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 과정을 거치며 한국은 남북 분단 이후 가장 크게 분열했다. 보수 51.6% 진보 48.0%, 결과는 나왔지만 반으로 갈린 갈등은 선거 이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갈등의 양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조금 더 미시적으로 접근해보기로 했다. 20대와 50대의 갈등은 가정 내 부모자식 관계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을까, 50대들은 이 선거 결과가 20대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난 대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첨예한 세대 갈등을 '문재인 찍은 50대, 박근혜 찍은 20대는 비주류?', '"엄마, 아빠는 왜 박근혜를 찍었을까? 50대에게 물어봤습니다" 두 기획 기사를 통해 파헤쳐 봤다.

“박정희 시대를 온몸으로 겪은 50대들이 왜 박근혜를 찍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장 모씨(남·55)는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아닌 문재인 후보를 찍었다. 50대는 89.9%라는 경이로운 투표율을 기록했다. 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62.5%. 네이버에 50대를 치니 바로 자동 완성어로 ‘50대 투표율’이 뜰 정도로 50대의 높은 투표율과 박근혜 지지율은 화제가 되었다. 이를 두고 언론은 ‘유례없는 세대투표’ ‘세대전쟁’ 등의 극단적인 표현을 쓰며 세대 간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장 모씨는 적어도 이런 세대 간 갈등에서 예외였다. 그는 생물학적으로는 50대이나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65.8%에 달하는 20대의 선택에 공감했다. 대학 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투옥될 뻔 했던 그는 '50대 대부분이 박 후보를 지지하는 데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냐'는 질문에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실망이 더 크죠.” 라고 답했다. “당시 ‘학우여’의 ‘하’자만 외쳐도 정보요원들이 둘러싸는 시대였는데 그 시대를 겪은 사람들이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는 것에 깊은 실망감을 느낄 따름이예요.” 

다른 정치적 이념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전업주부 맹 모씨(여·54)는 지난해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 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길을 가다, 지나가는 50~60대로 보이는 남성으로부터 ‘이상한 걸 입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 평소 여러 군데에서 단체 활동을 한다는 그녀는 “아무래도 내 나이 또래는 대부분 보수 성향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라면서 “단체생활을 하다보면 같은 세대라도 나와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정치 색깔이 다른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진보만이 옳은가요?" 20대 보수의 항변

그렇다면 인터넷과 sns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며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던 20대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 12월 19일 선거 개표가 끝나고 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커뮤니티에는 ‘보수는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의 작성자는 ‘각종 포털사이트 분위기나 댓글만 보면 이건 뭐 문재인이 될 확률 99%에 박근혜 지지글 하나라도 쓰면 미칠 듯 한 삭추(삭제 추천)가 달리는데 실제로는 박근혜 후보가 승리했다’ 면서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인터넷에 상주하다시피 하니까 진보가 수적으로 많아 보일 뿐이라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이 글은 추천을 많이 받아 추천게시판에 등록되었다.
 

또 다른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의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비슷한 논조의 글이 올라왔다. ‘진보가 옳다는 논리는 어디서 생긴 거임?’ 이라는 제목의 글은 20대 보수를 생각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있었다. 이 글 역시 추천을 많이 받아 ‘베스트 게시판’에 올라갔다.

실제로 대선 전까지 대학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각종 포털 사이트나 sns에서도 20대가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글이나 댓글을 쓰면 삭제 추천을 받거나 악플이 달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대해 대학생 권지혜 씨(여·23)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건 당연한 거고 무조건 진보 성향만 있다고 해서 나라가 발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신이랑 의견이 다르다 해서 정답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라고 의견을 밝혔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도 20대 보수는 욕을 먹기도 한다. 수도권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이 모씨(남·22)는 지난해 서울 시장 재·보궐 선거 당시 과실에서 나경원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곤욕을 치렀다. 과실에 있던 같은 과 동기와 선배들이 모두 ‘당연히 박원순을 뽑아야지 무슨 소리냐’며 그에게 면박을 주었기 때문이다.



박근혜를 찍은 20대와 문재인을 찍은 50대, 왜 소수자가 되었는가

이런 현상에 대해 대학생 최현지 씨(여·23)는 “아무래도 선거가 끝나면 승자를 찍은 사람만 부각되고 패자를 찍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묻히기 때문인 것 같다.” 라고 말했다. 여느 선거가 끝날 때마다 그랬지만, 18대 대선이 유독 ‘세대투표’로 불릴 만큼 세대별로 선호하는 후보가 뚜렷한 차이를 보인 것도 또 다른 요인 중 하나이다. 같은 세대 안에서 그 세대의 다수가 선호하지 않는 다른 후보를 찍은 사람을 ‘틀린’ 후보를 찍은 사람으로 간주하게 된다는 것.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는 흑백논리에서 다수에 끼지 못한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힘을 잃고 만다.

세대별로 선호하는 후보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해도 그것이 과연 특정 세대의 다수가 선호하지 않는 후보를 찍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근거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38%의 50대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33%의 20대는 수치상으로 봤을 때 소수라고 하기 어렵다. 실제 승자인 박근혜 후보나 인터넷상에서의 승자인 문재인 후보를 찍은 이들의 목소리에 눌려 소수로 재단되는 것은 아닐까. 세대별 갈등을 해결하기 앞서 세대별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부터가 먼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