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약하다. 단군 이래 최대 스펙으로 무장한 현 청춘들도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과의 모임에 속하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20대의 모습이다. 개인주의 문화가 팽배하다며 기성세대에게 비판을 받고 있는 20대에게도, 어설프지만 자신만이 갖고 있는 관계의 덩어리가 있다.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모임들이 말이다.

물론 20대에게 공동체는 참 낯간지러운 단어이다.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나 봄직한 이 단어는 청춘들에게 상당히 고지식하며 낯선 느낌을 준다. 대학생 이준헌(26)씨는 “공동체라고요? 글쎄요. 그냥 모임, 동아리, 뭐 이런 것은 와 닿는데 공동체라니 좀 뭔가 교과서같은 느낌이네요” 라고 말한다. 20대에게 공동체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단어로 여겨진다.



스터디, 소비적이고 일회적인 관계의 온상

하지만 ‘취업관련 스터디라는 말을 들으면 대다수 20대는 탁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스터디는 공부라는 목표의식 아래, 책임감을 갖고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의 모임이다. 청춘들은 취업이라는 험난한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자구책으로 ‘스터디'를 통해 대인 관계를 형성한다.

취업스터디나 토익스터디같은 이해 타산적 모임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987년 이후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기 시작하면서 개인주의 문화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로 청춘들의 트라우마가 형성되는 동시에, 신자유주의적인 사회로 급속하게 변화하면서 무한경쟁 사회로 진입했다. 그러한 이유로 스펙과 취업에 대한 목표의식이 청춘들의 의식 저변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인 배경 속에서, 20대에게 대인 관계는 단기적이며 수단적인  목표 아래 놓이게 됐다. 이에 대해 준헌 씨는 “취업 스터디의 목적은 취업과 공부죠. 취업이라는 단일 목표아래 서로를 도와주는 관계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에요” 라고 말했다.

특정한 목표를 위해 모이는 취업스터디나 토익스터디는 공동체와는 상당히 멀어 보인다. 내 앞에 앉은 스터디원은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런 소비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어떤 친밀한 유대감이 형성되기는 쉽진 않다. 대학생 김광일(27) 씨는 “아무래도 단기적인 목표로 몇 번 만나는 게 고작이다 보니 그냥 만나면 서로 인사만 할뿐 더 이상 관계의 진전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반겨주는 곳이 없어 외로운 복학생의 비애


나이가 많거나 고학번인 사람은 자기 검열을 하기도 한다. 오히려 혼자 다니는 것이 편하다. “혼자서 공부하고 밥 먹는 게 편해요. 스터디도 귀찮고요. 서로 모여서 밥 먹다 보면 시간이 너무 많이 소진된다.” 4학년인 홍길동(가명) 씨의 일상이다. 취업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학우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도 사치처럼 느껴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삶을 사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조차 효율성 앞에 희생된다. 학교 내 게시판에서 볼 수 있는 ‘출석체크 스터디’나 ‘밥터디’ 같은 관계는 효율 추구의 극단적인 모습이다. 길동 씨는 “아무래도 밥을 혼자 먹는 것은 아직까지는 불편하다.”며 “하지만 굳이 밥을 먹기 위해 다른 관계를 만드는 것보다 그냥 밥만 먹고 헤어지는 게 빠르고 시간낭비가 없다.”고 말한다.


동아리라든지 스터디를 하는 친구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특히 복학생들에게 있어 대인관계를 다시 형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김광일(27)씨는 “동아리를 가입하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 한다” 라며 “아무래도 나이차이 나는 후배들과 어울리긴 힘들고 가면 혼자 겉 돌 것 같다”라고 했다. 고학번 선배들은 자신이 기대어 누일 곳을 찾기 힘들다.
  


'동아리 활동'과 '전통적 방식의 친구 맺기'도 크게 다르지 않아

그렇다면 동아리는 특별한 유대감을 지닌 공동체로서 위상을 지키고 있을까?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동아리는 20대에게 있어 대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외국문화 교류 동아리에서 활동 중인 이도훈(24) 씨는 “외국인 친구와 문화를 공유하고자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친구들과의 지속적인 관계 형성하는 데에 문제는 없어요.”라고 했다. 다만 “아무래도 4학년이다 보니 취업준비를 위해 동아리 친구들과 같이 있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아쉽다”라고 한 점을 비추어 보면 사회경제적인 여건으로 인해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스터디와 같아 보였다.
 

전통적인 방식의 친구 맺기도 다르지 않다. 김광일(27) 씨는 “현재 나이도 있고 그러다보니 가장 친한 친구는 아무래도 학창시절 친구들과 가장 친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다.” 라며 “복학 후에 겨우 2년이 남는데 금방 졸업하고 취업하면 지속적인 관계는 아무래도 힘들지 않나” 라고 했다. 특히 고학번은 앞서 말했듯이 취업이라는 목표 앞에서 친구에 소홀에 지기 쉽다. 이에 대해 이준헌 씨는 “ 다들 취업준비로 바쁘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다. 겨우 방학 때 한번 오랜만에 모여 여행가는 정도다.” 라고 했다.





효율성과 소비적인 인간관계, 현재 20대의 관계를 규정짓는 키워드다. 물론 이런 조건 속에서도 가치 있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청춘들도 있다. 과연 친밀한 유대감속에서 자신을 돌아봐줄 관계가 형성 돼있는가? 현대 한국사회는 친밀한 관계를 만들 조건을 창조 하지 못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속 인간관계는 ‘소외’를 통해 나타난다고 했다. 20대 청춘들이 서로가 소외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서로를 자신의 목표를 위한 대상으로 만들어 서로를 소외 시키는 이해 타산적인 ‘스터디’같은 대표적 모임 형태는 현재 20대가 보여주는 관계의 어떤 특별한 징후를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