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 드라마 심상치 않다. 처음에는 단순히 능력 있는 남편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던 여자가, 갑자기 나타난 시댁 식구들과 갈등을 빚다 나중에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뻔하디 뻔한 kbs 주말 드라마인 줄 알았다. 그 동안 보아왔던 드라마들이 모두 그러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댁 식구들과의 에피소드 뿐 만 아니라 상권을 잠식한 프랜차이즈 기업에 맞서 묵묵히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는 동네 빵집의 이야기, 직장 내 임산부에 대한 차별, 시누이에 대한 존대 문제, 예능 프로그램에서 문제시되는 악마의 편집까지.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아우르며 다루고 있다.

개성 있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는 연기자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드라마에 출연 중인 이희준은 서툰 서울말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게 되는 사투리처럼 무뚝뚝하고 서투른 감정 표현과 능청스러운 연기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출연 중인 김남주&유준상과 이희준&조윤희 커플



당연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현실적인 주인공의 모습


‘넝쿨당’은 시댁 식구 없는 고아를 만나 결혼하는 것을 꿈꾸던 드라마 제작사 PD 차윤희(김남주)가 꿈을 이루지만 남편 방귀남(유준상)이 잃어버린 친부모를 만나게 되면서 말 그대로 넝쿨째 굴러들어온 시댁 식구들과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줄거리만 보면 그저 평범한 kbs 주말 드라마이다.  

그렇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다양한 문제들, 특히 은연중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이 드라마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요소이다. 극중 막내 시누이 방말숙(오연서)은 시댁 식구들의 걱정에도 임신한 채 일을 계속하는 윤희에게 “나마저 가만있으면 언니가 더 자기 마음대로일 것 같으니 나라도 가르쳐야겠어요.” 라며 도를 지나치는 개념 없는 행동을 한다. 이에 대한 윤희의 반응은 일반적인 통념을 뒤집는다. 대뜸 말숙에게 “야, 방말숙”이라는 한 마디를 던진 것이다. 윤희는 어차피 말숙이 자기보다 12살이나 어리지 않느냐며 시댁 어른들에게 처남과 달리 시누이에게는 왜 존댓말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방송이 나가고 인터넷에는 “그 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시누이에게 존댓말을 쓰는 건 불공평한 것 같다” “윤희 의견에 동감한다” 라며 시청자들이 공감을 표하는 의견이 올라왔다. 이렇듯 넝쿨당은 그 동안 당연시되었던 것들에 대해 나름의 유쾌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커리어 우먼 윤희가 능력을 인정받던 직장에서 임신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차별받는 장면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윤희는 임신 사실을 알고 당장 일을 그만두라는 이사의 압박에도 자신의 능력을 무기로 버티지만 중요한 회의에서 배제되고 직장 동료들은 그를 전염병자 취급하며 피해 다닌다. 그 어떤 역경 앞에서도 통쾌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던 슈퍼우먼 윤희도 ‘임산부는 직장에서 폐만 끼친다’는 현실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그 동안 드라마에 나왔던 주인공들은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그것을 극복해냈다. 시청자들은 그것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지만 동시에 이질감도 느꼈다. 그런데 넝쿨당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그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 채 순응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네 모습을 그려낸다.



가족의 의미를 확대하는 과정 흥미진진



물론 비현실적인 요소도 없지 않다. 30년 만에 극적으로 만난 아들이 바로 앞집에 살던 이웃이라니. 게다가 존스홉킨스 의대를 수석 졸업한 재원이면서 매너 있고 다정다감한 방귀남이라는 캐릭터는 현실에 절대 있을 법하지 않은 캐릭터이다. 그 뿐인가. 이 드라마 은근슬쩍 막장드라마의 필수조건은 다 갖추고 있다. 출생의 비밀, 외도와 이혼, 거기에 겹사돈까지!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을 민감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는 데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넝쿨당은 ‘막장드라마’라는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가족의 의미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가족드라마라는 본연의 목적을 끝까지 유지한다.

어릴 적 상처로 아이를 싫어한다며 윤희와 아이를 갖지 말자고 합의까지 했던 귀남이 점차 상처를 치유하며 가족의 의미를 재설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 드라마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귀남은 우연히 알게 된 고아 지환에게서 입양되기 전 자신의 과거를 발견하면서 점차 측은한 감정을 느끼고 마침내 지환을 입양하고 싶다고 윤희에게 말한다. 극 초반부에서 귀남은 며느리 윤희를 혼내는 어머니 청애 앞에서 윤희를 감싸고 청애는 서운함을 남편 장수(장용)에게 털어놓는다. 그러자 장수는 “저 녀석에게 가족은 30년 동안 떨어져 있던 우리가 아니라 새아가야” 라고 말한다.

장수의 말대로 귀남에게 가족은 30년 만에 넝쿨째 굴러온 장수네 식구들이 아니라 아내 윤희뿐이었다. 그런 귀남이 그 동안 아무 의미 없던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들을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아무런 연관도 없던 고아 소년까지 가족의 개념에 포함시키려 한다.

귀남의 이러한 변화는 연출을 맡은 김형석 PD의 전작 <조금 야한 우리 연애>에서 나타난 사랑의 개념과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남주인공 동찬(이선균)은 친한 남자후배 집이 수리 중이라고 집에서 재워주고 김치를 퍼다 주는 여주인공 남희(황우슬혜)에게 “헤픈 게 자랑이야?”라고 묻는다. 남희는 그런 동찬에게 “헤퍼야 사랑이야.” 라고 일갈한다. 사랑을 자신의 틀 안에 움켜쥐고 있던 동찬처럼 가족의 좁은 개념 안에 갇혀 있던 귀남은 조금씩 그 개념을 확장해 나간다.
 
이처럼 넝쿨당은 제목 그대로 넝쿨째 ‘가족’이라는 개념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화두를 시청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넝쿨당을 보면서 한바탕 웃고 난 뒤 어딘가 묵직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주제를 그저 묵직하게 받아들일 것을 강요했던 기존 드라마에 식상함을 느낀다면 같은 주제를 말랑말랑하게 전달하는 넝쿨당이 당신의 입맛에 꼭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