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4월 말이 다 되어가지만 날씨는 봄답지 않게 여전히 쌀쌀하다. 지난 일요일에 방문한 통인시장에서도 봄내음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무턱대고 날씨 탓만 하기에는 통인시장에 드리워진 그늘은 지나치게 깊고 어두웠다. 재래시장 부흥책의 실태를 통인시장 취재를 통해 살펴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우후죽순 생겨난 대형슈퍼마켓(SSM)으로 인하여 재래시장의 위상은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다. 정부에서 의무휴업, 일정 물건의 판매 제한 등 다양한 SSM 규제 정책을 내세워 재래시장 부흥을 꾀하고 있지만 실효성 여부는 미지수다. 이에 재래시장들은 자체적으로 구제책을 모색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서울시 통인시장의 ‘내 맘대로 도시락 카페 통通’(이하 도시락 카페)은 그중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혀왔다. 통인시장상인회가 만든 마을기업 ‘통인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도시락 카페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시장 음식들을 맛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도시락 카페에서 한 개당 500원씩 하는 엽전을 구매하면 시장 내 도시락 카페 가맹점들의 음식을 엽전과 교환하여 구입할 수 있다. 5000원 어치 엽전을 사면 반찬 6가지를 곁들인 제대로 된 한 끼 식사가 가능하다. 평일 하루 평균 150여 명, 주말 하루 평균 500여 명의 손님들이 도시락 카페를 방문한다. 월 평균 매출도 2000만원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통인커뮤니티는 시장 활성화 공로를 인정받아 행정안전부 지정 우수 마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매스컴에서 비추어졌던 활기차고 떠들썩한 시장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쌀쌀한 봄 날씨 속에서 통인시장은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었다. 도시락 카페의 성공 이면에 숨겨져 있었던 통인시장의 또 다른 단상이었다.

 
시장 중앙에 위치해있다는 도시락 카페를 찾아가보니 출입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다. 통인시장상인회 사이트를 찾아보니 공교롭게도 매주 일요일은 카페 휴무일이었다. 아쉬운 대로 카페에 대한 다른 상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카페와 이웃한 분식집에 들렀다.


 튀김 1인분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니 옆 테이블에 놓인 ‘도시락카페 가맹점’ 표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분식집 주인에게 도시락카페 가맹점의 수익구조에 대해 물었다. “엽전 하나당 500원이면 그 500원을 가맹점 가게랑 (통인시장)상인회에서 나눠가져요. 근데 그쪽에서 돈을 많이 떼가. 100원씩 가져가거든. 도시락 카페 직원들 월급 줘야 한다면서.” 애초 예상보다 적은 수익이 돌아오는 탓에 현재 가맹점으로 등록한 가게의 숫자도 20개 안팎에 그친다고 했다. “그래도 도시락 카페 하기 전보다는 나아요. 그것 때문에 시장에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까.”


분식집을 나서니 다양한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한산한 분위기 때문인지 가게 주인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묵묵히 생선을 손질하고 있는 수산물 가게 주인에게 도시락 카페가 들어서고 난 뒤의 시장 분위기를 물어보았다. 한숨과 함께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왔다. “별 다를 것 없어. 될 사람만 되고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거지, 뭐.” 

참기름 가게 주인은 더욱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도시락 카페가 성공하면서 시장이 활성화된 것처럼 비추어지지만 실제 상황은 전혀 다르다고 했다. “음식점들만 도시락 카페 가맹점으로 등록할 수 있으니까 그 밖의 다른 가게들은 별 이익을 못 봐요. 시장 손님들도 숫자만 늘었지 다들 도시락 카페에 들러서 밥이나 먹고 장은 안 봐요. 우리네 상인들은 소매로 물건을 떼다가 파니까 아무래도 일반 가게들보다 비싸거든요.”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매스컴에서 하도 (통인시장이) 잘 된다고 하니까 헛소문이 돌아서 시장 건물 임대료가 더 올랐어요. 우리 같은 상인들만 죽을 맛이죠. 어제 상인회 회의에서도 얘기가 나왔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셈이죠.”


 한산한 시장 분위기 속에서도 유난히 손님들이 모여 있는 가게가 있었다. 기름 떡볶이로 유명한 분식집이었다. 떡볶이 1인분을 시키고 자리에 앉으니 벽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맛집 프로그램 캡처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가게는 도시락 카페 가맹점으로 등록하지 않았어요. 그러지 않아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거든. 얼마 전에는 이승기가 와서 뮤직비디오도 찍고 갔어.” 조만간 도시락 카페가 일요일에도 운영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싫어하는 상인들이 많아. 우리는 괜찮겠지만.”

떡볶이 가게를 들른 손님들 중에서는 도시락 카페 때문에 통인시장을 찾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젊은 남녀가 문 닫은 도시락 카페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떡볶이 가게로 다가왔다. 남자친구와 함께 처음 통인시장에 들렀다는 김현주(26)씨는 아쉬운 표정이었다. “원래 도시락 카페 때문에 온 거라서, 떡볶이만 먹고 갈 것 같아요.” 잇따라 등산객 한 무리가 가게를 찾았다. 남산에서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통인시장을 방문한 박인철씨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떡볶이를 주문했다. “도시락 카페에서 한턱 쏠 요량으로 등산 동호회 사람들을 무작정 끌고 왔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민망하네요.”

떡볶이를 다 먹고 일어서려는데 멀찍이서 트로트 메들리가 들려왔다. 한 아저씨가 앉은 자세로 각종 생활용품이 가득한 수레를 밀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저씨가 가게 앞으로 다가서자 주인 할머니는 이내 건강음료를 꺼내어 아저씨에게 건넸다. “아유, 오늘도 나오셨네.” 아저씨는 씩 웃으면서 음료를 받아든 뒤 노랫소리와 함께 멀어져갔다. 흥겨운 트로트 가락은 쌀쌀한 낮공기와 뒤섞여 잠시나마 통인시장의 적막한 거리를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