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새로운 연재, 독립기념일!

성인이 된 20대가 왜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독립기념일'은 가상의 화자 '나'가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하면서 겪는 일들을 다루는 연재 소설입니다. '나'의 독립 스토리를 통해 20대의 독립에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하고, 20대의 독립에 대한 고민을 유도하고자 합니다.


11화


요즘 바깥이 시끌시끌하다. 올림픽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나야 피자집에서 잠깐잠깐 보는 게 전부지만, 매일 금메달 소식을 전해주는 대한민국 선수들을 보면 정말 자랑스럽다.

그저께는 체조에서 양학선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여기저기서 양학선 양학선을 외쳐서 집에 가자마자 컴퓨터를 켜서 ‘양학선’을 검색했다. ‘양1’이란 자신만의 기술로 독보적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체조 꿈나무에서 시작해 유망주로, 또 올림픽 금메달로 이어진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대단한 선수다. 얼마 전까지 대학 등록금이며 용돈이며 모두 부모님께 의지한 나보다 낫다. 내 나이 22, 양학선 선수의 나이 19, 나보다 어리다. 양학선 선수의 집안환경도 딱히 좋진 않았다. 최소한 나이며, 배경으로 보면 내가 양학선 선수보다 ‘잘’ 됐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선지 인터뷰에서 “금메달 따면 부모님께집을 장만해 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한 양학선 선수의 말이 나에겐 “나 금메달 딸 때까지 넌 뭐했냐?” 로 들리기도 했다. 살짝 부럽기도 하지만, 어쨋든 울퉁불퉁한 길을 나보다 어린 나이에 완주했으니 박수를 보낼 만하다. 짝짝짝...

‘그런데... 진짜 난 그 동안 뭘 한 걸까...?’

그래도 4년 전 베이징 올림픽 때에 비하면 나도 많이 ‘컸다’. 당시에 난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가족들에게 짜증낸 기억밖에 안 난다. 공부해야 한다며 TV 보는 아빠한테 짜증내고, 말 걸었다고 엄마한테 짜증내고, 친구들 데려왔다고 동생한테 짜증내고, 쓸데없이 화를 참 많이 냈다. 지금 생각하면 뭐하러 가족들에게 못되게 굴었나 싶은데 그 때는 그랬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 3개월 전, 나 자신은 스스로 책임지겠다며 독립생활에 뛰어들고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독립한다고 만날 보던 가족들 못 보고, 돈 번다고 친구들 못 보고, 또 그렇게 번 돈을 보니 가슴 속에 ‘소중함’이란 단어는 제대로 새겼다. 가족의 소중함,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 무엇보다 돈의 소중함까지 말이다. 이승원이가 드디어 철이 들었나 싶기도 하다.


얼마 전엔 계절학기가 끝났다. 1학년 때 놀다가 까먹은 학점을 메꾸기 위해 신청한 계절학기였다. 원래대로라면 이번에 계절학기 수업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독립을 시작하면서 돈이 궁해졌기 때문이다. 우리학교는 계절학기에서 한 학점 당 10만원을 내야 하는데 나에겐 그만한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난 3학년인데다 곧 군대도 가야하고 취업 준비도 해야 하는데, 학점이 모자라 졸업을 못하면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 분명했다. 1학년 때 수업 좀 열심히 들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난 3학점 들어야 되는데... 그럼 30만원... 에효...’

계절학기가 시작하기 전, 계절학기 비용이 너무하단 생각이 들어 민준이 방으로 갔다. 민준이도 1학년 때 나와 함께 많이 놀았으니 아마 계절학기에 대해 잘 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민준이도 계절학기 수업을 들을 생각이었다.

“이거 정말 너무하지 않냐? 무슨 한 수업 듣는데 30만원이야. 그것도 학교에서 듣는건데...”

“나도 좀 심하단 생각은 드는데, 우리가 뭐 항의한다고 하루아침에 10만원이 만원이 되는것도 아니고... 1학년 때 수업 제대로 안 들은 걸 탓해야지...”

“그래도 이건 아니야. 학생처에 연락해봐야겠어.”

“그 사람들도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일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얘기 해봤자 듣지도 않을걸.”

“한 번 믿어보는 거지 뭐.”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민준이 말대로 학생처에 얘기해봐야 해결될 건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내 생각을 학교에 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네, 학생처입니다.”

“저기... 제가 이번에 계절학기를 들을 생각인데요. 계절학기 비용이 너무 비싼 것 같아서요.”

“네!?”

“한 학점에 10만원은 너무한 것 아닌가요? 3년 동안 이 학교에만 꾸준히 등록금 납부하며 다닌 학생인데요. 학교가 학원도 아니고요.”

“네, 그런데 저희가 그 부분에 대해선 아무런 권한이 없어서요. 딱히 해결해 드릴 방법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그럼 학생 건의사항에 올려드릴까요? 저한테 말하신 부분을 건의사항으로 올려드릴 수는 있어요.”

“그럼 그렇게라도 해주세요...”

결국 난 30만원을 지불하고 계절학기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계절학기 비용을 매꾸기 위해 화, 수, 목 오후 6시부터 뛰던 알바를 점장님에게 부탁해 화, 수, 목, 토, 일 모두 풀근무를 뛰게 되었다. 물론, 계절학기 비용은 그대로 한 학점에 10만원이다. 바뀐 것 없이 학교 사이트에는 학 학점 당 10만원으로 나와 있다. 아쉽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학교에 항의하기 위해, 학생회와 같이 일하거나, 1인시위를 할수 있는 시간도, 돈도 없다. 누가 뭐래도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변화’보다는 ‘유지’라는 사실이, 서글프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