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살았던 오늘>은 산하라는 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김형민 PD의 ‘산하의 오역’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산하의 오역’은 '오늘 있었던 과거의 일'을  재구성해서 풀어낸 연재형식의 글로, 페이스북과 블로그에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오늘의 중요한 일들을 단편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와 감동이 있는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내는 것은, 역사를 말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오역’을 매일 챙겨보는 팬으로서, ‘오역’이 책으로 엮어져 나온다는 소식은 반가웠다.

그나저나 왜 ‘오역’일까. 글쓴이는 오역의 뜻을 세가지로 설명한다. 첫 번째 뜻은 ‘오늘의 역사의 줄임말’, 둘째로는 나만의 역사를 뜻하는 ‘오역(五歷)이라는 뜻, 마지막으로는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 발생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경계해야 하는 것’이란다. 뜻 설명만 들어도, 글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글쓴이의 주관과 감상이 들어간, 어디까지나 그가 선택한 ‘오늘의 역사’, 그러나 분명 되돌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역사를 ‘오역(誤歷)’이 되지 않도록 긴장감 있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살았던 오늘>에서는 글쓴이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단편적이다 못해 따분하다 싶은 역사적 사실도, 그의 글 속에 들어가면 생동감 있는 짧은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린다. 그동안 내가 '산하의 오역‘을 챙겨보면서 적어도 대여섯 번은 흘렸던 눈물은, 역사적 사건이 갖고 있는 슬픔 이상으로, 글쓴이의 흡입력 있는 글 솜씨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민중들이 역사가 되다
 

책의 서문에는 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3년간 노력해 온 학생이,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하자 청소 노동자들이 손수 등록금을 마련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글쓴이는 이것을 단순한 미담으로 생각하지 않고 ‘역사라는 거대한 돌탑의 일부를 이룰 것’이라고 말한다. 국가 간의 사건이나, 위인들의 역사만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은 글쓴이에게, 그리고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들어있는 사건을 ‘오늘의 역사’로 꼽는다.

또한 <그들이 살았던 오늘>은 강자 중심의 역사가 아닌, 약자들이 부각되는 역사 이야기다. 슬프고 애달프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위안부 실명 증언자 김학순 할머니 이야기 , YH노동자 김경숙의 죽음, 광주 시민군 지휘자의 죽음 등은 역사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그리고 있었다. 소매치기를 잡으려다가 칼에 맞아 죽은 의인 이근석, 문이 잠긴 방에서 불이 나서, 탈출하지도 못하고 죽은 혜영이와 영철이, 서울 홍제동 화제사건등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건을 되살려내서 하나의 역사로 기록한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죄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불행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책에서는 10년 이상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해오다가, 사연을 알게 된 남자친구와 함께 의붓아버지를 죽였던 김보은·김진관 사건을 소개한다. “구속된 뒤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지금까지 살아온 20년보다 훨씬 편안했습니다. 더 이상 밤새도록 짐승에서 시달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던 김보은의 말을 인용한 부분은,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영화 홀리데이의 소재가 되었던 지강헌의 인질극, 철거민 박흥숙의 사형 집행등도 왜 그들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 하고 있다.

글쓴이는 비범하거나 유명한 인물들을 다룰 때도, 약자의 편에서 싸웠던 자들에 대해 애정을 보낸다.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선생과 같이 유명한 인물들은 물론, 빈민 운동가 김흥겸,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인이었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앞장서서 일했던 영부인 ’공덕귀‘ 등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사회에 공헌한 사람들은 꼭 그들의 기일에 맞춰 ’오역‘을 썼다. 또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 첫 공연‘, ’홍범도 의병 조직‘ 등의 민중이 만들어 낸 역사에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오늘을 되새길 수 있는 이야기들
 

그러나 <그들이 살았던 오늘>이 단순히 과거의 재미있고, 슬픈 역사를 이야기 한 것이었다면 책으로서의 큰 의미는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과거의 역사에 비춰 현재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글쓴이 역시 서문에서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는 이탈리아의 역사가 크로체의 말을 인용하며, 현재의 관점에서 역사를 불러내고 해석하는 것이 오역을 쓴 목적 중 하나라고 말한다.

최근 북한 사이트 리트윗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박정근 사건을 보고, 글쓴이는 반공주의자였지만 줄기차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던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모습을 떠올린다. 6.25 전쟁 통에 공산주의자들이 아내의 목숨을 빼앗아갔던 아픈 기억이 있음에도, 김병로는 ‘형법으로도 충분한데 왜 특수한 법률이 필요하냐’고 주장했다는 것을 인용해서,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공안정국을 만드려는 현재 검찰의 행태를 비판한다.

프랑스의 드래퓌스 사건에 대해 다루면서는, 자살한 자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누명을 써서 자살방조로 3년형을 받은 '또 한명의 드래퓌스', 강기훈씨에 대해 이야기 한다. 드래퓌스는 누명을 풀었지만, 불행히도 강기훈씨의 누명은 아직도 거둬지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강기훈씨는 2009년에 고법에서 재심판결을 받았고, 검찰은 바로 항고했으나, 3년 동안 대법원에서 판결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다. 드래퓌스 사건과는 달리, 강기훈씨의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끝나지 않고, 피해자를 여전히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한국의 비극적인 현실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2012년 직접적으로 한국의 현실에 적용해도 될 만한 역사들이 책 구석구석에 소개되어있다.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KBS 파업, 최석채 필화 사건등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현재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MBC 파업과도 맥락이 닿아있다. 4월 9일을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만든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는, 아버지를 가장 큰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책임이 부각된다. 또한 라울 발렌베리가 10만 유대인을 구한 사건에서는, 발렌베리가를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그들처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지 않는 삼성의 행태가 지적되기도 한다.
 
 

‘오늘의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미덕은 ‘마음을 움직이는 글들’을 엮었다는 것이다. 시대의 비극적인 사건이나, 불가피하게 개인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은 글로 보면서도 ‘울컥’하고, 역사속의 문제로 여겼던 것이, 현실에도 존재함을 다시 일깨워줄 때는 ‘뜨끔’하다. 역사가 현실 속에서 공감을 얻는 과정인 것이다.

<그들이 살아온 오늘>은 엄밀히 말해서 역사서라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역사를 다듬고 재가공해서 만든 하나의 에세이 내지는 칼럼과 같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다.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했으나, 그것이 단순히 주관적인 감상으로 느껴지지 않고, 의미 있는 하나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글쓴이인 김형민 PD는 “오역은 내가 하는 유일한 ‘의미있는’ 뻘짓”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뻘짓’은 어디까지나 겸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우리의 의문에 대한 현실적인 응답이 되고 있다. 읽다보면 다시 반복하지 않아야 할 역사들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다시 되돌아보게 하며, 평범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의 헌신에 대해 절로 감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