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 지구에는 딱 두 종류의 인간이 존재하지만 이 둘은 가깝고도 먼 관계다. 가까운 예로 우리네 부모님을 보라. 아버지는 허구인 드라마를 보며 눈물 흘리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머니는 스포츠 경기를 보며 본인이 더 흥분하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 온 부부도 이럴진대,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남녀가 서로를 100%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쉽게 생각해보자. 모든 싸움과 갈등은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남녀사이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성별을 바꾸지 않는 이상 상대방의 입장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성범죄에 대한 불안’과 ‘병역’의 문제도 충분한 대화만 있다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이에 고함20은 해석남녀 - (1) 성범죄에 대한 여자들의 수다와 (2) 군대에 대한 남자들의 수다를 통해 서로의 시각차를 좁히고자 한다. 부디 이것이 또 다른 오해의 씨앗을 낳지 않길 바라며.

출처: http://cafe.naver.com/potoil/2139


남자들의 수다 “여자들은 군대이야기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죠?”

여자들이 싫어하는 이야기 3위 안에 꼽히는 게 군대이야기다. 어렸을 적 군인 아저씨에게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편지를 쓰던 때도 있었는데, 군대에서의 경험담 좀 말할라치면 “요새 군대는 편하다며? 남들 다 가는 군대가지고 유세 좀 떨지마”라고 딱 잘라버리는 여자들이 너무나 밉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진짜 군대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지훈(25), 현빈(26), 인성(24)(모두 가명)이 군대에 대해 말한다.

-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얘기를 많이 한다. 남자들에게 군대란?

현빈
: 전역한 지금은 추억도 많고 여러 경험도 많이 해봐서 좋은 기억인데, 다시 가라하면 못가겠다(웃음).

지훈
: 글쎄, 남자들끼리 공통분모가 군대니까 많이 이야기 하는 거지. 나도 군 생활 재미있게 하고 와서 딱히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인성
: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남들도 2년 다 가는 거고. 

- 병역 문제가 이슈가 되면, 댓글이나 게시판에 남자만 가는 게 억울하다는 식의 글이 많은데, (본인들은) 별로 억울한 점은 없나?

현빈
: 난 이미 갔다 왔으니까(웃음). 군대라는 게 그 안에 있을 때랑 제대하고 나서가 조금 다르다. 그 안에 있을 때는 시간 뺏기는 느낌 들고, 갇혀 있는 느낌 들고 좀 억울할 수도 있는데 제대하면 별 생각 없다.

지훈
: 동감한다. 남자 사회에서 군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니까, 결과적으로는 갔다 오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남자들끼리는 공익이나 면제 받은 남자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군대를) 경험하지 못하면 대화에 끼기 어렵거든.

- 보통 남자들이 군대 얘기 하는 거 보면 위험하고 심각한 일들이 많은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니 군 생활이 할 만한 건가.    

현빈
: 그건 별개의 문제다. 아까 말했듯이 갔다 오면 좋지만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군대다. 오죽하면 군대 다시 가는 꿈이 가장 큰 악몽이라고 하겠나. 군대는 상식이 안 통하는 곳이다. 이병 때 데모 막으러 가면 밥 거의 15초 만에 다 먹어야 했고, 닦은 곳 또 닦고, 청소한데 또 청소하고….

지훈
: 맞다. 한 번으로 족하지. 사실 여자들이나 군대 아직 안 간 애들 앞에서는 과장도 보태고 거의 뭐 자기가 영웅인 것처럼 말하는 놈들이 있는데 그건 오버고 먹는 거나 노는 거나 제약을 많이 받으니까 힘들긴 하다.   

현빈
: 먹을 거 하니까 생각나는데 한 달 정도 당분 섭취 안 하고 버텨보면 왜 초코파이가 그렇게 맛있는지 알 수 있다. 난 훈련소 끝나고 경찰학교 가는 기차에서 칙촉 두 통을 한 번에 다 먹었다. 진짜 맛있더라.

- 그럼 군대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현빈
: 아플 때. 혼자 살 때 아프면 서럽다는데, 군대에서는 아프면 서럽기도 전에 욕먹는다. 내가 아프면 일할 사람이 없으니까. 

지훈
: 천안함 사건 터졌을 때. 나는 4.2인치 박격포였는데, 완전 무장하고 장갑차에 포탄 적재하고 대기하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서울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라서 통일로 앞을 막아야했는데 전시에만 쓰는 실제 탄을 무장하고 밥도 거지마냥 장갑차에서 먹었다. 3박 4일 동안 초긴장상태로 있는데 이게 실제 상황이니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족들 얼굴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나더라. 그 땐 진짜 장난 아니었다.   

