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이 되는 대한민국 남자들은 병무청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군복무에 앞서 실시되는 징병검사를 알리는 편지다. 징병검사 일자/장소 본인 선택 안내라는 제목의 이 편지를 받으면 1년 안에 징병을 위해 실시하는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징병검사는 크게 4단계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먼저 개인의 신상정보를 기록하고 군복무 기간동안 월급을 받을 나라사랑카드를 만든다. 두 번째 단계에선 심리검사를 받는다. 세 번째 단계에선 옷을 갈아입고 신장과 체중측정, 시력검사 등의 일반적인 신체검사가 이루어진다.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의 신체등위를 판정받으면 징병검사는 마무리된다. 이 과정은 보통 4시간 여에 걸쳐 진행된다.

문제는 전국의 모든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이 징병검사가 국가기관이 주관해 치르는 검사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대충' 진행된다는 점이다.

ⓒ병무청 홍보 블로그 '청춘예찬'

 

불친절한 병무청 직원들

징병검사는 신분증 확인부터 신체검사를 받고 신체등위가 결정되는 과정까지 병무청에 근무하는 의사와 공익근무요원의 안내 아래 진행된다. 문제는 그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징병검사 대상자 입장에서는 딱히 호소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2012년 신체검사를 받은 A씨(21살)는 시력 검사를 도와주는 공익근무요원이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휴대폰 게임을 하며 진행하더라며 불평을 터뜨렸다. 진료에 대한 불만도 있다. 2012년 가을 신체검사를 받은 B씨는 심리검사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체크한 답변과 정신감정 기록 때문에 개인 상담을 받았음에도 담당의사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묻지도 않고 지금 괜찮으니 됐다라는 태도로 통과시켰다고 한다. 징병검사 경험이 있는 한 임상심리사의 답변에 따르면 현재 사회생활에서 스트레스를 이겨낼 정도라고 판단되면 정상으로 분류하는 기준 때문에 B씨의 경우와 같이 허술한 검사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징병검사의 제일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친절했던 사람과 가장 불친절했던 사람을 고르라는 설문조사가있다. 하지만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거쳤던 많은 과정에서 누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기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도 많은 사람들이 불평을 터뜨리는 공익근무요원은 객관식 답안의 보기에서 아예 빠져있다.


숨은 병을 가려내지 못하는 징병검사

2008 훈련소에 입소한 최홍만이 건강상의 문제로 4일만에 귀가조치를 받은 적 있다. 2007년 가수 장우혁도 입소 후 귀가조치를 받았다. 이들처럼 훈련소 혹은 배치받은 부대에서 건강상 부적격 판정을 받고 귀가조치를 받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징병검사에서 발견하지 못한 병이 입대 후 발견되면 퇴소 후 다시 징병검사를 받아야 한다

현재 실시하고 있는 징병검사는 예산과 시간의 문제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정밀검사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신 질병을 가지고 있거나 진료 기록이 있는 경우 당사자가 직접 그 증명서류를 징병검사 때 제출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질병의 심각성 여부를 의사들이 판단하여 그 사람에게 알맞은 신체 등위를 결정한다. 

문제는 위의 예처럼 징병검사를 받기 이전까지 스스로 자신의 질병 유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신체검사에서 개인들이 알지 못하는 병이 있는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가 있어야 하지만 현 신체검사는 그런 부분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나마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검사는 신체 검사시 첫 번째로 하는 검사인 심리검사인데, 이 검사에서 다양한 질병 경험이 있었는지 예/아니오로 체크하는 문항이 있다. 여기서 어떤 문항에 예를 체크한 정도가 높을 경우 후에 임상심리사와 개인적 면담을 하게 된다. 문제는 심리검사지가 직접문항과 간접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여러 문항에서 비슷한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아니오로 처리되곤 한다는 점이다. 또한 문항이 많은데다 문항의 내용도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다.

 

ⓒ병무청 홍보 블로그 '청춘예찬'


비효율적인 징병검사 과정

신체검사는 보통 3~4시간 정도 소요된다하지만 단순히 신체 검사 과정만 놓고 보면 오랜 시간이 걸릴 이유가 없다. 2~30분 정도 소요되는 심리검사를 제외하고는 보통 1분이면 검사가 끝난다. 방사선 촬영, 피 검사, 혈압 체크, 소변 검사, 체중 검사, 시력 체크 등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 기초적 검사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체검사를 받기 전 필요 이상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신체검사는 보통 아침 8시와 13시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그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오는 순서대로 검사를 받는 관행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일찍 가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정도다. 여기에 한 명 한 명 검사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보통 3~40명 정도로 묶어서 검사를 받기 때문에 8, 13시와 큰 관계 없이 사람이 차면자신의 징병검사가 시작된다.

나라사랑카드를 만들 때가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대표적인 경우다.나라사랑카드는 모든 징병검사 대상자가 만들어야 하는데, 카드를 만드는 창구에는 2명의 직원만 있다. 한 사람의 카드를 만드는데 최소한 5~10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매 시간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수용하기에는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심리검사 이후 본격적인 신체검사를 위해 옷을 갈아 입어야 하는데, 서울지방병무청 징병검사장의 경우 옷과 라커룸은 3~40명의 인원을 수용하는 것이 전부다. 그렇다 보니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든 검사를 끝낼 때까지 다음 팀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물론 심리검사 결과를 분석해 추가 검사가 필요한 사람을 확인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신체검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 또한 아니라서 옷을 갈아 입고 신체검사를 받던 사람들이 옷을 갈아입기 전에 기다리는 사람 뒤에 앉아 기다리다가 다시 이동하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과정 때문에 신체검사를 받으며 자신 팀이 이동을 하는 것인지, 다른 팀이 이동을 하는 것인지 헷갈릴 뿐만 아니라 시간도 비효율적으로 소모되고 있다.

공정한 병역의 첫걸음은 신체검사다. 공정하고, 효율적이며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더 맑은 병역'을 내건 병무청의 이야기가 그저 그런 슬로건 정도로 끝나길 바라지 않는다면 '더 맑은 신체검사'부터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