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는 그들의 저서인 <천 개의 고원>에서 ‘욕망’에 대해 얘기한다. 이 때 욕망은 결핍을 충족하려 하는 욕망이 아니라 충만한 가능성을 생산하는 새로운 힘이며, 틀지어진 제도 속에서 다양한 출구를 찾아 나서는 어떤 요인이다. 주체적이며 다양한 욕망과 접촉함으로서 우리는 숨겨진 가능성을 창출한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현대인들을 분열자라고 한다. 분열자들은 사회를 변혁시킬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외부적 예속 등으로 인해 이를 발현할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누군가는 그것을 해냈다. 그리고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있다. 



신승철 씨의 연구소 이름은 ‘별난’이다. 프랑스어로 욕망을 뜻하는 단어인 ‘desir’ 의 어원상 의미에서 따 온 것으로 ‘별에서 떨어져 나온’이라는 의미다. 그는 별에서 떨어져 나와서 자신만의 독특한 욕망을 쫓아갔다. 그 결과 평범한 월급쟁이 회사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자연과 동물 보호에 앞장서는 ‘활동형 강사’로 탈바꿈했다.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느리지만 꾸준히, 사회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관심은 있지만, 그저 관심이 있을 뿐인 문제에 대하여. 그를 완전히 바꿔 놓은 욕망은 무엇일까.
 

현장 활동을 통해 본 다양한 욕망들


요즘 그는 바쁘다. 현재 동국대, 한성대, 경희대에서 강사로서 문화학, 과학철학, 공학윤리 등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동물보호무크 <숨> 편집위원, 동물보호교육센터 추진위원, 가톨릭 생명윤리연구소 전문연구위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꾸준히 책도 저술하고 있다. 최근에는 관심분야가 20대에 대한 담론으로 확장되어 <20대, 세상 밖으로>라는 20대 인터뷰 책도 집필 중이다. 이 모든 활동을 한꺼번에 하고 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미소를 띤 채 말했다. 
 
“힘들지만, 그래도 가치라는 게 굉장히 소중하니까요. 어떤 것에 가치를 느낀다는 것은 그걸 소중하게 여긴다는 거고 이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간에 그에 따른 행동을 하는 걸로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그는 ‘현장성’을 강조했다. 사람들과 집단을 이루어 현장에 나가면서 그 속에서 오가는 대화, 독특한 생각들을 경청하고, 이를 통해 혼자 있을 때보다 더욱 다양하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활동에 참여하면서 많이 배우죠.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도 하고.”
 
그가 현장성을 가장 깊이 느낀 때는 녹색당 강령을 정하는 모임에서였다. 
 
“이백 명 가까이 참여를 한 녹색당 모임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듣고 그것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어요. 그 때가 녹색당 창당을 준비하는 시기였는데,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주제로 다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걸 하나로 정리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그 시간이 정말 좋았던 게,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나온 다양한 목소리가 나름의 일관성을 가지면서 하나의 빛나는 언어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서도 그 고유의 특이성이 사라지지 않아요. 일관성의 구도(들뢰즈와 가타리가 주장한 개념으로, 고정된 위계에 의해 단일하게 전체화된 통일체가 아니라 고유한 차이들 속에서 횡단적 통일체를 구성하는 구도)를 눈으로 확인했달까요(웃음). 그러면서 실감한 것은, 지혜는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어야지, 혼자서 골방에만 박혀 있어선 안 되겠구나, 라는 거였어요.” 
 
시민들이 ‘녹색당다운 정책’의 아이디어로서 제안한 것은 다양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채식식단 제공 의무화, 투표연령 하향, 한반도 비핵화, 서울시 에너지 자립, 대안학교 및 홈스쿨링의 국가지원 및 의무교육 인정 등 단순히 ‘환경’ 외에도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샘솟았다. 이렇게 다양한 욕망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녹색당의 6가지 강령(생태적 지혜, 참여민주주의, 사회정의, 지속가능성, 비폭력, 다양성 존중)이다.
 