인성
: 나도 연평도 포격 사건 일어났을 때가 제일 힘들었다. 그 날 6시에 갑자기 비상 걸려서 전 부대가 간첩선 차단 목적으로 야산에 배정 받았다. 총기 지급받고 단독군장착용하고 목초지 점령하러 갔었는데 그런 일이 처음이니까 너무 당황하고 무서웠다. 얼마나 긴장했냐면, 출동할 땐 항상 위장을 하고 나가는데 그게 땀으로 다 지워질 정도였다. 밤에 잘 때도 전투복에 양말 신은 채로 자고…. 다음 날부터 한 달 동안 주특기 훈련만 하면서 총 들고 군장 착용한 채로 생활했는데, 가뜩이나 겨울이라 춥고 횡하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평소에는 내가 군인이라는 걸 잊고 살았는데 그 때 '아, 난 군인이고 여긴 군대였지' 새삼 깨달았다.



- 사회에서 2년과 군대에서의 2년은 어떤 차이인가.

현빈
: 입대해서 자대 갔을 때, 병장이 이리로 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뛰어갔더니 이까지 몇 초 만에 왔냐고 묻길래 2초 만에 왔다고 하니까 나는 2년 걸려서 왔다고 했다. 

지훈
: 여자들이 군대에서의 2년을 사회에서의 2년과 다르게 보는 경향이 있다. 여자 동기들은 고학번이 돼서 취업 준비하느라 바쁜데 우리는 복학해서 과 생활하고 후배들이랑 다니고 그러니까 자기네들이 성숙해질 동안 남자들은 제자리걸음 한다고 생각하나보다. 여자 동기들이 '너희는 아직 2학년이라 좋겠다'고 하는데 그 뉘앙스가 '수준 안 맞다, 철없다' 그런 느낌이라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인성
: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근데 사회에서 격리된 채로 2년을 보내면 다 애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는 놀 것도 없고 먹을 것도 마음대로 못 먹으니까 사소한 거에 즐거워하고 신나는 거다. 운동 죽어라 싫어하던 애도 축구에 목숨 걸고, 참새 쫓아가는 것도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고, 아이돌에 관심도 없다가 소녀시대 이름 다 외우고…. 군대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건데 그걸 단순히 수준이 낮다, 단순하다 이렇게 보면 좀 안타깝다.

- 말이 나와서 말인데, 여자들에게 군대 관련해서 섭섭할 때는 언제인가?

지훈
: 나는 아까 말했듯이 군대에서의 2년을 하찮게 보는 시선들이 섭섭하다. 남들 다 갔다 온 군대가지고 뭘 그리 유세냐고 듣기 싫어하고 무시하면 괜히 욱하고 그렇다. 여자들이 외국 교환학생이나 유학 갔다 오면 외국에선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경험담 말하잖아. 그거랑 똑같이 우리도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특별하고 큰 경험이 군대라서 말하는 건데, 왜 들으려고 조차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현빈
: 이건 여자들에게만 섭섭한 건 아닌데, 연락하거나 휴가 나갈 때 처음에는 반갑게 맞아주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귀찮아하는 거. 귀찮아하고 성가셔 하는 게 느껴지는데, 그럴 때는 사회랑 더 격리된 느낌이 들어서 씁쓸했다. 병장쯤 되면 오히려 내가 연락하는 게 귀찮아지지만(웃음). 

인성
: 맞다. 나는 첫 휴가를 130일 만에 나갔는데 벌써 나왔냐고 하더라. 휴가 나갈 때마다 또 나왔냐고 그러는데 휴가 자주 나오는 건 내 노력의 대가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축구에서 이기거나 사격을 잘 하거나 쓸데없는 지식들 외워서 시험 치거나 하면서 힘들게 휴가 받아 나가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면 좀 그렇다.


신체 건강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한창일 시기에 자그마치 2년을 군대에서 보낸 그들은 의외로 2년의 세월에 대해 아깝다거나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했다. 돌아보면 즐거운 추억이자 경험이고 남자들의 세계에서 군 생활 여부가 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남자들이 갔다 왔다고 군대의 의미가 옅어지는 것은 아니다. 엄연히 ‘나라’를 ‘지키기 위해’ 2년을 희생한 그들은 “감사는 바라지도 않고, 무시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