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광기다. 모든 상황들을 평소와는 다르게 만들어버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상에서 우리는 각자의 가치와, 각자의 관심사와, 각자의 취향에 맞추어 각자의 삶을 산다. 하지만 올림픽 기간에 우리 대부분은 한국 선수의 선전을 바라며, 한국 대표 선수의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화면 앞에 앉아 마음을 졸였다. 새벽까지 경기를 보고, 또 매일 경기 결과와 출전 선수들에 대한 기사를 소비하면서, 대표 선수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인 양 그들의 슬픔이 나의 슬픔인 양 일희일비했다. ⓒ 연합뉴스 ⓒ 세계일보 ⓒ 일간스포츠
추측성 오심 논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을 잊었다
런던올림픽 초반에는 연일 오심 논란이 있었다. 실격 번복(수영 박태환), 판정 번복(유도 조준호), 1초 사건(펜싱 신아람) 등이 연달아 일어났다. 여기까지는 정말로 ‘억울한’ 오심 사태였다. 하지만 이후, 객관적으로 오심으로 볼 여지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나라가 오심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식의 중계와 보도, 해석들이 넘쳐나는 모습은 또 하나의 광기였다.
유도와 태권도 종목 중계에서 캐스터와 해설들은 ‘우리 선수가 더 적극적으로 하고 있으니, 상대 선수에게 지도가 주어져야 한다’는 주관적인 언급을 반복했다. (해당 종목에서는 심판이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는 선수에게 지도를 줄 수 있고, 지도가 누적되면 점수 획득과 연결된다.) 레슬링 종목에서 최규진, 정지현 선수가 연일 아제르바이잔 선수에게 패배하며 탈락하자, 언론에는 ‘아제르바이잔이 레슬링 연맹에 수백억대의 자금을 제공해 심판들이 편파 판정을 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진실인 양 보도되기도 했다. 손연재 선수가 출전한 리듬체조 경기에서 러시아 선수들이 실수에도 불구하고 손연재 선수보다 높은 점수를 받자, 리듬체조의 채점 룰을 확인하지도 않고 러시아 선수들이 편파 판정의 특혜를 받는다는 얘기도 나왔다. 체조 경기는 높은 기술을 가진 선수가 실수를 몇 개 저지르더라도 낮은 기술을 가진 선수가 실수 없이 연기를 했을 때보다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양학선 신화, ‘복지 국가에의 의지’를 잊었다
도마의 양학선 선수는 우리나라 체조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양학선 선수는 경기 전에는 스타트 밸류 7.4의 고난이도 기술 ‘양1’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금메달을 따고 나자, 양학선 선수의 ‘가난한 배경’이 기술과 실력을 밀어냈다. 언론은 양학선 선수의 가난한 성장 배경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의 부모가 여전히 살고 있다는 ‘비닐하우스 집’에 방문해 그의 가난함을 부각시켰다. 사회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양학선 선수가 경기 종료 후 가장 먹고 싶은 것으로 ‘너구리’ 라면을 꼽자 ‘너구리’를 만든 농심 측은 양학선 선수에게 ‘너구리 평생 기증’을 약속했고, 건설 회사들은 앞 다퉈 집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일견 훈훈한 모습이다.
그러나 실력 대신 가난함이 부각되고, 그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삐뚤어지지 않고 노력한 고운 심성이 부각된 순간 양학선은 금메달리스트를 넘어 ‘신화’가 되어버렸다. 그는 가난해도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었고, 가난함은 그의 성공을 부각시켜주는 하나의 좋은 배경으로 다뤄졌다. 가난의 이유를 노력 부족, 불성실함에서 찾는 일각의 사람들, 세력들에게 ‘좋은 근거’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여자 선수들에 대한 관심, 그녀들이 ‘운동선수임’을 잊었다
이번 올림픽에도 여전히 ‘얼짱 타령’은 계속됐다. 리듬체조의 손연재는 그 선두주자에 섰다. 한 매체에서 ‘올림픽 10대 미녀’로 선정된 사실은 올림픽 기간 내내 언론이 집중조명했고, 객관적으로는 ‘메달 후보’가 아닌 실력에도 불구하고 메달권이 아닌 또 다른 선수들에 비해 과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김지연 선수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세계 5위에 올라 있어 객관적으로 손연재 선수보다 메달 획득 확률이 높았지만, 4강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김지연 선수의 경기는 생중계조차 되지 않았다. 리듬체조라는 종목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공평하지 않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펜싱도 유럽 선수들의 전유물이기는 마찬가지 아니었나. ‘예쁜 선수’들을 앞뒤 안가리고 집중 조명해 스타로 만들려 한 언론들 탓에 손연재 선수는 불필요한 ‘욕’까지 함께 들어야 했다.
올림픽 기간, 우리는 광기 속에서 넘지 말았어야 했던 선들을 무의식중에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사실은 우리 사회, 언론과 엘리트 스포츠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고쳐야 할 모습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올림픽은 끝났다. 우리가 잊었던 것들, 잃었던 것들을 제자리로 돌이키기 위해서, 다음 올림픽에서는 다시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지난 일들을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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