그렇다면 그가 적극적으로 이러한 활동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릴 적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았어요. 강아지, 고양이 등 반려동물들과 많이 어울려 살았죠. 시골에 살아서 그런지 동물들과 더욱 친숙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동물에 대한 애착을 많이 가지고 있었죠. 동물보호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긴 건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라는 책을 읽으면서였어요. 공장식 축산업 등,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문명의 요소와 문명 자체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동물보호무크 활동 등 동물보호에 대한 여러 활동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범위가 넓어지면서 환경 관련 활동으로도 이어지게 되었어요.”
 
신승철 씨는 채식주의자다. 채식주의의 종류중 비덩주의(고깃국물은 허용하나 덩어리 고기는 먹지 않는 것)를 추구하면서, 가급적이면 고기를 입에 대지 않으려고 한다. 그가 채식주의자를 선언한 이유는 고기를 만들면서 나타나는 환경 파괴 문제나 비인도적인 양육 행태 때문이다.
 
“생명을 사랑함으로써 인간이 얻을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생명을 도구화하면 생명을 대상화하려 하고 이는 인간의 대상화로 이어져요. 그리고 인간 내부에서 증오와 폭력, 파시즘이 일어나게 되죠. 나치의 만행 역시 이런 부분과 연관지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육식 자체를 비판하는 건 아니에요. 동물 복지를 지키면서 만든 고기를 먹는 건 괜찮죠. 다만 저는 채식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고, 웬만하면 채식을 하길 권해요.”


 

6개월 동안의 제주도행: 그에게 말을 건 욕망에 귀를 기울이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안 가 들어간 회사는 썩 나쁘지 않았다. 근무 조건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업무 시간에 게임을 해도 될 만큼 분위기도 자유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그는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이대로 기계처럼 살다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결혼하고 애 낳는 단조로운 삶에 먹힐 것 같았어요. 몸서리가 쳐지더라고요. 다음날 회사에 사표를 냈어요. 그리고 그 동안 모은 돈 다 들고 제주도로 갔어요. 산으로 바다로, 여기저기 쏘다녔죠. 그러면서 책도 읽고, 영어공부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도 새로 만나고, 그 사람들과 같이 술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자유로운 시간이었죠.”  6개월 동안의 제주도 생활을 통해 그는 자기 자신이 자유인임을 확인했다.
 
“마음이 정말 후련했어요. 아, 나는 틀에 맞춰진 삶이 아니라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구나, 라는 걸 확인한 시간이었죠. 그런 정체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거의 본능적인 욕망이었다. 자유를 원하는 그의 마음은 그를 회사 밖으로 나가게 했고, 이렇게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그는 못 다한 철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했다. 그리고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환경, 동물보호 등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그를 행복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개개인에게서 나타나는 욕망에 대해 긍정적이다.
 
“제가 수많은 철학자들 중 가타리를 전공한 것은 욕망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가타리는 분열분석, 사회역사적 무의식, 욕망의 미시정치 등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공통적으로 ‘분자적 욕망’과 관련이 있어요. 분자적 욕망을 통해 사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죠. 즉 거시 정치로 집단화되어 있는 이익 집단의 움직임을 통해 획일화하는 게 아니라, 각개 욕망의 다양한 움직임을 통한 창조적인 효과를 발산하는 거예요. 촛불집회, 붉은악마, 팬클럽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죠.”
 
