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 머리 위에 불화로를 쏟아 붓는 것 같은 날씨였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로 건널목이 아른거린다. 길 건너편에 가로수 몇 그루가 서 있지만 식목한지 얼마 되지 않는 어린 나무라 기대할 그늘이 없다. 그 곳에 노인 두 사람이 푯말을 들고 서 있다. “무단횡단을 하지 맙시다“ 초록색 모자와 조끼를 입은걸 보니 경찰청 교통안전 캠페인을 진행하는 자원봉사자인 것 같다. 노인들을 이 시간에 뙤약볕 아래 세워놓다니 제정신인가? 때는 오후 한시 반, 폭염이 최고로 기승을 부릴 때다. 이날도 어김없이 서울 및 수도권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다. 하지만 폭염주의보란 ‘발령되었다’고 알리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폭염, 소리없는 살인자
 
올해 폭염의 원인은 예년에 비해 기형적으로 발달한 북태평양고기압이다. 북태평양고기압은 고온다습한 남서기류를 지속적으로 유입시켰고, 제트기류는 북쪽 한기의 남하를 저지하는 역할을 했다. 결과는 전국적으로 낮 최고 기온이 33도를 웃도는 불볕 더위였다. 올해 서울엔 7월 30일부터 8월 9일까지 기록적인 폭염주의보 랠리가 이어졌다. 지난 8월 3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5.4도까지 올랐고, 전국 대부분 지방의 낮 기온 역시 33도 이상으로 치솟았다. 폭염주의보는 여름철(6~9월)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 발효된다. 폭염은 폭우나 폭설 못지않은 자연재해의 일종이다. 폭우나 폭설처럼 가시적인 노력으로 예방하거나 수습하기가 어렵다는 면에서 더욱 무서운 재해이기도 하다. 미국 예일대 산림환경대학원 손지영 박사팀은 2000년부터 7년간 국내 대도시 7곳에서 여름철(5~9월) 기온과 사망자 증가율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폭염이 사흘 이상 계속되면 이로 인해 숨지는 사례가 최대 13.5%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폭염이 ‘소리없는 살인자’라는 별명을 가진 이유다. 폭염이 지속되면 일사병, 열탈진 등 온열질환자가 급증한다. 8월 4일까지 열사병으로 쓰러진 환자는 전국에서 360여명, 그 중 7명이 숨졌다. 폐사한 가축도 10만 마리가 넘었다(국민일보 8월 4일자). 

 

하루짜리 폭염대책?
 
전지구적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과거 사계절이 뚜렷하던 한국의 기후도 변화를 겪고 있다. 간절기가 짧아지고 전체적으로 아열대성 기후의 특징을 띠게 됐다. ‘기상관측 이래 최악의 폭염’은 매년 갱신될 것이다. 무더위를 그저 자연의 섭리로 여길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폭염대책을 정비해야 한다. 현재 국내 폭염대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폭염 문제의 주무부처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이다. 그러나 질병정책과(科) 기후변화대응 TF팀에서 8월 1일 배포한 폭염대책 관련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들 기관의 폭염대책은 안타깝게도 ‘폭염피해 예방 9대 건강수칙’ 류의 홍보성, 한시성 캠페인과 모니터링에 치중하고 있다. 일례로, 올 여름 질병관리본부는 기후변화건강포럼,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폭염 취약 계층인 저소득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폭염건강예방 캠페인‘을 실시했다. 캠페인 대상은 종로구에 거주하는 저소득 독거노인 150가구에 불과했고, 활동 내용은 8월 1일 단 하루, 온습도계와 음료수, 부채를 전달한 것이 전부였다. 

 
한편 폭염피해 모니터링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합동으로 운영하는 ‘폭염피해 표본 감시체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전국의 응급의료기관에서 올라오는 폭염 관련 보고를 종합하는 이 모니터링 시스템은 6월 30일부터 9월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 모니터링의 목적은 전국 응급실을 기반으로 실시간 폭염관련 건강피해를 조사해 추세를 파악하고 일반의 관심을 환기하는데 있다. 진지한 폭염대책으로는 부족한 내용이라지 않을 수 없다. 
 
보다 적극적인 폭염 대비 활동은 지자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재난안전대책본부 소속의 재난도우미 8천여 명과 의료진이 전화와 직접 방문으로 독거 노인의 여름나기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고 있다. 또한 주민센터, 복지회관, 경로당 3천여 곳에 무더위쉼터를 운영 중이며 이들 시설은 열대야시 야간에도 이용할 수 있다. 경기도는 폭염대책 태스크포스와 폭염 특수구급대를 발족해 65세 이상 시민, 어린이, 건설근로자등 폭염취약계층을 관리하고 있다. 특히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14시~17시 사이 ‘무더위 휴식시간제‘를 도입하여 농사일, 체육활동, 건설 노동 등을 자제하도록 할 방침이다. 부산시도 기초자치단체와 함께 폭염대비 합동대책반을 구성, 문자정보 서비스와 취약계층 방문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실질적인 재난 관리가 이루어져야
 
아쉬운 것은 지자체별로 마련한 각종 대책을 종합하고 상황을 점검할 중앙의 컨트롤 타워다. 정책의 집행은 지역 특성에 맞춰 지자체 중심으로 이루어지겠지만, 폭염 등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재해는 국가차원의 과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중앙정부 역시 그에 걸맞는 대비를 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기상청, 질병관리본부, 국토해양부에 해당하는 부처가 협동해 폭염관련 대책을 낸다. 미국은 1970년에 이미 ‘직업 안전과 건강법’(the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ct)을 통해 기후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운 작업공간을 보장할 것을 법률로 명시했다. 노동부는 이 법에 근거하여 ‘직업 안전과 건강’(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OSHA)이라는 부서를 환경보호국에 파견하고, 본 법률의 집행을 감시한다. 영국은 폭염 뿐 아니라 풍수해 등의 재난 일체를 기후변화라는 큰 틀에서 접근, 정부 차원에서 기후변화 위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매년 반복될 살인적인 무더위는, ‘당분간 노약자는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식의 단순 권고나 캠페인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기후에는 정의가 없다’고 한다. 기후 문제 역시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가 혹독해질수록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다. 홍보나 캠페인 부족으로 폭염에 무관심했던 나머지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폭염임을 알아도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폭염주의보 랠리라는 뉴스가 더 이상 공허하게 들리지 않으려면 앞으로의 폭염대책도 보다 단호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