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리뉴스
시리아 제재 결의안이 또 한 번 부결되었다. 이번에도 반대표를 던진 것은 중국과 러시아였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하는 시리아 제재안을 이미 수차례 부결시킨 적이 있었던 중국과 러시아는, 이번에도 국제 사회가 시리아 사태에 직접적인 개입을 하려는 것을 막았다. 시리아는 정부군과 반군 간 내전이 날로 격화되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리비아 사태와 같은 국제 사회의 빠른 개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인해 군사적 개입은 물론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조차도 어려운 상황이다. 시리아에 대한 무기 검색 강화, 시리아 고위 인사에 대한 금융 제재 등 일부 제재가 가해지고 있고, 아랍연맹(AU)도 시리아에 대한 비판 성명을 내놓았지만 정작 알아사드 정권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시리아 사태를 위해 임시 특사로 선임된 코피 아난 유엔-아랍연맹 공동 특사가 국제사회가 시리아 사태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데 대한 항의 표시로 이달 말 특사직 사임을 선언하였다, 시리아 사태의 해결 실마리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작년 1월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의 독재정권에 저항하여 시작된 시리아 사태는 1년 반이 넘게 지난 현재 내전으로 번져 있다. 사망자 수는 2만 명을 넘었고, 20만 명이 넘는 난민이 터키, 레바논 등 주변국으로 탈출했다. 며칠 전에는 정부군이 반군의 거점인 알레포를 탈환하기 위해 알레포에 무차별 폭격을 가해 사망자만 백 명이 넘게 발생했다. 연이은 대량 살상 행위로 인해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은 거세다. 그러나 알아사드는 여전히 당당한 모습으로 공식석상에 등장해, 시리아를 건드리는 국가들은 큰일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앞으로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며 더욱 극악무도한 행위를 벌일 것을 예고했다.
정부군의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알레포 시내. ⓒ로이터
알아사드 대통령이 떳떳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국제사회의 직접적 개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작년 리비아 사태와는 매우 다르다. 카다피군과 반군 간 내전이 격화되자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은 신속하게 리비아 제재 결의안을 채택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유엔군과 나토군의 개입을 승인했다. 이로 인해 카다피 정권은 무너졌고 카다피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시리아에 대해선 이러한 군사적 조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여전히 반군은 외부 세력의 직접적 도움 없이 상처뿐인 혈전을 벌이고 있다. 코피 아난 특사는 알레포 교전이 벌어진 지난 29일 성명을 내고 “병력 집중이 심화되는 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국제사회가 나서서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방법뿐” 이라며 국제 사회의 개입을 촉구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시리아의 대통령 뱌사르 알아사드.ⓒ 한국일보
시리아의 우방이자 최대 거래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현 결의안이 궁극적으로 시리아의 내전 종식과 평화에 기여하지 못한다’ 는 이유로 결의안 체결에 반대했다. 그러면서 서방의 개입이 ‘국가 주권 침해 행위’라고 주장했다. 서구 국가들이 몇 차례 안보리에 결의안을 회부했지만 이들의 반대로 인해 실제로 상정된 적은 없다. 이로 인해 러시아와 중국은 “자국 이기주의적이다”, “독재 정권의 존립을 돕는다” 등의 비난을 받았다. 국제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결의안 체결, 나아가 시리아로의 직접적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게 공통분모로 작용했다.
이는 정치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시리아는 중국, 러시아와 모두 동맹을 맺고 있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시리아 사태 이후 공조 체제를 갖추고 시리아 사태에 대한 뜻을 같이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게다가 둘 다 중동 민주화의 바람이 자국에까지 미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3선에 성공했지만 이전과는 달리 반푸틴 시위가 매우 거세다. 중국 역시 체포되긴 했지만 류샤오보, 아이웨이웨이 등 지식인들을 바탕으로 반체제 운동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완전한 민주화에 다다랐다고 볼 수 없는 두 국가로서는 알아사드 정권이 물러나고 시리아에 ‘아랍의 봄’이 불어오는 것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볼 때, 중국과 러시아는 시리아를 주요 수출국으로 삼고 있다. 중국은 2010년 대 시리아 수출 규모가 전체 국가들 중 3위일 정도로 시리아가 주요한 수출국이다. 게다가 중국의 국영 에너지회사인 CNPC는 시리아에 많은 투자를 하여 시리아와 협정을 체결하고, 시리아의 여러 유전에 대한 우선 소유권을 얻었다. 한편 러시아는 자국의 무기를 구입하는 국가 중 시리아가 가장 중요한 고객에 속한다. 알아사드 정권은 지난해 12월 러시아로부터 약 5억 달러 어치의 훈련용 제트비행기 36대를 구입하는 등, 러시아를 주요한 무기 거래국으로 삼고 있다. 군수 산업이 발달한 러시아에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득이다. 실제 러시아와 시리아 간 무기 거래가 중단될 경우, 러시아 측의 피해 규모는 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추가적으로, 러시아는 유일한 해외 군용 항구가 바로 시리아에 있다.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면 이곳도 무효화되며 이는 러시아의 중동 진출에 큰 타격을 입힌다. 중국과 러시아로서는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진다면 당장 막대한 손실이 밀려오는 셈이다. 반면에 리비아 제재 결의안을 체결할 때 이들은 거부권 행사를 하지 않고 표결 자체를 기권했다. 리비아는 시리아에 비해 이들과의 이해관계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이들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 여부에 의한 대외 정책을 펴고 있다.
