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새로운 연재, 독립기념일!

성인이 된 20대가 왜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독립기념일'은 가상의 화자 '나'가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하면서 겪는 일들을 다루는 연재 소설입니다. '나'의 독립 스토리를 통해 20대의 독립에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하고, 20대의 독립에 대한 고민을 유도하고자 합니다.

9화

새벽 두시다. 잠이 오지않는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칙칙하게 엉켜있다. 그 고민들의 끝은 하나다. 채영이는 무지 이쁘고, 나는 너무 못났다. 돈이 없어 카페에서 당한 굴욕 이후로도 채영이와 나는 자주 만났다. 물론 같이 알바하는 피자가게에서. 그날 이후로도 채영이는 한결같이 예뻤지만, 나와 채영이 사이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다. 연락을 못한 지 일주일 째다. 그날의 쪽팔림이 일주일간 이어지고있다. 그러다 아까 용기를 냈다. 열두시에 카톡을 보냈다.

'자니?'

채영이는 대답을 했다. 아니, 해오고있다. 사라지지않는 1을 통해 내게 말해오고있다. '응 자고있어요.' 또는 '안자는데 너랑 카톡하기는 싫어요. 그러니까 대충 알아듣고 귀찮게하지 마요.' 채영이의 대답이 뭐던 문제는 나다. 내가 거지같아서 그놈의 1이 사라지지않는 거다. 내 연락을 기다리지 않고 벌써 잠들게 한 것, 또는 나한테 정 떨어지게 만든 것 둘 다 내가 찌질해서다. 그럼 나는 언제부터 찌질해진거지? 독립하면서부터!

"왜 이러고 살고있냐. 집도 가족도 있는 놈이 왜 나가사는 지 나는 이해가 안된다." 어제 엄마가 찾아오셨다. 독립을 선언한 이후로 쭉,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준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단단히 삐쳐있으셨다. 내가 아버지와 통화 할 때도 엄마는 전화받기를 거부하셨었다. 무언의 시위를 통해 나를 다시 불러들이려하셨던 모양이다. 집안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 아버지를 움직이려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싸나이'이기를 포기하지 않으신 아버지는 끝내 당신 아들의 남자다운 결정을 지키는 데 성공하셨다. 어제 엄마의 방문은 그 증거였다.

두 달만에 마주한 엄마는 아들에게 고기부터 먹이셨다. "살이 더 빠진 것 같다. 집에서도 안먹던 놈이 혼자 살면 오죽하겠냐마는... 그래도 너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 신문에서 봤는데 아침을 먹어야 두뇌회전이 잘 된대. 자식 서울대 보낸 엄마들은 꼭 아침을 먹였다더라." "엄마, 그 얘기 엄청 많이 했어요. 만날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알았으니까 많이 먹어 어서. 나 네 아빠 저녁밥 주러 가야 해. 하여간 너는 어렸을 때 부터 그렇게 엄마속을 썩였어. 유치원 다닐 때는 남자랑 결혼할 거라고 하지 않나, 열살 때는 갑자기 자기를 왜 낳았냐고 묻질 않나. 이것도 여러번 한 얘기지? 그래 니 말대로 니 엄마 할머니다."

불쌍한 우리 엄마. 이상한 아들 만난 죄로 고생이 많다. 나 같은 아들 키우기 쉽지 않았을 거다. 만날 쓸데없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고, 그렇다고 비범한 재능을 가진 수재인 것도 아니고. 고기먹는 나를 보던 엄마의 안쓰러운 눈빛이 떠올라 마음이 엉킨다.

가끔 이럴 때가 있다. 남다른 사고방식에 뿌듯해하고 유달리 예민한 감성을 자랑스러워 하다가도 가끔은 내 자신에게 확신이 없어진다.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서 남는 게 뭐냐, 정작 학과공부는 대충하면서 바보같은 일들에 천착하는 게 멋지다고 생각하냐. 자신에게 되묻게 된다. 특히나 지금처럼 여자한테 '발렸을' 때는 더. 특이한 내가 싫다. 갑자기 20대 독립에 마음이 쏠려서 이런 삶을 택한 탓에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못사주는 바보가 되었으니 말이다.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관심 쏟는 내 성질이 앞으로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 창의성을 요하는 일은 소수에게만 허락되지 않던가.

두시 반이다. 내가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직 안봤겠지'하며 답장을 기다린 게 한 시간. '카톡을 왜 보냈지'하며 자책한 게 삼십분. 이런저런 생각들로 내 자신을 고민한 게 한 시간이다. 이젠 자야겠다. 채영이야 내일 알바가서 보게되겠지 뭐. 아닌 것 같으면 관두면 되는 거다. 어딜가나 예쁜여자는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채영이 얼굴 구경해야겠다. 페이스북 사진첩에 들어간다. 괜히 죄짓는 거 같아 기분 이상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독한 것, 언제봐도 이쁘네.

그런데 방금. "카카오 톡"

'오빠 미안해요ㅜㅜ 과제하느라 카톡을 지금봤어요... 오빠는 자고있죠??'

만세. 아니 채영아 내가 자기는 왜 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