가타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혁명을 ‘분자혁명’이라 일컫는다. 각자의 삶의 작은 영역에서 촉발되는 다양한 욕망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일관성의 구도를 이루고, 이를 통해 ‘별난’ 주체성이 홀연히 등장하여 구조화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혁명이 되는 것이다. 이 때 사람들의 욕망은 각자의 사회역사적 배경에 따라 판이하며 접속하는 방향도 다르다. 그러나 그것이 모이면 큰 힘이 될 수 있다. 신승철 씨는 그러한 욕망의 창조적인 가능성을 굳게 믿고 있었다. 자기 자신부터가 그 가능성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프랑스어로 욕망을 뜻하는 ‘desir’가 ‘별에서 떨어져 나온’이라는 뜻이에요. 유별나다는 건  별에서 떨어져 나온 독특한 ‘무언가’이고 그것이 바로 욕망이죠. 개체 하나하나의 생명이 전부 특이하고 유일무이하듯이, 각자의 욕망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욕망도 결국은 생명에너지의 영역이죠. 자기 안에 내재된 생명에너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더욱 적극적인 활동: 녹색당의 탄생 그리고 총선 이후의 녹색당

신승철 씨는 녹색당의 전신인 ‘초록당사람들’ 때부터 정책연구원으로 쭉 활동해 왔다. 녹색당 창당 과정에서는 당원으로서 당의 강령을 만들고 정체성을 세우는 등 나름대로 공헌을 했다. 그에게 녹색당에 대해 물었다. ‘반-정당의 정당’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녹색당은 기존 정당과 같이 권력을 목표로 하지 않아요. 자신의 특이성을 통해 전체 배치를 바꾸는, 말하자면 작은 힘으로 큰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죠. 등대는 하나만 있어도 모든 방향으로 빛을 비추고 여러 뱃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잖아요. 마치 등대처럼, 소수가 다수의 배치를 바꿀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점에서 녹색당은 그 동안 발언권이 없었던 소수자, 어린이, 동물 등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는 중요한 교두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정당의 최우선 목표는 권력을 잡는 것이다. 그 권력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바꾸려 한다. 그런 점에서 기존 정당과는 완전히 반대인 녹색당이 과연 기존 정치판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녹색당의 ‘이질성’에 대해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권력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정당의 입장에서는 녹색당이 대단히 이질적이고 다른 결을 가진 것으로 보일 거예요. 또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으로 봐도 제대로 나눠지지 않으니 애매한 점도 있고요. 물론 한국의 녹색당은 진보 정당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단순한 진보 정당을 넘어서려고 해요. 진보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국의 진보는 ‘자본주의적 진보’의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는 발전주의를 승인하는 거예요. 고용 안정, 비정규직 차별 등 다양한 이슈들을 얘기하고 있지만 암암리에는 성장주의를 깔고 있죠. 일각에서는 성장을 통해 분배한다고도 하는데, 이 역시 성장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자연 환경을 파괴함으로서 분배를 이루려 할 수 있죠. 녹색당은 그런 점에서 달라요. 자발적 가난이랄지, 가난한 삶 속에서의 나눔과 연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꾸고자 해요. 자연과 상생하는 방향으로요.” 
 
공약이나 강령 등에서 나타나는 신선함으로 인해 녹색당은 총선 전 크진 않지만 나름대로 화제가 되었다. 비록 정당득표율 3%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원내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환경, 비폭력, 다양성 등으로 대표되는 녹색당의 모토 자체에는 반응이 있었다는 평가다. 총선 이후의 녹색당의 움직임에 대해 물었다.

“현재 재창당 등록을 한 상황이에요. 이를 위해 정당 발기인대회를 개최하고 창당준비위원회를 꾸리는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어요. 요즘 들어 당원 수가 급속히 늘고 있다는 게 청신호예요. 서울 지역의 경우 상당수의 당원이 총선 이후에 가입했고, 지금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요. 대부분이 이전에 한 번도 정치를 안 해봤던 사람들이에요. 또한 전체 당원 중 53%가 여성이고, 20대의 비율도 높아요.”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연보호주의자들을 끌어들이는 게 필요해요. 녹색당의 기본 가치이기도 하고. 좌우 패러다임을 허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거든요. 사람들이 녹색당을 좌파 정당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요. 하지만 자연보호주의자라는 넓은 영역으로 보면 또 달라요. 2007년 태안 갯벌에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 무려 280만여 명이 직접 와서 기름을 닦았다고 해요. 그런 게 자연보호의 힘이에요. 좌우를 아우를 수 있죠.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녹색당이 제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해요. 보수 진영에서도 생태를 지키려는 보수가 있어요. 보수적 경향이 강한 대구가 녹색당 지지율이 높은데, 대구에 원전이 생긴다는 소식에 환경보호와 탈핵을 주장하는 녹색당을 지지한 거죠. 보수와 녹색은 결코 충돌하지 않아요. 어울릴 수 있죠.”

