 센스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창의적인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다. 이 때, 결국 그 본바탕이 되는 것은 명품이 대다수이므로 존재만으로 유용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반면 보통 20대의 수입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나 대중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디자인 때문에 왜 명품이라고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격이 높은 만큼 그에 상응하는 큰 만족감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분수를 넘어선 명품 소비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상당수의 여성들이 부담 능력을 초월하는 고가의 명품을 카드빚까지 내면서 사는 것을 의아해 했다. 이 부분은 가장  많은 인원이 한 목소리를 냈다. 또 요즘은 하도 명품 혹은 모조품을 많이 들고 다녀서 그다지 희소성을 줄 수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명품 비선호자들은 ‘명품을 걸쳤으니 나도 명품’이라는 태도에 특히 질색했다. 물건과 의상의 값어치가 곧 자신의 가치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발상은 쉽게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왜 명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느냐며 채근(?)하며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를 꼴불견으로 꼽았다. 명품에 무관심하거나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능력 부족으로 이해하는 모습에 기분이 언짢았다는 경험담도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그녀들은 또한 명품을 소지하고 다니는 것은 자기 만족감만큼이나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과시욕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점을 꼬집었다.


 우리나라만의 ‘유별난 명품 찬양 분위기’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 정작 나 자신은 있으나 없으나 별반 차이가 없는데 주변의 반응이 ‘적어도 몇 살 정도라면 어느 브랜드 백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쪽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이런 일방적 사고 앞에서 명품을 선호하지 않는 개인의 취향은 무시되어 버리고 만다. ‘진짜 명품을 고르는 안목을 기르자’는 주장도 색다른 시각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한 여성은 우리나라에서는 사치품과 명품의 구분이 모호한 만큼, 네임 밸류만을 믿고 고가 명품 대열에 끼는 ‘쩌리’들도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루에도 언론 플레이와 마케팅으로 명품이 만들어지는 시대이기에, 질 좋고 동시에 커다란 만족감을 안겨 주는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 스스로 심미안을 길러야 한다는 게 그 요지였다.




 명품 선호녀=된장녀라는 공식이 당연시되던 분위기는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비뚤어진 시선으로 20대 여성들을 매도하는 측들이 있다. 확실히 다른 연령대에 비해 자신을 치장하는 데 쓰이는 사치품에 대한 민감도가 높았으나, 그 성격만은 셀 수 없이 다양했다. 단순히 명품이어서 좋다거나 명품을 온몸에 휘감고 다니는 것은 오히려 ‘세련되지 못한 매너’로 손꼽혔고, 명품 선호자/비선호자 모두 스스로 타당한 근거 아래 자신의 가치관을 뚜렷하게 세우고 있었다. 명품이라는 말이 올바르게 쓰이고 있는 것인지 자문해 보기도 하고, 명품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공유하기도 했다. 사실이 이런데도 다수의 20대 여성=명품 선호녀=된장녀라는 낡은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이야말로 '된장스러운' 일 아닐까? 예상했던 것보다 그녀들은 훨씬 더 현명한 소비생활을 하고 있었고, 각자의 생각도 선명했으며, 무엇보다 솔직했다. 생동감이 넘쳤던 그녀들의 이야기가 모쪼록 많은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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