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아직은 차가운 하늘 아래 한국대학생연합의 깃발을 선두로 15개 대학의 깃발이 나부낀다. 엑스표가 쳐진 마스크를 쓴 채 “우리는 허수아비가 아니다”라는 피켓을 든 100여명의 대학생들. 어른이 아닌, 대학생이 말하는 ‘대학의 조건’을 외치러 청계광장으로 모였다.

 

“문제투성이 국가장학금, 반값등록금 대안 결코 아니다!”


‘대학의 조건’에서 대학생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강력하게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는 이유는, 새 정부가 제시한 국가장학금 제도가 전혀 반값등록금의 대안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올해 지급되어야 할 국가장학금 2유형 6천억원 중 2천 561억원이 대학생들에게 돌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덕성여대 부총학생회장 석자연씨에 따르면 “덕성여대 재학생 중에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1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지급대상자 선정 기준도 논란이 되고 있다. B학점 제도 탈락으로 인해 전체 대학생 30% 이상이 원천적으로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고, 기초수급자의 50%는 장학금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장학금 소득기준에 부채가 적용되지 않아, 빚 많은 가정의 대학생들이 형편과 다르게 등록금을 바르지 못하는 경우도 양산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반값등록금 말 바꾸기에 분노한 대학생들이 들었던 2011년의 촛불을 기억하라”고 외치는 ‘대학의 조건’ 성명서의 어조는 단호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고지서상 반값등록금을 실현해야합니다!”


2011년의 반값등록금 시위와 달라진 점은 그 앞에 ‘고지서상의’ 반값등록금이라는 조건이 붙었다는 점이다.

작년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8월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토론에 직접 나서 반값등록금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현재 대학생들이 등록금으로 인해 고통 받는 부분이 너무나 크다. 대학 등록금 부담을 낮추겠다는 것을 약속드릴 수 있다. 반드시 해내겠다”고 직접 발언까지 했다.

동국대학교 총학생회장 남보라씨는 “며칠 전 아는 후배가 꿈을 찾기 위해서 고민을 할 시간이 없다고 고민을 해왔다. 빌린 학자금 이자는 계속해서 쌓여하고 있고, 그 이자가 더 쌓일까 두려워 4년 안에 졸업을 해야겠는데, 졸업하고 나서 하고 싶은 것들이 명확하지 않아 그냥 3천만원 빚만 있는 빚쟁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며, 다시 한 번 대학생들이 받고 있는 고통에 대해 강조했다.

“(지방에서 온 학생의 경우) 등록금 천만원, 주거비용 600만원. 여기에 식비, 교통비, 통신비까지 다하면 커피 한 잔 안 먹고 소주 한 잔 안 먹어도 연 2천만원을 써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가 무슨 죄를 졌습니까?” 민달팽이유니온 사무국장이자 대학생 주거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는 권지웅씨의 질문이다.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대학생들의 목소리에 그는 “지방에서 태어난 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되받는다.



“제멋대로인 어른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더 울어야 합니까?”


차례차례 발언대에 오른 대학생들은 반값등록금 실현 외에도 비리재단 처단, 국공립대의 법인화 반대, 학내 민주주의 실현 등을 요구했다.

대학생들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냐?”는 물음을 던진다. 학생으로서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학생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학생에 대한 배려 없이 결정을 내리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학교의 방식에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다. 등록금 책정, 학과 구조조정과 같이 학생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전혀 수렴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대학교의 경우 현재 서울 캠퍼스에 있는 학과들을 수원으로 이전시키려고 하고 있다. 서울에서 입학한 학생이더라도 수원에서 학교를 다녀야만 하는 것이다. 해당 안건에 대해 학생의 의견을 묻거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은 없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신입생인 13학번 조선정씨는 최근의 한국외국어대학교가 단행한 자유전공학부 폐지 사건에 대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학교 정문에서 시위를 하고 있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며 ‘내가 이러려고 대학에 왔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학한지) 3주밖에 안 됐는데”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심지어 여러모로 목소리를 내고, 방법을 알아보는 와중에도 “(실질적으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대학의 조건’ 행사는 풍물패를 선두로 한 퍼레이드로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대학생들을 향해 ‘국가장학금’이라고 적힌 당근을 흔들어대는 모습 뒤로 목에 칼을 찬 대학생, 허수아비 모형을 든 대학생, 풍선과 피켓을 든 대학생들이 뒤따랐다. 자녀와 함께 참여하여 대열의 옆에서 함께 걷는 학부모도 보였다.

시민들과 경찰 사이에서 대학생들은 “우리는 우리의 존재감을 알리러 나왔다”고 외쳤다. 동요를 패러디한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반값등록금 실현하라, 반값등록금 실현하라, 외쳐보겠네. 외쳐보겠네”라는 구호에 사람들은 웃음을 지었다. 지나가던 시민들 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까지 호기심을 가지며 사진을 찍어갔다. 참여한 대학생들은 청계광장에서 출발해 1시간여를 걸어 명동, 시청을 지나 다시 청계광장으로 돌아왔다.

이날 행사는 대학생들의 발언과 공연이 번갈아 이어지며 저녁 8시까지 계속됐다. 대학생의 발언에 지지를 표하기 위해 진보정의당 임진수 대외협력담당관과 통합진보당 김재연 청년국회의원 등이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