 
  
  
 
욕망은 고원이다

그 자신의 욕망을 통해 이곳까지 달려온 그에게, 내친 김에 앞으로의 욕망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그의 욕망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앞으로 쭉 뻗어 있었다.
 
“요즘은 문명 전환의 시점이에요. 화석 자원의 고갈, 핵에너지의 범람, 그로 인한 생명 위기 등 여러 가지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제가 새로운 문명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많이 생각해요. 최근에는 20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요. 요즘 세상을 보면서, 그리고 20대 청년 인터뷰를 하면서 실감하는 것은, 3040세대가 20대에게 해줄 얘기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20대들의 얘기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일반적으로 5, 60대는 성장을 이루었던 세대고, 3, 40대는 민주화를 이룬 세대라고 하잖아요. 나름대로 이룬 게 있죠. 그런데 20대에게는 이 모두가 꼰대들로 보일 뿐이에요. 20대가 선택할 부분은 없이 외부에서 주어진 프레임만이 존재하죠. 그래서 지금 20대들이 막연하면서도 비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 그걸 보고 사람들이 20대를 많이 욕하는데, 사실 여러 20대 청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들에게도 독특한 문화와 특이성이 있어요. 사회구조 하에서 특이성을 생산하려는 시도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러나 기존 사회는 그런 문화들을 하위문화로 낮춰 보려는 경향이 있어요. 20대는 자유를 갈망하면서 나름대로 앞길을 탐색하고 있는데, 기성세대들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 모습들을 널리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으론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언제나 목표를 향해 달리고 앞만 바라보는 것이 욕망의 전부는 아니라는 거였다. 욕망은 정점이 아니라, 고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 아내와 고양이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 연구소 앞에 있는 텃밭을 가꾸는 것. 그게 또 다른 욕망이고, 지금의 저이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욕망 자체가 현실이에요. 자기가 가진 욕망만큼 현실이 만들어지죠. 그래서 욕망은 직업으로 규정지을 수도 없고 성공주의가 될 수도 없어요. 그것은 자신의 특이성의 표현이자 현실에 대한 현실이에요. 현실이 곧 꿈인 셈이죠. 요 몇 달 동안 일이 많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큰데(웃음), 이 역시 하나의 욕망이죠.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쉬면서 연구실에서 책도 읽고, 고양이랑 놀기도 하고, 아내랑 여기저기 갔다 오기도 하려고 해요.”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의 ‘고원’에 대해 얘기를 해요. 단순히 쾌락을 좇는 게 아니라, 은은한 녹차처럼 욕망의 강렬함이 지속되는 상태를 일컫죠. 그런 점에서, 저는 참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언젠가부터 욕망을 표현하는 일이 나쁜 일처럼 되어 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억지로 검열한 채 하루하루 억누른다. 그러다 보니 욕망은 왜곡되고 틀에 짜인 형태로 분출되어 여러 부작용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결국 욕망은 ‘자기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이다. 외부에 의해 전유되고 모방된 생각이 아니라, 자기의 주체적인 사유를 통해 개성을 드러내는 독창적 생각이다. 신승철 씨의 말대로 다양한 욕망을 통해 생산되는 특이성이 사회를 재창조할 수 있다면, 욕망을 ‘억눌러야 할 것’으로만 보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욕망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은 이미 사회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챠크렐(eddiejone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