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의 시대정신은 도덕성보다는 능력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경제를 살려줄’ 정치인을 원했고 그렇기 때문에 경제만 살려준다면 도덕성의 작은 흠결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MB 정권의 탄생 배경이었다. 2012년의 시대정신은 조금 다르다. 목표가 정당하다고 해도 잘못된 수단과 방법에 의한 것이라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4.11 총선 이후 진보진영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통합진보당 사태는 상징적이다. 진보 정치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뜻 있는 기획이었던 통합진보당이었지만 당권파의 비도덕적 행태가 드러나자 보수 진영, 일반 대중은 물론 진보 진영까지도 칼을 빼들어 통합진보당을 공격했다.

정치권의 윤리 의식은 5년 간 달라진 시대정신만큼 변화하고 있을까. 여야를 막론하고 벌어지고 있는 각종 스캔들은 정치인들의 자세가 여전히 요지부동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주연이었던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태도로 일관했다. 통합진보당 지도부 또한 두 의원의 제명안을 부결시켰는데, 이는 정의와 도덕을 추구하는 민심과 상관없이 ‘자기 편’인 사람들을 지켜내려는 정치인들의 습성이 드러난 예다. 이번에는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의 미래 권력인 ‘친박 계열’의 윤리 의식이 시험대에 올랐다. 대선 주자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인 현기환 전 의원이 현영희 의원에게 공천헌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어난 데 이어,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불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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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당 윤리위원회가 제출한 현기환 전 의원에 대한 제명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현 전 의원이 재심을 청구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현영희 의원에 대한 제명 건 역시 일정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 일부는 “당 진상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고, 제명될 경우 당원 자격이 없어져 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제명 연기 이유를 언급했다. 그러나 현기환 전 의원의 거짓말들이 이미 검찰 수사를 통해 증명된 데다가, 국민들의 ‘친박’ 도덕성에 대한 비판도 높아진 시점인데 이를 거스르는 선택을 한 것은 국민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박근혜 후보를 위시한 친박계 의원들이 결국 ‘자기 세력 감싸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정치권에서 사용되는 단어 중 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상한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결단’이라는 단어다. 제대로 된 공정한 공천을 위해 당 지도부가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말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러나 올바른 공천은 사실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현기환, 현영희 공천헌금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현기환 전 의원과 현영희 의원을 제명시키는 것에 뭐 그리 큰 결심이 필요한 것일까. 잘못이 있는 의원들은 제명하고, 책임을 묻고, 또 관련된 모든 비리를 조사해 뿌리까지 완벽히 정리하는 게 당연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질질 끄는’ 상태 자체가 친박의 윤리 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국민들의 시대정신에 얼마나 맞출 수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의 ‘결단 아닌 결단’을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현기환 전 의원에 대한 제명 결정은 16일에 다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