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이란 말은 왠지 모를 신비감을 지녀, 많은 이들이 호기심을 품게 되는 단어 중 하나이다. 그래서일까. SF나 판타지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쪽에 속하면서도, 특이하게 마법이나 마법사에 대해서는 남모를 동경을 품어 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그것도 단순히 ‘마법사들’이라는 제목이 좋아서 끌리게 된 이 오묘한 영화에 대해, 지금부터 이야기를 풀어 보도록 하겠다.

 


다섯 명, 산장, 자살 이후‥

 ‘관객들을 무조건 많이 끌어 모을 요량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라는 한 마디 말 외에는,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다. 감독 이름도 낯설었고 저예산으로 찍은 독립영화라는 이미지가 강해 오히려 조심스레 다가가는 느낌으로 감상했다. 배경과 등장인물은 단순하다. 밴드 마법사를 이루고 있는 4인이 주요 인물이고, 자신이 맡겨 둔 스노우보드를 찾으러 온 스님까지 포함해 다섯 명의 인물이 나온다. 자살한 멤버 자은이 숲 속에서 한 발짝씩 걷다가 산장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이미 죽은 인물이지만 극중에서는 마치 산 사람인 것처럼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고 말한다. 다른 여자와 소개팅한 이야기를 하는 애인에게 ‘흥’하며 토라지기도 하고, 나중에는 밴드 보컬인 하영이 사온 녹차 프라푸치노를 신나게 마시기도 한다. 산장 카페 주인인 재성과 아르헨티나행을 준비 중인 명수는 줄곧 이야기를 나눈다.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와 지금 이야기가 잘림 없는 한 쇼트 안에서 혼재된다.


가장 허구적이면서 현실적이었던 캐릭터 자은

 영화가 배우에게 먹혀서도, 배우가 영화에 먹혀서도 안 된다는 것이 평상시 지론이지만, ‘마법사들’이라는 영화가 내뿜는 힘의 팔 할은 자은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녀는 참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웃을 때는 티 없이 까르르 웃고, 울적할 적에는 미친 듯 오열하며,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에 다다를 때에는 비명을 지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요절하여 돌아보면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한 가지 표정을 하고 사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고정되지 않은 채 여러 가지 감정을 토해내는 그녀는 참으로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이유 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연인과 연애를 하면서 행복해하고 괴로워하는 것도 절절하게 와 닿는다. 반면 독특한 눈화장과 에메랄드빛 망토로 단장한 모습은 독특하다. 더불어 자은은 다른 사람들이 잘 알만한 간단한 사실들을 너무도 모르면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변화가 심하고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 분명 존재하지만 어딘가 붕 떠 있는 것 같은, 현실에서는 발을 뗀 것만 같은 허구적인 모습도 그녀의 또 다른 단면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각인된 자은의 매력은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그 생동감과 특유의 느낌은 비록 극중에서 그녀가 죽고 난 후일지라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잊어버릴 수 없는 캐릭터를 지닌 영화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이 영화가 내게 선물한 고마운 마법일까.





‘음악’ 영화와 음악 ‘영화’의 경계에서

 운 좋게도 송일곤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끼어 있는 작은 상영회에 초대받았었다. 관람 이후 맞은 대화 시간에 여러 질문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때 ‘음악 영화’라는 ‘마법사들’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는 관객이 있었다. 송 감독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 음악 ‘영화’임을 밝혔지만 개인적으로는 ‘음악’ 영화와 음악 ‘영화’의 경계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은연중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하모니카 소리, 마법사 밴드 초창기에 그들이 처음 녹음했던 곡, 자은이 직접 지은 이름 ‘실비아’와 동명인 곡까지- 음악이 영화에 잘 녹아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음악은 이야기의 한 흐름을 이루어내고 있었고 나아가 영화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얼기설기하게 대강 묶여 있는 것 같은데도 평균 이상의 탄탄한 짜임새를 갖춘 신기한 영화다.



호평에는 이유가 있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영화 ‘마법사들’의 평점은 굉장한 수준이었다. 마치 다들 짜기라도 한 듯 별점을 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왜 이런 수작을 이제야 보게 되었을까부터 시작해 엄청난 몰입을 일으키는 영화라는 호평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사실 그 정도까지의 감동을 받지 않아 100% 공감할 순 없지만 확실히 시간 내어 볼 만한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등장 이유도 불분명했고 연기도 5인 중 가장 덜 인상적이었던 스님의 등장은 의문스러웠고, 지나친 죄책감에 시달리며 노래까지 끊은 하영의 단칼 같은 모습에 대한 공감도 잘 가지 않았다. 아쉬운 점이 구석구석에서 보여 무한 찬양까진 할 수 없지만 확실히 ‘힘’이 있는 영화였다. 난해하지만 그럴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 샅샅이 훑고 싶어지는 그런 영화인 것이다. 엄청난 스케일과 호화 캐스팅 등 자본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거대 영화의 홍수 속에서 모처럼 빛나는 원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이 경험이 필자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르는 사이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 수상하고도 매력적인 영화가 당신에게도 발견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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