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나온다. 모피어스가 주인공 네오에게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둘 중에 선택하라는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결국 네오는 빨간 알약 을 먹는다. 즉  환상의 세계 매트릭스를 벗어나 불편한 진실의 세계를 대면하게 된다. 인간은 겨우 기계의 부속품에 불과한 진실을 말이다. 그리고 네오는 이 진실과 마주 한 채 자신의 길이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며 현실 세계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드라마 추적자는 네오가 빨간 알약을 먹고 본 한국의 기막힌 현실이자 사람들의 애기이다.

한소녀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단순한 뺑소니 사고였으면 범죄자를 잡으면 얘기가 끝나는, 신문 구석에 짤막하게 실릴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뺑소니를 친 사람이 대통령 후보의 부인인 게 문제였다. 대통령 후보의 장인이었던 재벌회장은 이 사건을 덮는데 총력을 다해서, 사건의 관계자들을 모두 매수하여 사건을 종결시킨다. 결국 사법피해자인 주인공은 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이 싸움에 모든 것을 건다.

한 범죄자를 법 앞에서 정당한 처벌을 받게 하기위해 싸우는 도중, 곳곳에 보이는 드라마의 묘사는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준다. 자신이 살고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의를 믿었던 사람들에게, 이 사회는 부당함과 부조리함을 극적으로 되돌려준다. 힘 있는 자에게 필요한 법은 힘없는 사람을 옥죄는 하나의 사슬 인것이다. 법에 의해 구제를 받으려고 해도, 권력을 쥔 쪽에서는 전화 한통으로 유명 변호사를 선임하고, 사건관계자들을 이용해 재판을 조작한다. 재판을 다시 정의의 이름으로 진행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거대한 권력앞에서 가로막힌다. 담당검사를 교체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이런 식의 상황은 한사람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 법은 더 이상 어떠한 구원을 줄수 없다는 절망을 말이다. 절망적 상황 속 인간의 행동은 자력구제 방식만 있을 뿐이다. 스스로 복수의 길을 택하는 방법이다. 법과 제도가 구원을 못해주고, 보이지 않는 강력한 권력에 의해 제어받는 개인들의 모습은,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

사회의 묘사를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을 통해 그려 낸 것만이 이드라마의 미덕이 아니다. 살아있는 캐릭터 또한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축이다. 바로 이 시대의 소시민이자 아버지를 대표하는 백홍석과, 욕망을 비춰주는 하나의 거울인 강동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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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버지가 있다. 그의 이름은 백홍석. 그의 직업은 형사다. 그리고 그는 고등학생을 딸로 두고 있는 이시대의 평범한 가장이다. 또한 딸을 정말로 사랑하는 딸 바보다. 겨우 한달 220만원으로 한 가정을 꾸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시대의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딸과 놀이공원을 가고자 약속을 한다. 하지만 번번히 시간은 맞지 않는다. 형사라는 직업특성상 그는 언제나 야근이며 갑작스러운 사건사고에 의해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이번 딸의 생일을 꼭 챙겨주려고 철저한 준비를 했다. 딸의 생일을 친구들과 축하 해줬고 딸이 좋아하는 남자아이와 아이돌의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그런 딸은 다음에 커서 아빠와 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행복한 이야기까지 들었다. 한국에서 보통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아빠들에게 상당한 공감을 일으키는 백홍석이라는 캐릭터는, 훗날 극렬하게 분노하는 백홍석에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아버지가 있다. 그의 이름 강동윤. 이발소 집 아들로 태어나 재벌의 사위가 되고, 개혁의 기수가 된 성공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지지율이 가장 높은 대통령 후보이기도 하다. 그도 아들을 두고 있는 아버지다. 그는 아들에게 자상하게 동화를 들려줄 수 있으며 같이 아들과 노는 자상한 아버지이다. 이 지점에서 바로 백홍석과 강동윤의 캐릭터의 대비는 단순히 선과 악의 측면이 아닌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남자라면 공감할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정에서는 딸과 함께 놀아주고 사랑받는 목가적인 분위기 삶을 살고자하며, 밖에서는 모든 것을 전화 한통으로 해결하는 막강한 권력을 상징하는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두 중요 주연만의 호연만이 이 드라마를 완성 한건 아니다. 각 조연들의 살아 움직이는 여러 소묘들은 드라마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었다. 자본의 화신으로 분한 서회장 은 어느 한국사회의 재벌 총수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재벌이라는 존재의 무서운 모습을, 한편으로는 딸에게 용돈을 받고 기뻐하는 입체적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다른 여타 캐릭터에도 현실감을 부여해주며 돈에 흔들리는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드라마는 놓치지 않는다. 법이라는 것이 정말 믿고 따라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검사의 모습이나, 돈 앞에서 친구의 딸을 살해하는 친구나, 후배를 배신한 선배나, 아버지의 추악한 모습을 본 재벌가 딸인 기자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할지 고민하는 흔적들의 묘사는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볼 자신의 나약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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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는 마침내 종영했다. 우리는 잠시 빨간 알약을 먹고 이 불편한 진실을 지켜봤다. 얼마나 가슴 아프고 쓰라린가? 다윗이 골리앗을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보는 내내 불편해했다. 일개 220만원을 받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것 밖에 없구나 하며 우린 자책 했을 것 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강동윤 을 욕망했다. 권력의 화신인 강동윤, 나도 그와 같은 권력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욕망과 사랑을 보여준 두 주인공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하나하나의 모습일 것이다. 동요 ‘클레멘타인’을 부르며 오열하는 누군가의 아버지를 보며, 이것이 한국의 진실이 아닐까하는 씁쓸한 기분과 함께, 우리 세상 사는 사람들의 ‘아버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드라마를 아쉽게 떠나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