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학생회가 등장한건 80년대였다.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고 변화를 꿈꾸는 학생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을 기구가 필요했다. 총학생회와 줄이어 자치기구가 생겨나면서 학생들을 학교 본부에, 그리고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당시 학생회의 역할은 주로 학생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었고, 학생들은 기꺼이 한 표를 행사해 그 권위를 보장했다.

30년이 흐른 지금, 대학의 학생회는 많이 변했다. 비운동권 세력이 각 대학의 총학자리를 선점했고, 정치적인 요구보다는 등록금 인하, 학교 시설 문제 등 학교 전반의 사업들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총학의 역할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총학의 힘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학생대표와 거수기 사이

총학생회장과 그를 따르는 ‘라인’, 또 비운동권과 운동권의 보이지 않는 자리싸움은 어른들의 정치싸움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암묵적인 ‘줄서기’는 학생들은 물론, 단과대 회장과 그 밖의 과 회장들의 역할을 투표권 하나로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 K대학 전학대회 대의원(주로 단과대 회장 과 회장, 자치기구 위원장을 일컫는다)에 따르면 특히 단과대 회장과 총학생회장, 자치기구가 모이는 중앙운영위원회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총학의 입김은 상당하다고 전했다. 그는 “대의원이라는 명분은 있지만 사실상 거수기에 불과한 것 같다... 전학대회에서 총학생회장이 어떻게 안건을 끌고 가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니 단과대 입장에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전남대학교 신문방송사

총학과 단과대는 물론 대의원이라면 누구나 안건을 개진하고 그것을 전학대회에서 결의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안건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총학이 직접 발언권을 주고 안건을 상정한다. 상정된 안건 역시 주로 거수로 결의된다. 실제 각 대학의 학칙에서도 총학생회장의 역할은 명시되어 있다. 대다수의 대학에서 전체학생대표자회의(혹은 확대운영위원회)와 중앙운영위원회의 의장은 총학생회장이 맡는다.

다음은 서로 다른 두 대학의 학칙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제41조 (권한 및 책임) 총학생회장은 다음의 권한 및 책임을 갖는다.
① 내외적인 업무에 있어서 본회를 대표하며 학생총회, 학생총투표, 확대운영위원회, 중앙운영위원회를 소집, 실시할 수 있다.
② 학생총회, 확대운영위원회, 중앙운영위원회의 의장이 된다.
③ 본회의 활동 및 회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안건을 심의하는 학교당국의 회의에 학생대표자로서 참석한다.
④ 학생총회, 학생총투표, 확대운영위원회,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의결된 사항을 집행할 책임을 진다.
⑤ 본회의 집행부의 임명 및 해임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⑥ 본회의 회칙 개정을 발의할 수 있으며 확대운영위원회에서 개정된 회칙을 3일 이내에 공표한다.
⑦ 기타 총학생회 활동에 대한 모든 사항을 총괄한다.

제21조(지위)
①총학생회장은 대외적으로 본회를 대표하며 학생총회의장, 전학대회의장, 운영위원회장, 집행국의장이 된다.
②부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장을 보좌하며, 총학생회장 유고 또는 궐위시 그 권한을 대행한다. 보궐선거시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제22조(업무 및 권한)
①학생총회, 전학대회, 운영위원회의 소집권을 갖는다.
②회칙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다.
③집행국 각 국장을 추천하여 전학대회의 인준을 거쳐 이를 임명한다.
④학교전반에 관한 중대한 사항에 대해서는 해당 부처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생략)

위 두 대학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학이 위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권한을 총학에게 부여한다. 본회의 의장의 권한, 집행단의 추천/임명권, 그 밖에도 학교 내 사업 전반은 사실상 총학생회장의 공약에서 시작되니 총학의 힘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 고은천씨는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총학생회장의 역할에 대해 ‘(총학생회장은) 확대운영위원회의 의장 역할을 하고, 의장은 발언권을 부여할 수 있으며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과회장이나 단과대 회장이 이듬해 단과대 회장, 총학생회장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있냐는 질문에 ‘많이 있다.’라고 답했다.

여기에 학생회비 분배과정도 한 몫을 한다. 한 학기 모이는 학생회비 중 총학생회는 가장 많은 파이를 가져간다. 연중 있는 크고 작은 행사와 선거공약으로 내건 사업들의 규모도 크거니와 단과대나 자치기구와는 달리 전체 학생들의 투표로 선출됐다는 명분이 있다. 그러나 나머지, 50퍼센트가 조금 넘는 학생회비를 십여 개의 단과대와 자치기구로 배분할 경우 이권싸움은 치열해지기 마련이다. 서울 H대학의 단과대 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전체 학생회비 중 45%는 총학의 몫”이라고 밝히며 “나머지 55% 중 45%는 인원수로, 그 나머지는 일괄배분 된다.”고 설명했다. 그나마도 자치기구의 몫을 제외하고 받는 것을 감안하면 단과대의 파이는 더 작은 셈이다.

최근 총여학생회나 생활도서관, 교지 등 자치기구들이 전학대회를 통해 축소, 개편 되는 이유도 바로 이 학생회비의 분배로 인한 대금 문제 때문인 경우가 많다. 단과대 회장들은 부족한 회비를 메우기 위해 학생회비를 별도로 걷을 수밖에 없고, 자신의 단과대 몫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총학생회장의 눈치를 보게 된다. 여기에 이듬해 단과대 회장 선거나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인맥 다지기가 그 이유가 되기도 했다. 

감사기구 역시 완전히 독립된 것으로 볼 수 없다. 총학과 자치기구의 예결산안을 감사하는 기구는 많은 대학에 존재하지만 이들은 별도의 기구라고 보기 어렵고, 실제로도 전학대회 혹은 중앙위원회의 의결로 지명되는 지명기구인 경우가 많다. 또 감사와는 별도로 애초에 예산의 편성 자체는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조정되며 단과대와 자치기구의 예산안 자체는 전학대회를 통해 확정되는 정도다.

학생대표라고 불러도 될까

그렇다면 총학에 대해 학생회가 아닌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최근 학생총회를 성사시킨 건국대학교 전진우(23)씨는 총학생회장 선거에 투표를 했냐는 질문에는 “학생의 대표가 있어야 할 것 같아 (투표를)했다.”고 답했지만 학생총회에 대한 질문에는 “학생총회도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한다고 바뀔 것 같지 않다. 총학이 사실상 뭘 하는지 관심이 없는 게 대부분 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치 기구조차 대표라기보다 사집단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학생 대표기구에 대해 잘라 말했다.

이러한 무관심에는 일부 대학 학생회의 비리 사건도 한 몫을 한다. 여기봉(25. 건국대 자율전공)씨는 “과거에 학생회 비리문제로 신뢰감이 부족해진 것 같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몇 년 전 어느 총학생회는 졸업앨범 제작 업체 과정에서 해당 업체와 돈 거래를 통해 이익을 챙기다 덜미가 잡혔다. 학교 본부가 총학생회를 매수해 ‘학교 말 잘 듣는 총학’이 나오기도 했다.

학생 사회에서 공무담임권은 모든 학생에게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학생회 활동을 하는 일부 학생들이 직위만 달리할 뿐 계속해서 학생회를 선점하고 있다. 여기에 학생회비 분배와, 학칙 상 가지는 총학의 과점적 권한이 낳는 학생회의 폐쇄적 구조는 재검토가 필요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