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전문가가 아니어도 외국의 음악과 방송, 영화 등등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신곡은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이고 발칙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역시 이미 외국의 시청자에게 검증받은 것의 복사본일 뿐이다.

특히 요즘 네티즌들의 집중 수사 대상에 올라있는 분야는 가요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명가수가 신곡을 발표하면 관련 기사 밑에 이 구절은 어떤 노래와 비슷하다 혹은 익숙한 멜로디이다 라는 식의 댓글이 달린다. 유튜브에는 원곡과 표절곡을 친절하게 비교한 영상이 올라온다. 이런 관심은 효과적인 마케팅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게 되고 유행가의 수순을 밟는다.
현재 가장 핫한 표절 논란의 중심에 있는 씨앤블루의 ‘외톨이야’라는 곡이 그러하고 지드래곤의 ‘Heart breaker'도 마찬가지이다.


Copy - Reference 의 묘한 경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그룹들의 인기곡 대부분이 레퍼런스(reference)라는 방식의 작곡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다른 곡의 스타일과 느낌을 빌리는 것으로 대놓고 표절했음을 드러낼 필요 없이 대중에게 이미 검증받은 멜로디나 곡의 진행방식을 차용하는 방식이다. 일부 작곡가들은 레퍼런스는 카피가 아니므로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음악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무지한 대중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창작이란 말 그대로 처음으로 들어낸 것이므로 독창성은 창작물에 있어서 핵심이다. 더불어 가수 MC몽의 ‘너에게 쓰는 편지’가 더더의 'It's you'와 실질적으로 유사함을 인정하여 위자료 1천만원을 지급하도록 한 판결에서 법원은 수요자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기도 하여 무지한 대중의 왈가왈부에 의미를 부여했다(2006가합8583).




오마주와 패러디, 샘플링처럼 정도(正道)의 창작 방법이 아닌 레퍼런스라는 이름 뒤에 예술가의 자존심을 구겨 넣고, 이미지를 카피하는 것이 작곡으로 인정받는 현실이다.



이효리와 씨앤블루

대중들은 표절가수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표절의혹이 일면 가수들은 법적으로 표절이고 아니고를 떠나 도덕적, 사회적 책임을 이유로 방송활동을 중단한다던가 사과의 메시지를 발표해야 했다. 이효리의 경우 솔로1집의 화려한 성공에 이어 내놓은 2집 앨범의 <겟차>가 브리트니스피어스의 <Do Something>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가 표절시비에서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효리의 결정은 활동 자체를 접는 것이었다. 이렇다 보니 TV나 라디오에서 표절의혹의 곡은 선곡하지 않게 되었고 인기곡이 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표절이라는 꼬리표는 인기가요의 다른 이름이 되어버렸다. 대중들은 표절 의혹에도 일단 듣기 좋으니 내버려 두거나 팬이 된다. 씨앤블루의 경우 데뷔 2주 만에 음악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5만여 명의 팬클럽 회원들을 거느린 대형 신인으로 거듭났다.

표절곡을 들었을 때의 반응에 대해 물었다. 어떤 이는 표절임을 알게 되면 절대로 듣지 않는다고 한다. 더군다나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에서 곡을 홍보하는 것을 보면 화까지 난다고 한다. 몇몇은 표절이라는 사실에 실망스럽지만 듣기 좋으니까 자꾸 듣게 된다고 한다. 때로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자신이 싫지만 MP3에 노래를 저장하고 방송을 보며 즐거워한다. 결국 들을 때 좋으면 무슨 상관이냐는 편리한 사고는 질 좋은 음악을 들을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고 있다. 표절의 꼬리표를 인기가요의 타이틀로 둔갑시킨 주체를 거대기획사와 방송사의 관행으로 떠밀기에 우리는 자격 미달이다.


표절에 익숙한 우리들의 자화상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몇 번의 레포트 제출과 프레젠테이션 일정이 잡히고 밤마다 메신저를 켜놓고 근심하다 결국은 제출일 전날 후다닥 해치워 버린다. 마감의 압박에 닥친 우리는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을 두고 고민을 한다. 그러다 친구가 쓴 레포트를 구성만 바꾸어 제출하고 PPT 파일은 인터넷에 올라온 눈이 뒤집혀질만한 깔끔한 스타일의 레이아웃을 복사하여 내 것처럼 만든다. 학자출신이 정부 관료에 임명되기라도 할라치면 연구논문에 대한 표절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므로 명망있는 사람도 저러는데 이게 뭐 대수인가 싶다. 표절한 곡을 흥얼거리며 레포트를 표절하고, 표절한 연구논문으로 임용된 교수에게 수업을 듣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가상현실이 아니라는 점이 슬프기만 하다.



가요의 일회성 소비구조는 뜨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결과지상주의와 만나 창작자에게 치명적인 수치(羞恥)인 표절조차 대수롭지 않게 만들었다. 학생들의 꾸준히 학습된 ‘일단 베껴보기’는 학점만능주의와 만나 성적만 좋은 어른들을 양산하고 있다. 표절이 만연한 사회에서 매학기 마다 표절에 익숙해지는 우리들은 표절에 무감각해졌다. 비슷하다는 혹은 이거 정말 표절이라는 스스로의 확신을 가지고서도 모방품에 열광하여 인기가요로 만들고야 마는 것이 우리들의 처참한 자화상이다.

10년 후, 이 사회의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을 우리들이 미래에는 무엇을 표절하고 있을까? 저급의 가요에 개탄하며 10년 전 잃어버린 양심을 찾고 싶어 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