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대흥동에 위치한 산호여인숙 앞의 좁은 골목길이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골목 한 편에는 작은 좌판이 늘어서 있다. 좌판에는 책, 리본, 옷, 신발, 매듭공예품 등 딱히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여러 물품이 놓여 있다. 골목의 다른 편에는 옷가지들이 잔뜩 걸려 있다. 좌판과 옷가지로 더욱 좁아진 골목길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니, 먹물을 묻힌 붓을 휘갈겨 만든 붓글씨 작품이 막 완성된 참이었다. 정체를 알기 힘든 신기한 이곳은 바로 ‘짜투리시장’이다.



한밭레츠의 대안화폐 ‘두루’

짜투리시장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모든 거래가 현금이 아닌 ‘두루’를 이용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두루는 한밭레츠 회원들이 서로 물품을 거래할 때 사용하는 대안화폐다. 예외적으로 짜투리시장에서는 한밭레츠 회원이 아니더라도, 환전소에서 현금을 두루로 환전하여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두루는 현금 화폐와 같은 가치를 가진다. 1000 두루와 현금 1,000원의 가치가 같은 셈이다. 짜투리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짜투리시장 주변에 있는 한밭레츠 가맹점에서도 두루를 사용할 수 있다. 짜투리시장의 기획에 참여한 산호여인숙 문화기획자 정다은 씨는 “많은 사람들이 짜투리시장을 통해 한밭레츠와 두루를 접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밭레츠는 1999년에 대전에서 시작된 지역품앗이 단체다. 한밭레츠에서는 지역품앗이를 지역화폐를 통해 회원들이 노동과 물품을 거래하는 교환제도라고 소개한다. 두루는 한밭레츠에서 사용하는 지역화폐이자 대안화폐다. 레츠(LETS)는 지역 교환 거래 체계(Local Exchanging & Trading System)의 약자다. 한밭레츠 오순열 대표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돈이 최고인 시대가 됐다.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돈을 직접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두루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한밭레츠의 두루는 전 세계적으로도 지역화폐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사례로 손꼽힌다.



한밭레츠에서는 두루를 ‘사람의 얼굴을 한 돈’이라 한다. 보통, 물건을 구매할 때는 물건의 생산자가 누군지 모른 채 현금 화폐를 건네며 물건을 사게 된다. 반면에 두루를 이용할 때는 회원들 간에 서로 얼굴을 보며 거래가 이루어진다. 구매하는 물품에 대한 신뢰감도 높아진다. 이와 함께 가까운 곳에 사는 회원들 간에 거래가 이루어지며, 마을 공동체와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효과도 있다.

두루는 화폐경제체제에 대안을 제시한다. 현대 사회에는 돈이 단순한 물물 교환의 단위를 넘어서 부의 축적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돈이 돈을 만드는 체제가 형성됐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엄청난 이자 수입이 발생한다. 돈이 많은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돈을 빌려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진다. 하지만 두루에는 이자가 붙지 않는다. 기존의 시장경제체제와 달리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짜투리 물건을 나누는 호혜 시장

짜투리시장의 좌판에 놓여 있는 물건들이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이유는, 짜투리시장이 짜투리 물건을 나누는 호혜 시장이기 때문이다. 리본, 수제초콜렛, 매듭공예품 등 직접 만든 물품 외에도 집에서 쓰지 않는 물품 등을 가지고 나와 판매한다. 그러다 보니 좌판에는 중고 책과 이집트 여행에서 가져온 책갈피와 아이스티도 있고, 상태는 양호하지만 입지 않는 옷들도 있다. 산호여인숙 안쪽에는 인바디검사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 행위가 이루어진다. 상시로 붓글씨 작품을 만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때때로 기타를 들고 나타난 분이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공연을 보고 자유롭게 내는 돈 또한 두루로 내게 된다.




짜투리시장의 판매자 대부분은 한밭레츠 회원이다. 한밭레츠 회원인 만화가 이현경 씨는 직접 만든 그림과 엽서, 리본 등을 판매했다. 이현경 씨는 “짜투리시장에선 다른 프리마켓보다 친밀감이 더 느껴지고, 레츠 회원들끼리 오랜만에 모이게 된다. 거부감 없이 회원들끼리 물건을 바꿔 쓸 수도 있다.”고 짜투리시장에 참여한 소감을 전했다.

한밭레츠 회원이 아니더라도 미리 신청 절차만 거치면, 짜투리시장에 판매자로 참여할 수 있다. 대전여성장애인연대 이희진 씨는 대전여성장애인연대 부설 자립지원센터에서 만들어진 비즈 공예품 등을 판매했다. 이희진 씨는 “지역 활성화 측면에서 좋은 행사 같은데, 잘 모르시는 분이 많아 아쉽다.”고 말했다.



짜투리시장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판매자도 있었다. 대흥동에서 빈티지, 아날로그 소품 판매점 ‘램프의 진희’를 운영하는 김진희 씨는 “예술가분들은 짜투리시장에 나오기가 어렵다. 수공예품은 싸게 판다고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짜투리시장은 아직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이제까지 짜투리시장은 단 두 번 열렸다. 앞으로 양적, 질적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 짜투리시장은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12시~6시에 산호여인숙 골목에서 열릴 예정이다.