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 바람이 휩쓸고 간 흔적, 이제 고이 접어 나빌레라.

회오리 바람은 기존의 것을 뒤흔들고 난 후, 정적을 울리는 특성이 있다. 태훈과 미정의 사랑 역시 회오리바람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감독은 ‘회오리 바람’을 주인공 태훈에 감정이입해서 볼 영화라고 했다. 회오리바람은 그의 사랑경험담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태훈은 감독의 분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기자시사회에서 ‘회오리 바람’ 을 통해 자신의 아듀 고삐리시절을 외쳤다. 태훈이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달리는 오프닝 시퀀스는 회오리 바람이 휩쓸고 간 흔적을 흘려보내는 감독의 바람이 반영되었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 본다. 

고등학생인 태훈과 미정은 100일 여행을 일주일간 떠난다. 감독은 영화 중간 중간에 그들의 여행 장면을 삽입하여 애틋함을 보여준다. 기존의 멜로물이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에 대해 논한다면 ‘회오리 바람’ 은 이형기 시인의 ‘낙화’의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는 구절을 연상하게 한다. 물론, 태훈이 미정을 사랑할 때 보여준 집착은 무릎 꿇고 애원할 정도였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17만원을 받았는데 헤어진 여자친구를 위해 16만원짜리 목걸이를 사주고 본인은 햄버거를 사 먹을 정도로 사랑은 강렬했지만 말이다.




눈물범벅의 자장면, 포복절도의 코믹의 조화.
곳곳에 심어놓은 엔돌핀 자극제.

미정이 다니는 학원을 찾아가 “강미정. 나랑 얘기 좀 하자고! ” 하고 큰 소동을 일으킨 클라이막스 이후 오토바이를 달리고 질주하는 태훈은 급기야 사고를 낸다. 그가 눈물을 머금으며 먹는 자장면 씬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회오리 바람은 멜로물이지만 딱히 슬픔을 자아내는 장면은 없다. 오히려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 많은 유쾌한 영화이다. 중국집 배달원인 태훈이 엘리베이터에서 김칫국물을 흘리자, 아주머니가 “이거 꼭 닦고 가. 꼭.” 하고 다그치지만 그는 속된말로 당당하게 아주머니를 씹는다. 경비원 아저씨가 그를 부르자, 태훈은 역시 또 씹고 유유히 사라진다. 장면 하나하나가 소소한 웃음을 유발한다.

포복절도할 만한 웃음을 유발하는 미정의 아버지는 태훈의 부모님과 태훈을 집에 초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미정의 아버지가 태훈에게 A4용지를 건네며 “미정이랑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저 방에 가서 써 와.” 하는 대목은 초등학생 시절, 반성문을 써오라는 선생님을 연상하게 한다. 겉으로는 치과의사의 직업에 걸맞게 품위를 유지하던 미정의 아버지가 갑자기 바지 속의 장도리를 꺼내 유리를 산산조각내고 그 다음날, “어제 제가 좀 취해서..” 하는 장면은 코믹의 진수를 보여준다.





벤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거머쥔
아름다운 미쟝센.

옥구슬을 구르는 듯한 음향과 섬세한 미쟝센. 눈부신 바다는 매우 아름다웠다. 상경하는 버스 안에서 보이는 서울의 모습과 현란한 조명들이 교차되는 영상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감독은 스토리나 연기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흔적들을 섬세한 미쟝센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벤쿠버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인 토니레인즈는 “근래 본 영화들 중 미쟝센이 가장 아름다웠으며, 주인공들의 연기 역시 매우 훌륭했다.” 고 평했다. 감독이 영화에서 보여준 영상미는 호평을 받을 만큼 완벽했다.

격랑의 사춘기를 살아가는
청소년이 공감할 법한 대사들.

미정이 동생과 다투자, 자신에게 혼내는 엄마에게 “ 왜 나한테만 그래!” 라고 소리 지르는 장면과 엄마에게 폰을 뺏긴 태훈이 엄마에게 “ 돈 갚으면 될 거 아냐. 폰 내놔” 하고 외치는 장면은 부모님과의 다툼에서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달려드는 태훈이 엄마에게 “내신 안 좋으면 좋은 대학 못 가는 거 알잖아.” 라고 말하자, 엄마는 “너 중학교 때 공부 잘했잖아. 지금부터라도 하면 되잖아.” 하고 담담하게 말하는 장면 또한 일탈을 원하는 청소년이라면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인데.’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공감할 것이다. 집나간 고등학생이나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 고등학생이 자신의 영화를 보았으면 좋겠다고 밝힌 감독의 고딩을 향한 공감대 형성은 감독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대사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