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시선을 잡아끄는 외모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한번보고 잊혀 질 안개같이 흐릿한 선의 배우도 아니다. 34살 이라는 생물학적 나이와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외모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음영이 두드러지는 굴곡, 미간과 이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주름들은 색바랜 느낌을 풍긴다. 하지만 스크린 속에서 그는 세월이라는 관성의 법칙을 벗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아, 마이클 파스벤더 얘기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독일 태생 아일랜드 배우이다. 배우로서 그는 마치 한 장의 백지와 같다. 어떤 색을 입히든 어떤 그림을 그리든 모든 것을 흡수해버리는 새하얀 백지 말이다. 얼마전 개봉한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인간에 의해 창조된 로봇 데이빗으로, <제인에어>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아파하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로체스터로 등장했다. 서로 대척점에 놓여 있는 캐릭터들이지만 그는 철저히 캐릭터 속으로 들어갔고 각각의 캐릭터에 따라 다른 입체감을 부여했다.

 

위와 같은 캐릭터들을 만날 기회는 다소 느리게 그를 찾아왔다. 데뷔작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포함 총 2편의 TV 드라마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쌓은 그는 <칼라>라는 작품을 통해 스크린으로 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그의 스크린 데뷔작은 수많은 범작 중 하나였고 그 후 그는 전쟁, 드라마 등의 장르를 거치며 관객과 소통한다. 허나 그 작품들에서 그의 존재감은 가벼웠고 그의 캐릭터들은 희미했다. 그러던 2008년 그는 이제까지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스티븐 맥퀸 감독이다.

그와 맥퀸 감독의 첫 만남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영화의 주제를 잘못 이해한 그가 껄렁한 모습으로 미팅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스팅 디렉터의 요청으로 인한 두 번째 미팅은 ‘맥퀸-패스벤더’라는 조합을 탄생시켰다. 이후 그는 <헝거>, <셰임>, 2014년 개봉 예정인 <노예12년>까지 총 3편의 맥퀸 작품 모두에 두드러지게 자신의 이름을 박았다. <헝거>에서 슬픔과 분노가 공존하는 눈빛은 모두에게 ‘마이클 패스밴더’라는 배우를 스쳐 지나가기 힘들게 만들었다. 또한 허무주의로 자신을 포장한 섹스 중독자로 분한 <셰임>은 그에게 ‘베니스의 남자’라는 칭호를 선사했다.

<헝거> 이후 그는 선 굵은 캐릭터들과 조응한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짧은 등장이지만 강렬한 인물인 영국군, <데인저러스 메소드>의 무의식세계를 주장했던 정신분석학자 칼 융등이 그것이다. 그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엑스맨>시리즈의 프리퀄)의 젊은 매그니토역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여러 작품을 거치며 그의 연기 세계는 수평적, 수직적으로 팽창했다. 그는 특정한 성격의 인물들만을 선호하지 않으며 양립하는 감정의 뒤얽힘을 담고 있는 그의 눈빛은 여러 작품들을 거치며 더 깊어져 갔다.

이러한 그의 평상시 모습은 영화 속의 그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화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진들에서 장난꾸러기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민망하면 할수록 깊이 웃는 버릇으로 인해 ‘상어’라는 별명을 달고 있기도 하다. 또한 혼잡스런 감정을 드러내던 그의 눈빛은 현실에선 맑고 투명하다. 그리고 기쁘게도 우리들에게 그의 매력을 발견할 날은 더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그의 매력에 빠진 영화감독들과 제작자들이 그에게 열렬히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