폭격으로 인해 불타는 다마스쿠스 시내.ⓒ SBS
그러나 국제정치가 자국의 단기적 이익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국가 간 힘의 논리와 자국 이기주의적 술수가 난무하는 국제정치이지만, 동시에 국제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된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것이다. 세계 평화라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더라도, 인간 사회에 있어 납득하기 어려운 사태가 일어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인류의 가치에 반하는 행위이며 국제정치의 본분에도 어긋난다. 시리아 사태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잃게 한 지극히 비인간적인 사건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현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대항마로 꼽히는 만큼 국제 사회에서는 강대국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들을 선진국이라 부르기엔 아직 모자라다. 극도로 자국 이기주의적인 외교정책 때문이다. 외교 선진국은 국제사회를 좌지우지할 중요한 외교 선택권을 지니고 있으며 때로 세계 평화에 직결되는 결정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손해를 일정 부분 감수하고 평화를 위한 대승적인 결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시리아 사태에 대한 대응 방식은 중국과 러시아가 아직 선진국다운 의식을 지니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과 러시아의 이런 결정은 이처럼 인도적 차원에서도 좋지 못한 일이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국익’에도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다. 알아사드 정권을 사실상 비호한다는 의혹으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국제적 이미지는 악화되었다. 국제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또는 자국에 국제 사회의 긴급한 지원이 필요할 때 그 동안 쌓아 놓은 이미지는 커다란 영향을 준다. 말하자면 ‘기브 앤 테이크’인 셈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이 부분을 다소 소홀히 여기는 모습이다. ‘살인 정권’으로 여겨지는 알아사드 정권을 계속해서 지지하는 국가를 좋게 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익을 위해서라면 반인륜적인 정권도 지지할 수 있다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이미지적인 손해가 아니더라도 아사드 정권을 계속해서 지지함으로써 받는 손해는 여전히 크다,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 이후의 시리아는 현재의 시리아와는 매우 다를 것이며, 중국과 러시아가 계속해서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한다면 이들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러시아는 리비아 사태에 대한 소극적 개입으로 인해 카다피 이후 리비아로의 진출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내전 종식 후 프랑스, 영국 등 서구 기업들이 리비아에 진출하여 석유, 천연가스 등으로 이익을 많이 얻고 있지만 러시아에겐 돌아간 게 거의 없었다. 시리아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런 이유로 알아사드 정권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면 앞에서 말했듯 막대한 국가적 이미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시리아는 수니파가 다수이지만 알아사드 정권의 요직 인물들은 대부분 시아파이다. 물론 반군은 수니파 중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공개적으로 반군을 지지하고 있다. 수니파 아랍 국가들이 주축이 된 AU는 시리아에 대한 공식적인 비난 성명을 이미 발표했고,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당연히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향후 이들 국가는 중동 진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미국과 EU가 시리아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전투기나 공격용 헬기를 이용해 상대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 시리아에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될 경우 시리아 정부가 자국의 영공에 대한 주권 행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소식이 나왔다. 이는 국제 사회가 본격적으로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에 나선다는 의미다. 점차 국제 정세는 알아사드 정권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 가능성 역시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해서 알아사드 정권을 비호한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예상치 못한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시리아 국민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국제 평화를 위해서, 나아가 자신들을 위해서 중국과 러시아는 하루빨리 생각을 바꿔 국제 사회의 시리아 제재 움직임에 힘을 합쳐야 한다. 극적인 상황 변화를 유발할 이들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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