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기분으로 익숙한 자리에 앉아있는 지금은 오전 2시입니다. 상당한 일들을 앞에 두고 있지만 제 마음은 요즘 들어 가장 편안한 듯합니다. 내일, 정확히 말하면 오늘 오후 1시에 저는 입대합니다.

언제 오나 했던 일이 몇 시간 후로 다가오니 참 재밌는 느낌입니다. 며칠 전 친구와 인사를 나누던 순간에도, 몇 주 전 내일로 여행을 하던 중에도 입대는 막연하게 느껴졌었습니다. 여덟 살 즈음에 교회 수련회를 앞두고 낯선 잠자리를 걱정하면서 ‘군대는 어떻게 가지?’ 고민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 저는 ‘에이, 어차피 한참 남았으니까’하며 침대에 뒹구는 것으로 고민을 끝냈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제게 군대는 먼 이야기였습니다. 대학에 들어오고서야 주위 사람들의 입대를 경험하게 되면서 그 문제를 충치처럼 마음 한 구석에 박아뒀었는데, 이제 내일이면 치과에 한 발짝 들여놓게 되니 홀가분하기도 합니다. 치과의 이름은 306보충대입니다.

 

오늘 점심은 외할머니 댁에서 함께 했습니다. 연세가 여든을 넘겨 귀가 어두워지신 외할머니께서는, 내일 입대한다는 제 말에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혀”라고 연신 당부하셨습니다. 소년을 남자로 만들어 준다는, 철부지도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군대는 정말 그런 곳일까요? 몇 년의 청춘을 헌납하고 온 군필자들의 자기합리화로만 치부했던 그 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공부에 취미가 없던 친형이 지난 6월 제대한 이후로 부지런히 책을 읽는 모습을 보자니 군대는 정말 그런 곳인 듯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곧 해병대 병장이 되는 대학동기가 얼마 전 면회에서 자신이 당하고, 또 가했던 가혹행위에 대해 털어놓았던 것을 떠올려 보니 군대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가 싶어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1년 9개월을 지금부터 비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군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준다고 들었습니다. 여느 어려움들이 그래왔듯, 군대가 제 자신을 성숙시킬 것은 확실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성실히 임하자 다짐합니다.

지난 달 부터는 택시를 타면 기사님들과 군대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년 9개월 복무한다는 제 말에 기사님들은 군대 참 좋아졌다며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당신들께서는 3년을 복무하셨다고 덧붙이시며 말입니다. 하지만 기사님들과 저는 ‘그래도 군대는 군대’라는 결론으로 합의했습니다. 앞으로의 1년 9개월을 짧다고 느끼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친구가 입대할 때 빌려주었던 전자시계를, 어느새 전역과 함께 돌려받아 지금 제 옆에 두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2010년 9월에 입대했던 친형의 입대 날을 떠올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싶습니다. 어렸을 적 악몽이 두려워 이렇게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쁜 꿈을 꿔도 깨고 나면 기억 안 나게 해주세요.’ 자기 전과 깨고 난 후가 꿈에 대한 기억 없이 연결되기를 바랐던 셈인데 군대가 그런 것 같습니다. 복무 기간 중엔 힘들어도, 전역하고 나면 그간의 시간들이 짧게 느껴진다 하니 그렇습니다.

예비군 친구들을 두고 입대하는 분들에 비할 바 없겠지만, 친구들보다 1년 정도 늦게 가는 저는 그 이유로 자주 놀림 받곤 했습니다. 사회에서의 위아래가 의미 없어지는 군대의 특성은 삶에서 2년 쯤 참여하게 되는 역할극처럼 느껴집니다. 입영시기에 따라 역할이 정해지니 이만큼 평등한 사회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가도, 극의 내용이 주는 어쩔 수 없는 비합리성들을 생각하면 극이 끝난 후의 제 모습이 걱정됩니다. 스트레스 많은 환경 속에서 남보다는 나를 신경 써야 할 순간들도 많을 테고, 제 생각에 맞지 않는 일들을 보면서도 못 본 척 넘기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장 일주일 후의 제가 지금을 생각하면 배부른 고민이었다고 쓰게 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입대를 앞두고 바라기로는 2014년 5월의 저도 지금의 제 필명처럼 아홉살이었으면 합니다.



고함20 기자로 활동하던 필명 '아홉살'이 오늘(8월 14일) 306보충대로 입대합니다. 부디 군대에서도 건강히, 웃음잃지 않고 생활할수 있도록 독자들의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