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먹자골목’이라 불리는, 식당이 밀집한 번화가를 찬찬히 보면 그 중 고깃집이 차지하는 비율에 새삼 감명받게 된다. 각종 별칭이 붙은 소∙돼지의 모든 부속은 연탄으로, 숯으로, 철망에서, 솥뚜껑에서, 계란 국물을 위한 홈이 파인 철판 위에서 끝없이 구워진다. 당신이 설령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도 한번쯤 구운 고기 아닌 다른 선택을 꾀하려 한다면,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 숱한 간판 아래서 채식주의자의 방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유난한 고기 사랑 때문인지 고깃집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 그래선지 연예인이 자기 이름을 내건 고깃집을 창업하는 일도 빈번히 볼 수 있다. 강호동의 고깃집은 강호동이니 그러려니 하다가도, 국민할매 김태원마저 고깃집을 창업했다는 얘기엔 다소 놀랐다. 이 점에서 한식 세계화 사업 공식 홈페이지(www.hansik.org)는 한국의 식문화를 구성하는 크고 중요한 부분을 누락한 셈이다. 한식 세계화 사업본부가 감히 규정하듯 본디 한식은 슬로우 푸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서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외식 메뉴는 생고기를 불 위에 구워내는 것이다. 그것도 최대한 빠르게. 


 


고기 찾는 우리 입맛, 공장식 축산의 공모자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육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적으로 증가했다. 전통 음식에서 찌개나 탕반등 국물요리가 발달한 까닭은 사람 입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기 단백질을 물에 녹여내서라도 최대한 널리 나누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멀리 전통시대까지 거슬러 갈 것도 없다. 한국 농촌경제 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 시기인 1982~98년간 1인 연간 쇠고기 소비량은 2.7kg에서 7.4kg으로, 돼지고기 소비량은 6.1kg에서 15.1kg로, 닭고기 소비량은 2.5kg에서 5.6kg으로 각각 연평균 6.5%, 5.8%, 5.2%의 증가율을 보였다. 아예 1960년대의 1인 연간 고기 소비량은 쇠고기 500g, 돼지고기 2.3kg, 닭고기 700g에 불과했다. 이러한 식육 소비량 추세는 경제 성장으로 인해 증가된 가계 소득수준을 반영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집단 차원에서 요 2,30년 새 집중적으로 포한(飽恨)을 풀고 있다 설명할 수도 있겠다. 

점점 육류 위주로 재편되는 우리의 식문화를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만은 힘들다. 이유 중 하나는 공장식 축산업이다. 대량의 육류 소비를 뒷받침하려면 공장식 축산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밀집 사육, 인공 시술(거세, 뿔 잘라내기 등), 성장촉진 호르몬, 성호르몬 등의 화학약품 사용, 곡물 사료 투여를 특징으로 하는 공장식 축산의 목적은 첫째도 둘째도 이윤의 극대화다. 공장식 축산은 1920년대 비타민 A, D발견으로 가축의 성장을 위한 운동과 햇빛이 불필요해짐에 따라 본격화되었다.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살기 좋은 미래 센터’의 보고서(Public Health Project to Address Problems of Animal Production, 1999)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막대한 양의 물과 곡물, 석유, 살충제와 약을 소비하게 한다’고 산업화된 축산업을 비판했다. UN아동보호기금의 2009년 남아시아 기아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서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인구는 4억 명에 달한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인간과 가축이 옥수수를 놓고 생존을 위한 경쟁을 벌이는 셈이다. 

공장식 축산에서 밀집 사육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동물학대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
생명체학대방지포럼'은 공장식 축산의 위험한 진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이를테면, 미국의 공장형 양계농가는 가로 1,470m 세로 147m크기 닭장에서 3만 수 이상을 사육한다. 밀집사육으로 인한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항생제는 필수이며, 이는 먹이사슬을 타고 포식자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미 FDA는 조류용 항생제 바이트릴의 사용을 금했다. 조류용 항생제가 사람 몸에 축적되어 내성균이 출현한 결과 인간용 독감 백신이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먹는 것은 가축용 항생제 뿐이 아니다. 소, 돼지의 몸집을 더 빨리 불리고 닭에게 알을 더 많이 낳게 하기 위해 사료와 음수에는 일상적으로 호르몬제가 투여된다. 유전자 조작 기술로 재조합한 성장 호르몬 r-BGH는 사람에게 유방암, 대장암, 생식기 질환, 불임, 무정자증, 성조숙증을 유발한다는 논란을 일으켜 EU에서는 1989년 이래 이 호르몬이 함유된 육류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또한 닭의 경우 산란율을 높이기 위해 인공조명을 동원하는데, 첫 2주간은 24시간 내내 2시간 간격으로 조명을 껐다 켜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6주를 보낸 닭들은 정신 착란에 빠져 잘린 부리로나마 서로를 죽을 때까지 쪼아대는 강한 공격성을 보인다. 그러한 양계장에서 자라나는 닭들의 90%가 다리를 절고, 26%는 뼈 질환을 앓는다. 닭똥 더미에서 올라오는 암모니아 가스 때문에 호흡기 질환을 겪고 시력을 잃기도 다반사다. 


우리가 먹는 건 음식인가 연료인가 
 
오늘날 우리는 의심의 여지 없이 고깃집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그러나 최대한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고기를 더 많이 먹는 것이 과연 한국인의 식문화에 있어 진보를 뜻하는가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음식여행 끝에서 자유를 얻다≫의 저자 데이나 메이시는 오랫동안 섭식장애에 시달린 자신의 체험을 책으로 썼다. 불행하고 억압되었던 유년기의 기억은 그에게 통제할 수 없는 식욕으로 되돌아왔고, 그는 정의할 수 없는 내면의 공허함을 폭식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라 오랫동안 믿었다. 자신이 집착했던 음식들이 실제로 채취되고 가공되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체험하면서, 그는 음식과 자신의 관계를 차분히 되돌아 볼 기회를 얻는다.

데이나 메이시에 따르면 세상에는 공허함을 더하는 가짜 음식과 공허함을 채우는 진짜 음식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라면, 아무리 고기로 풍요로워졌다 한들 한국인의 식탁은 그 음식들이 비롯한 근원과의 연결이 잘린, 공장에서 토해낸 가짜 음식의 전시장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삶답게 만드는 무언가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오늘의 끼니를 책상 위에서 김밥천국 김밥 한 줄로 대강 때우며 그것이 먼 미래에 가족들이 둘러앉은 제대로 된 저녁상 한 상으로 돌아오리라 상상한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은 마치 만기 없는 적금처럼 헛되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릴없이 느껴지는 마음의 빈 자리를 삼겹살 한 근으로 채울 수 있을 거라 믿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